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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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거나 혹은 틀리거나, 디스트릭트 9 by glasmoon



우리말을 표현하는데 있어 현대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잘못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이고 거기에는 '나와 다른' 것은 '틀린(=잘못된)'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또는 비타협적 사고가 깔려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로서는 그것이 그런 사상적(?)인 문제나 혹은 다른 무언가에 기반한다는 원인 규명보다는 오히려
거꾸로 이 잘못된 표현이 용인되고 지속적으로 학습된 결과 단순히 잘못 쓰이는 정도를 넘어
'다른게 틀린거 아냐?' 라는 대책없는 마인드가 기저에 자리잡아 고착화되는 것이 두려울 뿐인데...
가장 친한 불X친구들과의 자리에서도 아무리 지적해봐야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며 자포자기한 지 오래.
신문을 펼쳐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편 가르고 '우리와 다르면 적!'이라 외치고 있으니 누굴 탓하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낯설음, 공포, 질투, 멸시에서 비롯된 차별, 증오, 억압, 핍박은
인류의 진화와 함께 해왔고 소위 지성 사회라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디스트릭트 9"은 그러한 부분을 말한다.



영화 첫머리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외계인의 우주선이 도달한 자리가 미국의 뉴욕이나 시카고가 아니라
하필 흑백 갈등의 대표지였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이라는 점, 그리고
외계인들을 더욱 심하게 차별하며 갈취하는 이들이 과거 그 입장에 있었던 흑인들이라는 점 등의 요소들이
백지에서 튀어나오지는 않았을 것임을 생각하면 -물론 다음에 만들 몇 작품을 더 보아야 하겠지만-
현지 남아공 출신의 신인 감독 닐 블롬캠프의 역량이 제작자인 피터 잭슨에게 적잖이 가려진 감이 든다.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블롬캠프의 2005년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Alive in Joberg)"에 기초한다)
그러나 비록 메세지를 담고 있다 한들 차별과 억압을 다룬 훌륭한 작품은 전에도 많이 있어왔고
기본적으로 이 "디스트릭트 9"이 고발 영화가 아니라 오락 영화임을 감안할 때
이 영화의 미덕은 알맹이(내용)와 껍데기(오락성), 그리고 포장(편집)의 기막힌 균형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액션 팬들을 위한 로봇 전투의 서비스도 충실하거니와 (나로서는 전투 장면이 좀 길다고 느껴지긴 했다)
흔히 하는 것처럼 영화 도입부의 분위기를 잡고 그럴듯해 보이도록 치는 양념에 그치지 않고
중간중간을 거쳐 마무리까지 고집스럽게 유지된 건조한 시점과 불친절한 편집은
다큐멘터리의 기법에 충실했다고는 하기는 어렵겠으나 -SF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또 마찬가지로 "얼라이브..."에서 그대로 옮겨와 주연을 맡은 샬토 코플리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으니
'저런 찌질이를 2시간동안 보려면 적잖이 괴롭겠군'이라는 초반의 우려를 날린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는
-'자식(새끼)은 귀엽다'는 범우주적(?) 장치가 사용되긴 했으나- 어느새 친숙해진 거대 바퀴벌레와 함께
혐오스러운 대상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영화적으로 흔치 않은 경험을 맛보게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영화는 겉으로도 손으로 꼽을 만큼 몇몇 설정의 헛점을 드러내지만
(물론 뒤에 이런저런 설정이 있을법 하지만 최소한 작품 내에서의 설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SF 장르의 영화임에도 대단히 높은 체감적 사실성을 획득했다.
당장 영화 속 '외계인' 등의 자리에 대신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은 주위에 널렸으니까.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호평이 이어지다보니 벌써부터 속편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좋은 작품의 느낌을 후속작에서 이어가고픈 지지자들의 바램은 알고도 남겠으나
나로서는 어지간하면 이 영화의 속편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담긴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형식적인 신선함은 이미 이 한 편으로 모두 소진되었으며, 내용 또한 훌륭하게 일단락되었다.
이걸 다시 끄집어내어 살을 붙여봐야 잘 만든다 해도 매트릭스의 속편들 꼴밖에 더 나나.
볼거리만 늘어놓는 멍청한 액션 영화가 되던가, 전쟁 후 화해한다는 신선놀음 판타지가 되던가 할 뿐.

