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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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이 되고픈 막시무스, 로빈 후드 by glasmoon



옛날옛적 무예와 이치에 밝은 이가 있어 어려운 시대에 뜻을 펴지 못하다 죄를 뒤집어쓰니
산으로 들어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도적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부패한 관리와 타락한 승려들이 끌어모은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돌려주니 의로운 이름이 전국에 울렸고
조정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그를 막으려 하나 신출귀몰한 재주가 극에 달하여 끝내 잡을 수 없었다.
그의 필생의 한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아 이건 홍길동전이지. 뭐 다 비슷한 이야기잖아.




리들리 스콧이 골백번은 만들어졌을 "로빈 후드" 이야기를 다시 잡게 된 동기는 잘 모르겠으나
전해오는 그 인물과 그 이야기를 그대로 만들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임은 충분히 알았나보다.
케빈 코스트너를 데리고 케빈 레이놀즈가 찍은 1991년판이야 그 시절이니까 흥행이 된 거지
아방가르드하다는 요즘 시대에 그런 범생같은 영화가 나오면 쪽박차기 딱 좋지 않은가.
그래서 로빈 후드는 숲속의 말쑥한 미중년에서 로마시대에 활약하던 터프한 검투사로 바뀌었으니
이왕 삐딱하게 나갈거 그렇게 확 전환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여기 설정으로는 사자왕 리처드와 함께 십자군 원정을 다녀온 베테랑 군인이라는데 그정도는 기본?

그러하니 이야기의 핵심은 탈영병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의적 로빈 후드가 되는 이유와 과정인데,
여기에서 리들리 스콧은 뭔가 거창한 역사적 대의명분을 찾아 연결하는 그 작업을 또다시 반복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가족을 잃은 개인의 복수가 공화정의 회복으로 장식되고,
"킹덤 오브 헤븐"에서 가족을 잃은 개인의 기사도가 종교다원주의로 승화(...)되었던 것처럼
이번의 로빈 후드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를 통해 백성을 위하는 의로운 마음을 살려낸다.
아 이미 제정이 확고해진 로마에 코모두스가 죽었다 하여 공화정으로 돌아갔을 리 만무하고
기독교가 절대 진리인 중세 전쟁의 한복판에서 적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니
왕에 대한 귀족과 호족들의 권리 선언이었던 마그나카르타에 평민이 무슨 관계냐 하는 것은 대충 넘기자.
할리우드의 서사 영화 한두번 보는건 아니지 않은가. 영화적 장치로 잘 사용되면 그만이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잘 사용된것 같지 못하다는 거다.
"글래디에이터"의 전개는 비록 낯이 간지러울망정 '역시 사나이라면' 하는 폭풍 간지(...)를 내뿜고
"킹덤 오브 헤븐"의 연설은 비록 시대를 한참 앞서갔어도 여전히 요원한 현실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나
여기의 그것은 석공의 아들이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한 최소한의 단서(랄까 핑계랄까)를 제공하는데 그친다.
"브레이브 하트"의 찐득한 외침처럼 신파로 흘러가지는 않은걸 다행이라 해야하나.
안그래도 할 이야기는 많은데 그 핵심이 이러하니 나머지 부분들의 결속력은 강할 리 없어
초반 공성전과 막판 해변전투의 스펙터클, 리들리 스콧답게 기막히게 되살려낸 13세기 영국의 풍광,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과 윌리엄 허트, 막스 폰 시도우 등 화려한 배역진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흐름은 매끄럽게 이어져 강하게 다가오지 못한 채 산만하게 흩어진다.

분명 표값이 아까울 지경은 아니었지만 스콧과 크로우의 이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로빈 후드"가 중세 영국판 "글래디에이터"가 되고자 했다면 좀 더 힘을 빼고 좀 더 뻔뻔해지는게 나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스스로의 위치를 잃게 만든다.


