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21일
아름다운 그의 면도날, 스위니 토드


20세기의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질레트의 안전 면도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이발사의 가장 주된 일은 한번 자르면 보름 이상 손댈 필요가 없는 머리의 손질보다는
하루만 지나도 덥수룩해지는 수염을 면도하는 일이었다.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에서도 가위나 이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반짝이는 것은 오로지 그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면도날 뿐.




음악을 좋아하고 연극이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섞인 음악극, 즉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등은 그다지 좋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팀 버튼과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의 이름이 나란히 찍힌 영화를 외면할 수는 없는 법.
개봉 전부터 이 영화를 기대했던 이라면 크게 세 부류 중 하나로 짐작된다.
첫째는 좋은 영화라면 가리지 않는 영화 팬, 둘째는 원작을 보았거나 관심이 있는 뮤지컬 팬,
그리고 셋째는 팀 버튼과 조니 뎁의 팬.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세기의 기대작이 되었겠지만
취향에 맞는 영화라도 스크린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고, 뮤지컬이라면 질색인 입장에서
오로지 기대했던 것은 팀 버튼과 그 일당(?)들의 기괴한 매력!

유감스럽게도 '브로드웨이 뮤지컬풍 노래'라면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누구의 귀에
스티븐 손다임 본인의 손에 의해 옮겨진 원작 스코어 -특히 젊은 남녀가 길게도 조잘대는 사랑노래- 는
그저 인내의 시험이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 중 하나가 조니 뎁인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 밖에.
팀 버튼은 돌아왔고, 조니 뎁은 여전했다지만 그 둘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므로
의외로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동안 가려졌던 헬레나 본햄 카터이다.
감독의 인맥(?)으로 매 작품마다 등장하면서도 정작 활약할 배역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던 그녀는
드디어 러빗 부인을 통해 스크린 속에서도 남편(의 페르소나인 뎁)과 완벽히 결합했다.

보편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규정하는 최소한의 틀은 유지하고 있기에
조안나와 안소니의 이야기는 그 비중이 줄었을지언정 여전히 살아있고
그렇기에 그런 '밝은' 쪽에 감정을 이입하는 사람에게는 결말이 불친절할 수도 있겠지만
꼭 버튼의 변주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 이래의 비극과 같은 어긋난 사랑의 폭주,
즉 죽은 아내, 그녀의 남편, 남의 여자, 그녀의 딸, 구해준 여인을 향한 사랑의 파국적 결말임을 본다면
폭풍과도 같은 클라이막스를 지나 다다른 깔끔한 결말은 매우 만족스럽다.
특히 마지막의 장면 ("블레이드 러너"의 유명한 장면을 빗대어 'tears in blood'라고 부르고 싶다) 은
캐릭터, 감정, 그림, 효과 모든 면에서 보는이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음악마저 대니 엘프만이 맡아 손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끝내 가시지는 않았지만...

목이 뎅겅뎅겅 달아나는 "슬리피 할로우" 속에서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빅 피쉬", "카리브해의 해적" 등 착한(?) -물론 훌륭한- 근작들에 낯설어하는 팬들의 목에 들이대는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아름다운 핏빛 면도날, 스위니 토드.


by glasmoon | 2008/01/21 20:53 | Memory remains in... | 트랙백(1)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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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at 2008/01/23 14:30

제목 : 스위니 토드 - 잔혹한 고어와 치정 뮤지컬의 오묘한..
탐욕스런 검사 터핀(알란 릭맨 분)에게 아내와 딸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발사 벤자민 파커(조니 뎁 분)는 스위니 토드라는 가명으로 런던에 돌아와 복수를 노립니다. 스위니의 아래층에서 파이를 구워 파는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 분)은 스위니를 설득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게 하고 인육으로 파이를 만들어 판매합니다. 리메이크에 가까운 재해석작 ‘혹성 탈출’ 이후 ‘빅 피쉬’부터 ‘유령 신부’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이르기......more

Commented by 원더바 at 2008/01/21 21:26
면도날이 춤출때는 정말 섬뜩했습니다 (게다가 하필 본게 조조..OTL)
Commented by outsider at 2008/01/21 23:05
팀 버튼과 조니 뎁.. 역시 두 사람은 절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헬레나 본 햄 카터가 인상 깊었어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의 히스테릭한 연기가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거든요. 숨은 보석을 모르고 있었다는.. 앞으로 계속 예의주시해야겠어요.
Commented by 불량가장 at 2008/01/21 23:32
말씀처럼 참 잘 만든 영화이고, 나름 만족했습니다만...