이 작품의 힘은 이것이 인간과 외계인의 대결을 그린 SF 영화여서가 아니라
그를 빌어 인류 안의 갈등, 그리고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를 오간 개인을 이야기한 데서 나온다.
차별 구역(=디스트릭트)은 아직도, 여전히, 어디에나 존재한다.



덧글

  • 울트라김군 2009/10/17 17:44 # 답글

    후속작은 바라지 않지만
    3년 내로 괜찮은 배틀 슈트 피규어 하나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카바론 2009/10/17 20:24 # 삭제

    아아, 짱멋있죠.
    근 10년 안에 영화에서 본 2족 보행탑승병기중에서 제일 볼만했음.
  • 잠본이 2009/10/17 17:49 # 답글

    정말 이걸로 그냥 딱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어봐야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이라;;;
  • 자련 2009/10/17 22:25 # 답글

    정말 멋진 영화였습니다.
    후속작이 나오길 바라지만...나온다면 인디펜더스데이 스토리겠죠??
  • 두드리자 2009/10/17 22:45 # 삭제 답글

    감독에게 바라시는 건 속편이 아니라 차기작이군요.
  • 배트맨 2009/10/18 00:26 # 답글

    꽤 만족스럽게 관람했는데, 저도 그냥 D9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워낙 호평 속에서 떼돈을 벌어서, 피터 잭슨은 고민을 좀 하게 되겠네요. ^^;
  • 염맨 2009/10/18 00:36 # 답글

    게다가 형식적으로는 사실 그리 '신선'하지도 않지요. 좋은 영화로 완성되긴 했지만.
  • KAI2 2009/10/18 01:06 # 삭제 답글

    SF 영화라 보기보다는 남아공에서 있었던 흑인 인종차별을 비꼬는 영화더군요... 영화는 재미 있었고 무언가를 생각 하게 하는 영화더군요.
  • 2009/10/18 02: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glasmoon 2009/10/18 10:35 # 답글

    울트라김군 님 / 사이드쇼든 핫토이든 알아서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
    근데 저는 이제 그런걸 봐도 별로 동하지 않는 것이, '어차피 CG잖아'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인지..;;

    잠본이 님 / 속편에서 꿈과 희망을 찾기 시작하면 영화는 산으로.

    자련 님 / 속편이 갈 수 있는 최악의 루트 중 하나겠지요. 쿨럭.

    두드리자 님 / 첫 시작이 대박이라 향후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것이지요. ^^

    배트맨 님 / 잭슨이야 돈 벌만큼 벌어봤으니 아쉬울것 같진 않은데... 주위에서 놔두지 않으려나요?

    염맨 님 / 그래도 클로버필드처럼 대놓고 따라하기보다는 앞뒤로 적절히 조합한 것이 꽤 괜찮았습니다.
    블레어윗치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것들 중에서 단연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

    KAI2 님 / 역사는 반복된다는 얘기가 되려나요?

    비공개 님 / 엔딩에서 너무 명확하게 보여준 게 아니냐는 의견도 종종 보았습니다마는
    전 나쁘지 않았던 듯합니다. ^^
  • 내일공방 2009/10/19 02:40 # 답글

    80년대 프레데터 라든지 폴버호벤의 로보캅1,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차별구역은 여전히 어디서나 존재 하기에 이영화의 체감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 왔었죠
    이영화를 한마디로 하자면 영민한 설정의 성공 이라고 할까요?
    그들을 닮은 외계 로봇 메카닉 이 멋져서 구조를 파악 하느라 눈이 바빴습니다.
    대놓고 비꼰 구석 많았던 폴 버호벤의 스타쉽 트루퍼스 이후로
    실로 간만에 걸출한 SF 영화 가 나왔다는 느낌
    뜨거운 디스트릭트9 속편을 주변에서 그냥 두지 않겠지마는 속편보다는 닐 블롬캠프 차기작이 더 기다려 집니다.
  • draco21 2009/10/19 03:12 # 답글

    .... 보러갈 시간을 내야 겠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있다하여 망설였습니다만...
  • glasmoon 2009/10/21 17:51 # 답글

