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0일
거리로 나선 시민들, 브이 포 벤데타


기억하라. 11월 5일을 기억하라.
화약 음모 사건. 그 사건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럼 그 남자는?
그의 이름은 가이 포크스. 그리고 V.




먼저 말해두지만, 이 영화를 개봉 당시로부터 한참이나 지나
최근에야 DVD로 보게 된 것은 지극한 우연의 결과일 뿐이다.
"매트릭스" 연작의 평가에 후하지 않은 나는 워쇼스키 형제(남매?)의 간판에 흥미가 없었을 뿐더러,
당시는 극장을 찾기는 커녕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찾아볼 여유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묵혀둔 영화를 이런 상황에서 보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라고 해야겠지.

이 영화가 3차 대전 뒤 근미래의 영국을 빗대어 독일 제3 제국의 파시즘을 표현한 것은 명백하다.
개봉 당시 스크린에서 보았다면 나로서는 전혀 지체하지 않고
'자본과 각본으로 포장한 "이퀼리브리엄(2002)"'이라고 쉽게 단정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그 영화의 국내 개봉 당시 카피가 매트릭스를 걸고 넘어져서 혹평이 많았더랬나)
이 영화의 불편한 괴리는 -물론 만화 원작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만화적으로 단순화된 배경 위에서
주인공 V가 쏟아내고 행하는, 단순화는 커녕 너무나 정치적인 단어와 행동들로부터 비롯된다.
그것들을 단순히 휴고 위빙의 멋드러진 발음에 실린 폼나는 반영웅의 대사로 치부하지 못하는 것은
국내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가.

영화 속의 영국과 실제 오늘의 이 나라는 오렌지와 어륀지만큼이나 다르다.
2MB는 도덕적 결함은 있을지언정 음모론을 통해서가 아닌 적법한 선거를 거쳐 당선되었고
지금 시청 앞의 사람들은 어떠한 영웅이나 희생자가 주도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몰려나왔다.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지금 시청 앞에 모인 능동적인 시민들에 비하면
작품 속에 가면을 쓰고 몰려나온 사람들은 영화가 끝날 무렵 항상 뒤늦게 사이렌을 울리며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상투적인 경찰차들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매개자가 있었든 혹은 없었든,
의사를 전달할 정상적인 경로가 막힌 상황에서 '민주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그 국민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기억하라. 그리고 오늘을 기억하라.
6월 10일.


DVD +080523: 철지난 액션!

by glasmoon | 2008/06/10 16:53 | Memory remains in...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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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8/06/10 21:13

제목 : 브이 포 벤데타
→공식홈페이지: 영어 / 한국어 세계 3차대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근미래의 영국. 애덤 서틀러 의장이 이끄는 독재정부가 정권을 휘어잡고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감시와 통제를 행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방송국 직원으로 일하던 이비 해먼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V'라고 부르는 기묘한 인물과의 만남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more

Linked at Dark Side of the.. at 2009/01/16 16:06

... . 우후후~ 다크 나이트 특집! 배트맨 정발! (續) 다크 나이트 특집! 배트맨 정발! 박쥐가 사람이 되는 방법, 배트맨 비긴즈 영웅이라는 이름의 가면, 다크 나이트 거리로 나선 시민들, 브이 포 벤데타 3D의 미셸 오슬로, 아주르와 아스마르 ... more

