2007년 07월 30일
잔혹하고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

* 부득이 영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일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은 뒤로 돌아가주세요.


냉혹한 조직의 킬러가 있다.
그는 무자비한 방법을 동원하여 반대 세력을 가차없이 죽여나가지만
한 여자를 만나면서 생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를 어둠에 묻으며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는 여자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와, 또 그들의 자식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냐고? 글쎄...




그것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든 비참하지만 낭만적인 죽음으로 이어지든,
이 비슷한 류의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화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소재이며
그 이후의 이야기도 -앞의 경우처럼 많지는 않더라도- 여러 관점을 통해 종종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크로넨버그는 인물이나 사건들의 인과 관계보다 '폭력'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이 영화에 독자성과 고유성을 부여한다.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폭력을 묘사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세 작품들 중
"로드 투 퍼디션"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극히 미국적으로 각색하였다면
"신 시티"는 원작의 과감함과 스타일을 여과없이 생생하고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겼고,
"폭력의 역사"는 한발짝 떨어져 더없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로 긍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던 에드 해리스와 윌리엄 허트가 맡은 악역은
그들이 지녔던 기존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도리어 오싹한 공포를 전달한다.

연쇄 강도가 그의 가게를 덮쳤다. 그래서 그들을 죽였다.
그가 다치게 했던 적이 복수하고자 그를 노렸다. 그래서 그들을 죽였다.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그의 가족이 그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을 죽였다.
폭력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어진다.
학교의 짱이 자신을 놀리며 괴롭혔다. 그래서 그들을 두들겨 팼다.
아버지의 적이 집으로 찾아와 총을 겨누었다. 그래서 그들을 쏘았다.
폭력의 시작은 멀리에 있지도, 부조리하지도 않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이 끊을 수 없는 연쇄는 대를 물려가며 과거에도 앞으로도 반복된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동조자인 부부는 서로를 응시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은 서로에 대한 용서나 화해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질 폭력에 대한 우려와
그것을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뼈저린 실감이다.

그것이, 폭력의 역사이다.


by glasmoon | 2007/07/30 02:07 | Memory remains in... | 트랙백(1)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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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at 2007/08/03 15:20

제목 : 폭력의 역사 - 폭력의 반복과 확산
네이키드 런치 - 징그럽고 지저분한 괴작 두 아이와 아내와 함께 시골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톰 스톨(비고 모르텐센 분)의 식당에 2인조 강도가 침입합니다. 톰은 동료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2인조 강도를 해치우는데 언론을 통해 영웅이 된 그에게 폭력조직의 칼 포가티가 찾아와 조이 쿠삭이라고 부르며 아는 척을 합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2005년 작 ‘폭력의 역사’는 전작들과 달리......more

Linked at Dark Side of the.. at 2008/12/16 03:19

... 쉰에 드디어 연기의 꽃을 피웠다. 마틴 스콜세지는 "디파티드"를 가지고도 2007년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주류 영화계는 언제까지 크로넨버그를 도외시할 텐가? 잔혹하고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 ... more

Commented by 돌다리 at 2007/07/30 09:14
크로넨버그.... 이 영화가 이번에 개봉된다지요.. 리뷰만 . 봐왔는데 레뷰만으로도 인상적인 영화..
Commented by Werdna at 2007/07/30 12:21
이게 개봉된다니... 과연 영등위가 이 작품을 얼마나 "손볼지" 모르겠군요.
에드 해리스의 악역이라,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glasmoon at 2007/07/30 13:39
돌다리 님 / 지난주에 개봉했습니다. 냅다 보고 왔습지요. ^^
저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는데, 그다지 오래 걸려있을것 같진 않으니 보시려면 빨리 가셔야..;;

Werdna 님 / 크로넨버그답게 바이올런스에서도 섹스에서도 강도가 남다릅니다.
잠깐이지만 나름 파격적인 노출까지 나온걸로 봐서 그다지 '손본'것 같진 않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이번 작품에서 에드 해리스의 포스는 단연 돋보입니다. --.b
Commented by 돌다리 at 2007/07/30 14:46
그 부부의 첫 정사장면은... 온전한 부부관계로서는 미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시도된
체위(?) 라더군요..
Commented by harpoon at 2007/07/31 00:10
보고 싶군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7/07/31 21:51
돌다리 님 / 그 체위(?)가 헐리우드에서 영화와 포르노그라피의 구분선으로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

harpoon 님 / 좋은 작품입니다. 추천해드려요~
Commented by 하리 at 2009/01/01 18:45
history 란 단어가 일반적으로 역사란 뜻으로 통하지만 근원, 뿌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폭력의 시발점, 근원이란 뜻이 더 적절하지 않나 그렇게도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glasmoon at 2009/01/02 17:25
하리 님 / 음, 전 영화를 폭력의 순환과 대물림이라고 보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원작 코믹스를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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