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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9월 07일
본 포스트에 앞서 배트맨 비긴즈 on score를 먼저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다크 나이트"의 국내 개봉이 미국 현지에 비해 3주 가량 늦었기 때문에, 그 사운드트랙 앨범은 영화의 국내 개봉보다 한 발 앞서 발매되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러 가기에 앞서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먼저 들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결과부터 말해서, 록 음반(및 그와 유사한 음반)이 아닌 영화 OST를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일은 일체 하지 못한 채 몰입해서 들었던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몰입했다기보다는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군요. ![]()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이번 "다크 나이트"의 음악도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공동 작업입니다. 초기에 공개된 트레일러에는 "비긴즈"의 음악이 사용되어서 설마 그대로 가는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설마는 설마. 결코 그런 일은 없었죠. 그러나 "비긴즈"의 음악에 기초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가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전작으로부터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이미 귀에 익숙한 "비긴즈"의 주제와 악절들을 살짝살짝 변형하거나 비틀어갔기 때문이었죠. "배트맨 비긴즈"의 영화가 한 수퍼 히어로의 탄생담이자 한 남자의 고뇌와 갈등의 이야기였기에 그 음악 또한 그 인물의 내외적 갈등을 따라가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에 비하면 "다크 나이트"는 영화부터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사건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고 있으므로 사운드트랙 앨범에 실린 곡들의 인과적 짜임새는 "비긴즈"에 비해 덜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죠. 엉켜있는 실타래의 세 가닥은 배트맨과 조커, 그리고 투페이스라는 것. 작품에서 히스 레저의 압도적인 연기 덕분에 조커만큼 주목받진 못하고 있긴 하나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과 조커와 더불어 투페이스가 존재함으로서 비로소 성립되는 작품입니다. 조커와 하비 덴트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외에- 될 수 있었던 두 면모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또 하비 덴트가 동전의 양 면처럼 밝은 쪽에서 어두운 쪽으로 뒤집어지는 과정이 플롯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투페이스가 배트맨 및 조커와 함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해도 결코 과장은 아니겠죠. ![]() "배트맨 비긴즈"의 음악이 배트맨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으므로 곡의 제목을 모두 박쥐의 학명에서 땄다면 "다크 나이트"의 음악은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그리고 키워드에 해당하는 대사를 곡명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기 전에는 일부 곡을 제외하면 그 제목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작품을 직접 보신 분이라면 그 제목과 대사가 뜻하는 바를, 그리고 곡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겠군요. 첫 세 곡, 즉 'Why So Serious'와 'I'm Not A Hero', 'Harvey Two-Face'는 제목에서처럼 세 주인공, 즉 조커, 배트맨, 하비 덴트(투페이스)를 상징하는 곡들입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도입부에 이 곡들이 순서대로 거의 그대로 이어지며 계속 깔리고 있죠. 저번과 마찬가지로 링크한 음질 나쁜 유튜브보다는 CD나 벅스, 멜론 등을 이용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대충 축약해서 그린 악보는 역시 적당히 봐주시고..;; #01 Why So Serious? 영화와 사운드트랙의 서두를 장식하는 'Why So Serious'. 작품을 본 분이라면 잊을 수 없는 곡이겠네요. 중간 D에서 한 옥타브 위의 D까지 신경을 거스르며 타고 올라가는 현악 효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배트맨과 정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 안티 히어로인 조커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비긴즈"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들려주었던 배트맨의 테마를 비틀고 조롱하며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 "비긴즈" OST에서 배트맨의 테마로 시작했던 'Vespertilio'와 비교해보면 16음표들이 이어지는 것은 같지만 'Vespertilio'는 네 음씩 정박으로 묶여 단3도 협화를 오르내리는 안정적인 형태였다면 'Why So...'는 세 음씩 엇박으로 묶은데다(a) 장2도 불협화(b)가 끝도없이 계속되고 있죠. 