Commented by 天照帝 at 2008/06/10 16:57
전에 언젠가 그래서 20만명이 하회탈 쓰고 시청 앞에 모이면 어떨까 하는 얘기도 나왔었죠.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8/06/10 17:08
그래서 어떤 분은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리얼하게 가면 거기에서 발포하고 시민들 다 죽어가는 판에 지하철이 의사당에 크리티컬 먹여서 겨우 승리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말씀하셨죠.
Commented by 두드리자 at 2008/06/10 23:59
컨테이너로 벽을 만드는 걸 보고 황당하더군요. 기름칠을 하지 않나, 그 위에 태극기를 씌우는 바람에 태극기가 엉망이 되지 않나(시민들이 태극기를 회수했다더군요).
영화보다 지금이 더 초현실적입니다.
Commented by KAI2 at 2008/06/11 00:42
스스로 국민을 왕따시키는 대통령이라 ㅠ,ㅠ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8/06/11 07:42
2MB때문에 우리들이 V가 됬는데,과연 그 V가 Violence가 될지,아니면 Victory와 Vision이 될지...꼭 후자가 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군가 V 코스프레하고 시민들과 전경들 사이에서 비슷한 연설 좀 했으면 멋지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Commented by 대마왕 at 2008/06/11 08:59
케이블에서 주구장창 틀어대서 "여러번 시청 결과 조합해서 한편 다 보기" 로 보긴 봤는데..
거참 시시껄렁한 영화구나~ 하고 말았다는 기분었더랬죠....

Commented by Vinci at 2008/06/11 09:45
저는 정말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뭐랄까 새로운 모습의 신념을 본 느낌이랄까..
Commented by 니트 at 2008/06/11 10:35
여러모로 연출이 부족한 면도 많은데 한국에서는 일전의 독재시대 때문인지 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Commented by 살모넬라 at 2008/06/11 13:36
저는 시민들 뛰쳐나오는 엔딩이 (어느 정도는?) 환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중간에 죽은 사람들도 뜨문뜨문 섞여있었거든요.
근데 V의 신념이나 그걸 실행하는 과정이 좀 너무 한쪽으로 편중되어 그려져있다고 할까.. 별로 그런 거에 대해 깊은 생각없이 영화를 만들었단 느낌이라
영화는 재밌게 봤지만 딱히 잘만든 영화라고 하기엔 머하네여. 알란 무어의 그래픽노블이 원작이라던데 원작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버터를 듬뿍 바른 계란 얹은 토스트....-ㅠ-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6/11 21:04
원작은 영화처럼 깔끔하지 않고 되게 암울합니다. 가면쓰고 평화시위하는 장면도 영화 오리지널.
Commented by draco21 at 2008/06/11 13:58
이글루에 ... 저 가면 제작 하신다는분 있었던것 같은데.. ^^: 공동 구매 하면 주문해서 쓰고 나갈라고 했습니다. .^^:
Commented by galant at 2008/06/11 20:13
나탈리 포트만 출연작을 연속으로 보고 계시네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6/12 00:03
天照帝 님 / 그랬군요. 수십만 인파 중에 분명 가면쓰고 나온 분이 없진 않겠죠? ^^

시대유감 님 / 그 말씀도 일리가 있는데... 현재 국내 상황을 보면 참. 아하하.

두드리자 님 / 현대의 서울 시민은 판타지 세계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

KAI2 님 / 스스로를 왕따시키고 있기도 하죠. 쩝.

알트아이젠 님 / 어제를 무사히 넘겼으니 violence에 대한 우려는 한시름 접었습니다.
코스프레해도 재밌겠지만 그런게 받아들여질만큼 대박난 영화가 아니로군요. ^^;

대마왕 님 / 대마왕님께는 충분히 그럴만합지요. ^^ 저도 영화 내적으로는 딱히.

Vinci 님 / 확실히 신념을 이러한 방법으로 구체화하는 히어로는 없었으니까요.
다만 배경은 블랙코미디인데 캐릭터와 대사는 너무 심각해서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니트 님 / 음, 당시 반응이 그러했나요? (아 정말 당시 영화판을 모르는군요. TT)

살모넬라 님 / 맞아요. 마지막 장면에 죽은 사람들도 나와서 약간 의아했는데
환상 쪽으로는 생각 못했네요. 버터에그 토스트 완전 공감. -_-b

잠본이 님 / 그것이 영화 오리지널이라니, 원작 기준으로는 이 포스트 완전 엇박자군요. ^^;

draco21 님 / 저도 들었습니다. 기성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있는데 (모자와 가발까지)
인기가 좋은지 들어오는 족족 품절 뜨더군요. ^^

galant 님 /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닥 좋아하는 배우는 아닙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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