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8일
여섯 얼굴과 일곱 목소리 속에, 아임 낫 데어


굳이 거창하게 프로이트나 융의 페르소나 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사람은 자신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여러 가면을 바꾸어가며 살아가고
그렇게 맺어진 타인들과의 관계가 다시금 그 스스로를 정의한다.
어릴적 누구나의 책장 한켠에 줄지어 꽂혀있었을 다수의 위인들,
무언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충실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그 인생의 가장 크고 대표적인 두어 개의 면면을 -물론 적당한 과장과 극적 효과를 덧붙여-
400페이지 정도의 지면에, 그리고 2시간 남짓한 필름에 편집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순화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를테면 밥 딜런이라던가.




"벨벳 골드마인(1998)"으로 이미 한번 음악을 픽션의 가장자리에서 그려낸 토드 헤인즈가
밥 딜런의 인생을 다룰 수 있는 최초의 권한을 얻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당연했다.
그는 밥 딜런이라는, 색색가지 실이 제멋대로 뒤엉킨 복잡한 실타래를 억지로 풀려 하지않고
현실과 허구를 아우르며 추려낸 일곱 개의 면을 가진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여섯 명의 배우들을 통해 그 속에서 투영하고 재구성하고 또 교차시킨다.
이 일곱 목소리는 모두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짐으로써 각각이 다시 서로에게 간섭하고
실제 일어났던 사건은 물론 딜런이 생각했음직한 상상의 범위마저도 재치있게 표현해냈다.
그러나 각각의 면들이 크기가 모두 똑같았다면 극으로서는 지루해지게 마련이었을 것을,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밥 딜런의 삶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대중적이었던 시기를
가장 뛰어난 배우와 효과적인 장치를 통해 부각시킨 것은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목소리가 남성이냐 혹은 여성이냐 하는 것은 작품 전체에서 크게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지만
그 역할 전환이 의도한 바는 분명히 있었고, 효과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달성된 후에는 완전히 동화되어 녹아 사라졌다. 아멘.)

이 작품은 감상에 앞서 밥 딜런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까지 친절하지는 못하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밥 딜런에 대한 친절한 안내나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
또는 눈물을 자아내는 인간적인 감동을 얻길 바랬다면 번짓수는 제대로 틀렸다.
그러나 예술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온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어떻게 자유로운 방법으로 유쾌하게 맞장구쳐가며 그려낼 수 있는가를 본다면
설령 밥 딜런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음직하다.
일단 -페이크일지언정- 최소한의 설명은 있고, 무엇보다 음악이 있으니까.

여섯의 얼굴과 일곱의 목소리를 짜맞추어도 밥 딜런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움은 거기에 있었다.


by glasmoon | 2008/06/18 13:18 | Memory remains in... | 트랙백(1) | 덧글(9)
트랙백 주소 : http://glasmoon.egloos.com/tb/443070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렉시즘 : ReXism at 2008/06/18 13:23

제목 : [아임 낫 데어] 생경한 즐거움들.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은 대학 시절 봤었다. 그때부터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현란한 픽션 화면과 바삭 마른 다큐풍의 화면으로 교차하는 수법은 그릉대는 음악과 어우러져 좋은 기억을 심어줬었다. 좀 어지럽고 과시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나온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만발로 뻗은 가지의 탄탄한 고목을 대상으로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좀더 성실하고 차분하고 능숙한 어른의 자세로 인물을 다루고 있다. 밥 ......more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6/18 13:23
마지막 두 줄이 많은걸 말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이 영화 아직인데 볼까 싶어요.
쿵푸팬더 혼자 보고 난 이후 영화가 자주 보고 싶은데 특별히 보고싶다는 영화가 없었거든요. :)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8/06/18 15:19
저 포스터의 간지도 그렇고 무엇보다 배우들이 전부다 소위 '본좌급'들이라서 꼭 보고 싶네요.(...라지만 지방에 해주는곳이 없다는게 참...ㅜ.ㅜ)
Commented by zolpidem at 2008/06/18 16:11
무척 보고 싶던 작품인데...
아직 상영하는 곳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draco21 at 2008/06/18 17:09
찬사는 자자한 영화입니다만.... 제가 밥 딜런을 모르는 무식으로 무장한지라~!!!! (도주~!!!!)
Commented by 람모 at 2008/06/18 22:01
그러고 보니.. 배트밴과 조커가 공연한 영화네요.
정작 영화는.. 관심이..
Commented by 두드리자 at 2008/06/19 00:32
제가 보기는 힘든 영화겠군요. 요즘은 DVD 구하기도 힘든 세상이니. (갑자기 밥 딜런이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납니다)
Commented by 이터리얼 at 2008/06/19 11:59
밥딜런에 대해선 하나도 몰랐는데 재미있더군요ㅎ 역시 쟁쟁한 배우의 힘일까요;;;ㅎ
Commented by 파피루스 at 2008/06/19 19:29
밥딜런에 관한 심오한 영화라 할까나..

뭐 그렇군요.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6/19 20:02
나무피리 님 / 아니 연인군은 어쩌시고 혼자 보셨대요?
그러고보니 워낙 평이 좋아서, 저도 언제 '기분 내키면' 쿵푸팬더는 보고싶네요. ^^

알트아이젠 님 / 블란쳇 누님은 닥치고 추천이고, 베일도 능청스럽게 잘 했고,
레저는 약간 실망스럽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중간 이상은 해준 것 같더군요.
근런데 서울에도 걸린 스크린이 몇 안되더랍니다. 쳇.

zolpidem 님 / 일단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좀 더 걸려있을것 같던데요.

draco21 님 / 몰라도 큰 지장은 없습니다. 씨네21 기사 정도만 미리 찾아보고 가시면 최고.

람모 님 / 다크 나이트처럼 절 기다리게 만든 영화도 없을 듯. --
하지만 이 작품을 먼저 보고 나니 조커 연기가 얼마나 잘 나왔을지 살짝 불안 요소도?

두드리자 님 / 조금만 찾아보면 '아하 그사람~' 하실 겝니다. ^^;

이터리얼 님 / 음,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하나도 모르는게 감상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쟁쟁한 배우들, 특히 블란쳇 여왕님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닷. -_-b

파피루스 님 / 그닥 심오할것 까지는..^^; 그렇게 얘기하면 무지 어려운 예술영화 같잖아요.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