아래에 깔리는 부분도 'Vespertilio'가 완만한 호흡이었다면 'Why So...'는 불규칙적인 박동이 강하게 이어지며 그 위에서 D에서 F로 상승하는 영웅적인 선율이 배트맨의 주제였다면 곡의 말미, 같은 D에서 C로 떨어지는, 가슴이 내려앉는듯한 불편한 선언은 조커의 주제(c)가 됩니다. 돌아보면 9분이 넘어가는 짧지 않은 속에서도 -일부 경과/효과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곡 전체가 오직 D와 C, 단 두 음만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주 흥미롭죠. #02 I'm Not A Hero 두 번째 곡 'I'm Not A Hero'에서는 스스로 영웅임을 거부하는 배트맨이 등장합니다. 첫 곡 'Why So...'에서 조커에 의해 비틀려졌던 단3도 스타카토와 완만한 호흡이 돌아오지만 여전히 불안하죠. 그리고 그 위에서 불안정한 배트맨의 새로운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이는 "비긴즈"에서의 성공적인 데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활동이 힘들어진 배트맨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 이 선율은 배트맨의 D-F 테마(d)에 기초하고 있지만 F로 상승하기에 앞서 C#으로 한번씩 내려간다는 점이(e) 배트맨의 불안한 심리와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곡이 치닫는 후반부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D-F의 배트맨의 테마마저도 C# 위에서 울려지면서(f) 배트맨의 힘과 활약에 의문을 품게 하죠. 이 D-C#은 조커의 D-C와 대비되는 부분이며 둘 모두 이후에도 계속 등장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 여기에서 배트맨을 상징하는 D-F 주제를 한번 정리해 볼까요. "비긴즈"의 'Vespertilio' 이래 "다크 나이트"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D-F의 상승 선율입니다.(1) 'Barbastella' 등 일부 곡에서는 단순히 D 기반의 F로 상승하지 않고 저음부가 Bb으로 받쳐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Bb이 단3도의 선율의 아래를 완전5도로 단단하게 지지하면서 승리의 팡파르인양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2) 저는 이것을 간단하게 '배트맨의 영웅 선율'이라고 잠시 이름붙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I'm Not...'에서처럼, "다크 나이트"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가 등장합니다. D에서 F로 상승하는 같은 선율 아래 저음부는 Bb이 아닌 C#로 하행하여 불안정한 단4도 음정을 형성, 영웅 선율과는 반대로 오히려 미해결에 따른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것이죠.(3) 이렇게 D-C#으로 하행하는 선율이 완전히 D-C로 떨어지면 그 불안감은 눈 앞의 현실로 구체화되어 'Why So...'에 등장했던 조커의 주제가 됩니다.(4) #03 Harvey Two-Face 세 번째 'Harvey Two-Face'는 제목 그대로 하비 덴트 또는 투페이스의 곡입니다. ![]() "배트맨 비긴즈"에서 "다크 나이트"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음악 전체가 주로 D 단조 위에서 진행되지만 이 곡만은 F에 #이 붙어 예외적으로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 D 장조로 시작합니다.(g) 완전히 새로운 부분이죠. 그러나 이 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다시 D 단조로 돌아오게 되며 그 위에서 진행되는 주제는 "비긴즈" 서두의 'Myotis'에서 나왔던, 배트맨 이전의 영웅적 주제이죠.(h) 비긴즈 OST에서 저는 이것을 브루스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을 뜻한다고 생각했는데, 배트맨은 자신의 영웅이자 순수한 선(善)인 토마스의 이미지를 하비에게서 찾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담의 백기사(White Knight)로서의 하비 덴트의 호쾌한 활약은 얼마가지 못해 절망에 빠지고 "비긴즈"의 'Macrotus'에서 비롯된 선율과 함께 절규합니다.(i)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사이에 핵심적인 부분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비긴즈"의 첫 세곡, 'Vespertilio'와 'Eptesicus', 'Myotis'의 핵심적인 주제나 요소들이 독립하여 각기 조커, 배트맨, 투페이스가 된 셈이죠. (배트맨 부분은 후의 'Like A Dog...'에서 명확해집니다) 리듬의 변화와 더불어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조성인데, 'Eptesicus'와 'Myotis'의 아래 부분처럼 "비긴즈"의 곡들에서는 D 단조와 함께 그 관계조인 G 단조도 커다란 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그 부분들을 모두 D 단조로 환원시키고 있습니다. ![]() 이렇게 맨 앞의 -그러자 가장 중요한- 세 곡은 주인공인 세 캐릭터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배트맨은 여전하지만 상황과 함께 불안은 증폭되고, 그의 어둡고 음산한 면이 극대화되어 조커로 등장하며, 그가 배트맨이 되기 전의 선한 면모를 가진 하비는 그와 똑같은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세 곡, 'Aggressive Expansion'과 'Always A Catch', 'Blood On My Hands'에서 다시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의 세 캐릭터는 연장되고 변주되죠. 