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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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이 어쨌길래, 작은 연못 by glasmoon



좋든싫든 이 나라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끔은 의무감 비슷한 것으로라도 보아야만 할 듯한 영화가 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던가, "꽃잎"이라던가 하는 작품들.
당시에는 할 수 없었던, 오랫동안 죽여왔던 목소리와 이제서야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
아직도 수없이 묻혀있는 그 이야기들 중 하나가 오랜 기다림 끝에 선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라면 일차적으로 그쪽에 먼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기에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노근리 사건의 진실과 향방' 자체에 집중되어 있고
부차적으로 '굵직한 배우들의 노 개런티 봉사' 정도가 언급되는 것은 그럴만하다 하겠다.
이 영화가 반미 코드로 점철되어 있다느니, 인민군을 해방자로 묘사하였다느니 하는 일부의 지적은
그렇게 보는 것도 시각의 하나요 또 늘상 그래오던 매체들이니 그러려니 하자.
그런데 정작, 하나의 영상 작품으로서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왜일까.

한국전쟁중이던 1950년 7월 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인근 경부선 철교에서
피난중이던 사람들 속에 인민군이 섞여있다고 의심한 미군에 의해 3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외에, 이 작품에서 영화로서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몸값만 합쳐도 어지간한 영화 한 편의 제작비는 나올 쟁쟁한 배우들은 물론
내노라하는 조연급 배우들까지 총출동하여 황송하게도 한꺼번에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 사건의 많은 희생자 혹은 생존자 중의 한 명으로 자리할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이 심각한 내러티브의 부재는 작품의 진정성마저 희석시키니, 이것이 다큐멘터리는 아닐진데
조금 과장해서 국민학교(초등학교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시절 반강제적으로 모여 앉아 보았던
비슷한 내용을 가진 수많은 알맹이 없는 반공 영화들과 입장 외에 다를게 무어란 말인가.
군데군데에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쓰나 그것은 뜬금없는 허공에의 헛발질.

'한국전쟁 노근리 사건 최초 영화화'라는 카피가 이 영화의 의미이자 한계인 듯하다.
아직 노근리 사건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는 교육 효과라도 있으려나.
만약 무리를 해서라도 노근리 사건이 드러나는 중이었던 4~5년 전 쯤에 개봉되었다면
완성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고발 영화로서 보다 나은 위치를 확보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호소하지만 그것은 스크린 안에서만 공허하게 맴돈다.
어설픈 요리는 재료를 망칠 뿐, 귀한 것을 담았다 하여 모두 훌륭한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러닝 타임이 채 90분이 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故 박광정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점 정도로 위안을 삼는다.



덧글

  • 아노말로칼리스 2010/04/28 11:47 # 답글

    과거의 반공영화 보다가 고어영화에 트라우마가 생긴 1인입니다.

    사실 그 학살 그 자체보다 그 학샐뒤의 배후, 목적, 의도같은걸 파헤치는 게 영화적으로는 더 볼만할텐데 말이죠.
  • 노이에건담 2010/04/28 23:55 # 삭제 답글

    차라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픽션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논픽션에 무게를 두다보니 극적인 요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듯 보이네요..
    좋은 소재와 배우를 쓴다고 반드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만은 아닌듯 합니다..
  • glasmoon 2010/05/02 17:41 # 답글

    아노말로칼리스 님 / 이 영화도 중반부 고어 장면은 참 길더군요. 의도는 알겠으나..--;;
    사건의 배후나 목적같은걸 꼭 파해쳐야만 하는건 아니지만 그를 대신할 무언가가 없었다는게 문제일까요.

    노이에건담 님 / 그냥 '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분해요! 끝.' 이런 느낌. orz
    아노말로칼리스님도 비슷하게 말씀해주셨지만 극영화든 다큐든 한 쪽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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