몇년만에 집사람과 같이 데이트 나와서 봤다는게 문제였지요.
슬리피 할로우 수준으로 예상했는데, 막판 살육의 퍼레이드는... OTL

휴~

집사람이 차라리 불평이라도 늘어놓았다면 맘이 편했을터인데
되려 위로하길래 더욱 미안했습니다. -_-;;;
Commented by Nosferatu at 2008/01/21 23:40
영화관 혼자 가기의 시작은 이걸로 해야겠습니다. >_< 乃
Commented by 버섯돌이 at 2008/01/22 00:28
웅.. 보러 가야하는데.. ㅠ_ㅠ
Commented by 두드리자 at 2008/01/22 01:21
뮤지컬이라면 제 취향은 아니군요. 영화관 표가 요즘 상당히 비싸서, 취향이 아닌 영화는 가급적 피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만 원 넘어가는 게 아닐까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1/22 03:38
원더바 님 / 저도 원래는 조조로 볼 예정이었는데 말이죠. ^^;

outsider 님 / 젊어서 유명했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근래 원숙미를 뽐내는듯 합니다. ^^

불량가장 님 / 아... 저런. 역시 여성(여친이든 부인이든)과 같이 보기엔 좀 부담스러울까요?
그래도 그렇게 위로해주는 부인이 계신게 어딥니까~

Nosferatu 님 / 위 불량가장 님의 경우처럼 여자와 같이 보기엔 좀 위험한 영화이기도 하고,
혼자서도 보다보면 익숙해집니다. (이걸 위로라고 하는거냐!)

버섯돌이 님 / 흠, 영화에 독버섯이라도 나왔으면 더 좋았으려나. (의미불명)

두드리자 님 / 저도 뮤지컬은 질색이지만 그래도 만족했습니다.
영화 표값은 계속 오르는데 DVD 타이틀 값은 계속 내려가더군요. 이 무슨 조화인지.
Commented by Werdna at 2008/01/22 11:46
뮤지컬이었습니까; 뭐 괜찮습니다. 전 귀가 어둡거든요 ^^
(비행기에서도 "Across the Universe" 인가 하는 영화를 보여주던데, 뮤지컬 영화라는 쟝르가 아직 안 죽었나봐요)
Commented by swanybak at 2008/01/22 13:44
전 심야로 형이랑 봤는데 대만족!

......친구는 여자 2명과 봤다는데...
Commented by hkmade at 2008/01/22 18:01
조조관람에 신용카드할인을 더해주는 센쑤.. 덕분에 항상 영화관에는 잠이 덜깬 부시시한 모습으로 간다죠. ㅎㅎ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1/22 21:13
Werdna 님 / 그냥 연기에 집중하면 됩니다. 한곡 빼고는 크게 거슬리지는 않더군요. ^^;

swanybak 님 / 여자도 여자 나름이었겠지만....;;;;

hkmade 님 / 요즘 극장 표값이 너무 비싸서,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전까지는 심야+카드를 애용했는데 이제 대학로 CGV는 심야 할인도 없는 모양이더군요. -_-+
Commented by 대마왕 at 2008/01/23 09:21
머리나 깍으러 가야지~ 킁
Commented by 네티 at 2008/01/23 17:29
팀버튼은 절 실망시킨 적이 없다보니...저역시 뮤지컬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Commented by 박군 at 2008/01/23 19:19
[=ㅁ=;];...
음;...;... 의외로 스위니 토드가 호불호의 것이었네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1/23 19:42
대마왕 님 / 목이 서늘하다면 조심하세요. ^^

네티 님 / 이번에는 뮤지컬이라는것 때문에 기대를 살짝 접고 봐서 그런가,
아니면 마지막 장면이 워낙 강했기 때문인가, 근래 작품들 중에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군 님 / 아무래도 개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겠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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