    내일공방 님 / 전 스타쉽 트루퍼스를 썩 높게 평가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후로 그만한 SF도 드물었다는게 참.
    (아마 파워드 수트라도 제대로 묘사되었다면 평가가 급반전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디스트릭트 9의 속편이라 해도 뻔히 예상되는 것들 말고 전혀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을텐데,
    역시 그건 좀 참아주고(...) 신선한 작품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draco21 님 / 뭐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습니다마는 저는 딱히 슬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
  • doldul 2009/10/24 16:00 # 삭제 답글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한 논란은 솔직히.. 언뜻 들으면 그럴 법도 하다고 수긍하기 쉽지만, 실상은 상당히 작위적이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단순한 '현상'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미 부여에 집착하려 한 소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다르다'가 아닌 '틀리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어떤 가치 판단/의식을 갖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비록 화자가 그것을 자각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잠재의식에서라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도 비약할 수 있겠지만, 역시나 꽤나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너랑은 틀려'라고 하면 예의 해석이 타당한 듯도 합니다. 하지만 '그랑 너는 틀리다', '너랑 그는 틀리다'라는 또다른 일상적인 두 문장을 비교할 경우에, 과연 '그'와 '너' 중 어느 쪽이 'wrong'인 쪽인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어떤 가치 비교/우열 판단이 개입되어 해석될 여지가 있을지요..? ^^

    different와 wrong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쓰이는 영어나 그외 다른 나라 언어들과는 달리, 우리말 단어 '틀리다'는 분명 애초부터 different와 wrong의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해 중의적으로 쓰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고 서로 다른 단어이어야 한다는 틀에 굳이 끼워맞추다 보니 그런 억지 해석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잠깐 검색해보니 역시나 이런 게 저만의 생각은 아닌 듯 하네요~*^^*)
  • glasmoon 2009/10/24 20:28 # 답글

    doldul 님 / 저도 그 원인이 그렇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힘들지만 원인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가는 경우들이 보여서 걱정된다고 쓴 부분이었죠. 예로 드신 '너랑은 틀려'라는 문장이 이미 잘못 사용된 경우거든요. ('너와는 달라'가 맞습니다) 틀리다는 옳다 그르다의 개념이므로 '너와 그는'이라는 식의 비교 용법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틀리다'가 중의적인 뜻을 갖는다는 이야기의 논거는 무엇인가요? 저는 일단 처음 듣는데다, 두 단어의 차이점에 대해 언론이나 매스컴에서 이야기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가장 기본인 사전의 '틀리다' 항목을 찾아봐도 '다르다'의 의미로 썼을 때는 잘못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
  • doldul 2009/10/24 23:50 # 삭제

    아 일단은.. 제가 '다의적'이라고 해야 하는데 '중의적'이라고 잘못 썼군요..^^;; 바로잡습니다. 그리고 앞서도 썼지만, 관련해서 검색해보니 나름 정리를 잘 해놓은 프레시안 기사가 있네요~^^(http://keyword.pressian.com/articleK.asp?guide_idx=2476)

    내용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틀리다'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5세기 중세국어 이전부터라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제가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違う(치가우)'라는 일본어 또한 '틀리다/다르다'의 의미를 같이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익히 알려져있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을 감안하면 이 또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단서가 되겠죠(일제시대 언어습관의 잔재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이 표현 자체가 본래 일본어와 한국어에 모두 존재해왔다고 보는게 타당할 듯 합니다). 아마 그외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는데요, 여하간 일본에서도 같은 예가 있으니 일본인들 역시 자기 중심적인 배타적 사고가 그들 잠재의식의 근간에 있다고 하는 것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틀리다'가 'wrong'의 의미를 가질 때 그 부정적이고 배제/배타적인 어감 자체가 심히 거슬리다 보니, '다르다'와 '틀리다'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이는 우리 언어습관의 현상을 두고 이런 논란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비이성적일 정도로 좌우 이념대립의 골이 깊고 또 오래 지속되어 온 예를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에, 그런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 건 아닐까요. 게다가 근래 들어서 점점 크게 부각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빈곤층 및 경제적 취약층/장애인/여성/외국인)에 대한 제도적 미비점들과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배려 없는 차별 의식, 무관심에 대한 경각의 목소리와 안타까움이 더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자조적 인식이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는 점도 그러한 배경이 되겠죠.. 뭐 어디까지나 사견입니다..*^^*
  • glasmoon 2009/10/25 04:57 #

    호오, 재미있는 기사...는 아니고, 칼럼이라기도 그렇고, 하여간 흥미로운 글 덕분에 읽었습니다.
    그 글 또한 글쓴이가 밝혔듯 사전 말미의 짧은 출전 표시 하나만을 가지고 전개한 사견으로 여겨지지만...
    일단 제목인 영화와 관계없는 부분이 길어지고 있으므로 따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
  • doldul 2009/10/25 21:00 # 삭제

    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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