그리고 이 세 줄기는 드디어 서로에게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08 Like A Dog Chasing Cars 'Like A Dog Chasing Cars'에서 배트맨은 드디어 전면에 나서지만 'I'm Not...'에서 비롯된 불안은 여전합니다. ![]() 분명히 D를 중심으로 달리고 있지만 마음놓고 F로 상승하지 못하고 계속 C#을 돌아보고 있죠.(j) 이 와중에 16분 4연음으로 계속되던 리듬이 바뀌어 3개씩 묶이는 것은 명백히 조커, 'Why So...'의 영향입니다.(k) 불안을 떨쳐낸 배트맨은 "비긴즈"의 'Antozous'와 'Molossus'에서처럼 힘차게 질주하며 'Eptesicus'에서 'Lasiurus'로 이어졌던 G 단조의 주제가 D 단조로 옮겨진 '다크 나이트의 테마'를 울립니다.(l) 그러나 그 직후, 조커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죠. 가슴이 내려앉는 D-C 하행 뒤에 조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이 'Like A Dog...'의 구조를 그대로 축소하여 살짝 변주한 'And I Thought My Jokes Were Bad'를 지나 'Agent Of Chaos'에 이르면 배트맨과 조커에 더해 'Barbastella'와 'Macrotus'에서 비롯된 투페이스까지 가세하여 긴장, 분노, 광기, 슬픔이 모두 뒤섞인 그야말로 혼돈의 상태가 되죠. #12 Introduce A Little Anarchy 이어지는 'Introduce A Little Anarchy'에서 배트맨과 조커는 마지막으로 충돌합니다. 'Like A Dog...'의 중간에서 바로 이어진 듯 처음부터 압도적인 힘으로 조커를 밀어붙이는 배트맨이지만 갈수록 둘을 휘감은 공기는 음습해져만 갑니다. ![]() 긴 싸움 끝에 배트맨은 힘겹게 승리를 말하지만(m) 그에 바로 이어 조커도 스스로의 건재함을 알리죠.(n) 결국 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이후에도 계속될 것임을 알리며 곡은 불안정한 미해결인 채 끝나버립니다.(o) 승자도 패자도 없이 서로 상처입고 물러난 가운데 고담에는 불타버린 잿더미와 혼돈만이 남았습니다. 'Watch The World Burn'은 'Introduce A...'에서 일단락된 사건의 잔향이지만 불규칙한 베이스의 도약 선율 위에 올려진, D에서 A를 거쳐 B까지 올라가며 희망을 발견하는 듯하다가 다시 D로 주저앉아 팔을 뻗는 현의 울림은 'Why So...'만큼이나 선명하고 'Lasiurus'만큼이나 처절합니다. #13 Watch The World Burn #14 A Dark Knight (part 1) #14 A Dark Knight (part 2) 그리고 질주하는 배트맨의 모습 뒤로 'A Dark Knight'가 흐릅니다. 'Like A Dog...'에서의 다크 나이트의 테마와 'I'm Not...'의 일부분을 계속해서 변주해 나가며 영화에서 말하는 대로,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영웅이 될 수 없는 배트맨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 그러나 조성의 변화 없이, D 음만을 중심으로, 본질적으로 하나인 주제만을 가지고 끝날 듯 끝날 듯 계속 이어지는 이 곡은 어쩐지 너무 늘였다는 느낌을 주는 듯도 하죠. 앨범에 2분 안팎의 소품 내지 효과에 가까운 곡도 있는 것에 비하면 16분이 넘어가는 것은 역시...? 대작 영화의 마무리에 걸맞는 대곡에 대한 한스 짐머 혹은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욕심이었을까요. 큰 의미가 없는 제1 변주(4분 23초 ~ 7분 8초) 부분을 비롯해서 일부를 덜어내고 호흡도 가다듬어 8~10분 정도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법한데. ![]() 영화도 그러하지만 사운드트랙에서도, "다크 나이트"는 그 자체로서 이미 훌륭하지만 "비긴즈"를 잘 알고있다면 그 감흥이 몇 배가 되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익숙하지만 뭔가 다른 그 느낌을 주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음악들이 대단히 매력적이죠. (그 덕에 저도 이런 무식한 포스팅을 해보고..--;;) 또한 그 음악적인 모든 근원이 "비긴즈"에 있다는 것은 배트맨과 조커, 투페이스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세 가지 모습의 형상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음색의 측면에서는 "비긴즈"에서 증명했던 현악기의 탁월한 사용에 더해 일부 전자악기와 타악기가 대거 가세하여 일렉트로닉스 음악의 앰비언트적인 색채마저도 보여주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Why So Serious?'의 그 숨막히는 긴장감과 터질듯한 박동, 가슴이 서늘해지는 C의 선언은 영화음악에서 결코 듣기 쉬운 것은 아닐테죠. 전체적인 곡들의 유기적인 짜임새에 있어서는 워낙 걸출했던 "비긴즈"를 따라가진 못했지만 그것은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 자체가 워낙 복잡한 캐릭터와 얼개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할테고, 조커의 웃음소리와 함께 혼돈의 공포와 어두움의 본질을 음악적으로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배트맨 연작 사운드트랙은 그들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과연 놀란의 배트맨이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다크 나이트의 음악 얘기를 조금 해보려다가 이 짓을 두 번씩이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영화음악 관련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이 엉터리 날림 분석을 베끼거나 참고할 경우 그 뒤에 듣게 될 꾸지람이나 망신에 대해 저는 일체 책임지지 않습니다. ^^; 배트맨 비긴즈 on score 기대의 저편, 다크 나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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