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1일
어느날, 그 길 위에서의, 작별


그는 난리통에 큰 부상을 입었다.
간신히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 그는 천천히 회복하여 드디어 다시 살아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안정된 환경의 안정적인 삶 속에서도 고향을 잊을 수는 없었다.
결국 고향을 향해 떠나 도중에 몇 번이나 사선을 넘은 그는
기어이 혼란스러운 고향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죽었다.

그는 이북을 떠나온 피난민이 아니라, 지리산 자락의 한 마리 삵이었다.



황윤 감독 다큐 '어느날…' '작별', 파멸로 떠밀려가는 야생동물


그는 대한민국 야생 생태계의 정점에 서있을 터였다.
그러나 인간들의 편리와 이익 앞에서 그러한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도달 시간을 30분 앞당기기 위해, 몇 천 마리의 새와 뱀이 죽어야 하는가.
한 철 벚꽃을 보기 위해, 몇 만 마리의 개구리와 두꺼비가 죽어야 하는가.

스크린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관객과 함께 커다란 화면에 띄워진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도
이런 독립 다큐가 만들어지고 상영되어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심정을 가진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듯.

팔팔이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by glasmoon | 2008/04/01 19:33 | Memory remains in...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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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r.hell at 2008/04/01 19:59
방송에서 소개된것을 보고 누군가는 의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했구나.. 싶었습니다.

오만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이시대를 사는 보통사람들이라면 꼭 봐줘야할 영화 입니다만, 허구가 아닌 실제 일어나는 다큐멘터리 이기에 어느영화보다도 공포스럽고 후유증이 오래갈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FOE뽀에 at 2008/04/01 20:00
아, 이 작품... 대구에서도 상영되는 곳이 있기에 볼까 생각했던 적이...
왠지 보고 나면 가슴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겠더군요...=_=)a;;;
Commented by shikishen at 2008/04/01 22:10
무심히 지나온 사실의 단면을 마주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알고 마음이 움직여도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감동보다 더 큰 슬픔이 찾아오더군요... 그래도 한 번은 챙겨보고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두드리자 at 2008/04/02 00:32
먼 훗날에 학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요.
"도대체 이 시대에는 왜 이렇게 많은 생물들이 멸종했는가?"
그러면서 그 학자들은 human이라는 생물의 실체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겠죠.
Commented by lily at 2008/04/02 12:25
늘 건프라관련 포스트를 보기위해 방문했는데..
오늘은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주제를 접하고 가는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정치적인 생각을 안할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왜 자꾸만 운하가 생각나는 걸까요...
Commented by 락키드 at 2008/04/02 12:49
저도 주말에 볼려고 했었는데, 보고나면 마음이 너무 한없이 무거워 질 것 같아 결국 보질 못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기필코 봐야겠네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4/02 17:55
모든 분들께 /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이기도 하고, 감독의 생각을 강요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냥 잔잔하게, 현실이 이렇다... 정도일까요. 그래서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지만.

Dr.hell 님 / 저는 못봤지만 방송에서도 소개되었었군요.

FOE뽀에 님, 락키드 님 / 기회 닿는다면, 어렵게 개봉한 작품인만큼, 한번 가서 봐주세요.

shikishen 님 / 그래도 무엇이 바뀌려면,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인 위에서야 가능하겠죠.

두드리자 님 / 인류를 견제하는 다른 요인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에게 너무나 큰 힘이 주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lily 님 / 저도 일부러 정치적인 언급은 피하는 편입니다만,
향후 5년간 이러한 문제들이 부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크게 발라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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