덧1. '스콧 프리' 방식으로 만든 엔드 크레딧은 끝장.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덜덜~~
덧2. "킹덤..."에서 고프리의 부하였던 벨리버 토픽은 여기서도 고프리의 심복.
덧3. 위기를 모면하자 태도를 뒤집는 존 왕의 방식은 최근 동아시아 모 국의 가카 그대로. 큭.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킹덤 오브 헤븐


덧글

  • 울트라김군 2010/05/15 13:13 # 답글

    저도 오늘 조조로 보고 왔는데...
    초반부 공성전만 재미있게 본거 같네요[...]
  • 동사서독 2010/05/15 13:52 # 답글

    삼국지에서 다른 건 다 뒤집어도 관우와 제갈량만큼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업계 불문율인 것처럼
    셔우드 숲의 로빈후드는 특유의 로맨틱한 매력을 살려줬어야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진지하고 하드하고 히스토릭한 버전을 원했다면' 윌리엄텔'을 영화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구요.)
    로빈후드는, 예나 지금이나 독자/관객이 기대하는 코드 자체가 다른 도적놈들과 다른지라, 차라리 에로 버전을 만들면 모를까 지나치게 딱딱해지면 죽도 밥도 안될 수 있지요.
    그 코드 자체가 몇 백년을 내려오면서 빚어진 것이라 쉽게 바꾸기도 어렵고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었는지라 '관운장'의 그것처럼, 자칫 관객/독자에게 일종의 '역린'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싶습니다.
  • 뚱띠이 2010/05/15 20:20 # 답글

    케빈 코스트너의 로빈훗 ㄷ음으로 나온 패러디 로빈훗이 더 재미있었어요...

    기억나는 대목이....

    로빈훗의 적이 로빈 보고 네가 이길 것 같냐고 물으니 로빈 왈.

    "당연하지! 난 정확한 영국식 영어를 쓰거덩..."


    OTL.........................
  • 굇수한아 2010/05/15 21:55 # 답글

    역시 활보다는 둔기가 잘어울리는 로빈후드라니.....ㄷㄷㄷㄷ
  • 두드리자 2010/05/15 23:45 # 삭제 답글

    존 왕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나온다면 관객들이 실망하겠죠.
    그래도 일단 보통은 넘은 모양이군요. 기대하시는 '아주 높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도.
  • 노이에 건담 2010/05/16 05:38 # 삭제 답글

    중세판 글래디에이터 딱 그 느낌이던데요...
  • 아노말로칼리스 2010/05/16 23:30 # 답글

    케빈 코스트너판 로빈 훗의 광팬이라...
    미묘하게 이영화는 안땡기더라고요. DVD나 나오면 볼생각.

    케빈판은 모건프리맨, 알란 릭맨, 크리스찬 슬레이터에 숀코네리까지...지금 생각해봐도 환상의 캐스팅이네요~^^
  • bullgorm 2010/05/17 01:12 # 삭제 답글

    뭐랄까 존왕 패거리들한테 쫓기며 숲속을 헤메던 아가씨 허리를 난데없이 밧줄을 타고 날라와 나꿔채고서
    구해줌과 동시에 참기름 한 드럼통 정도의 느끼한 미소와 함께 윙크 한 방 거~하게 날려줘야 그게 로빈훗이라는..

    (만약 러셀 크로우가 그랬다면.. ㅡ,.ㅡ;;;;)
  • glasmoon 2010/05/17 16:19 # 답글

    울트라김군 님 / 부분적으로는 나쁘진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따로 노는 느낌..;;

    동사서독 님 / 아, 윌리엄 텔도 있었군요. 완전히 잊고 지낸 이름.
    저야 로빈 후드 자체에 고착화된 이미지가 없어 다행인데, 말씀하신 관운장의 역린은 그 교복? 크큭

    뚱띠이 님 / "못말리는 로빈 후드" 말씀이시로군요. 꽤 재미있었어요. ^^

    굇수한아 님 / 저 이탈리아판 포스터가 핵심을 제대로 짚었지 싶습니다. 쿨럭~

    두드리자 님 / 그런데 보통 정도라는게 이미 비판이 되는 이름들이라..--

    아노말로칼리스 님 / 전 그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91년판에 정을 붙일 수 없었으니
    케빈 코스트너가 저와는 어지간히 안맞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봐볼까요?

    bullgorm 님 / 러셀 크로우가 그랬다면 정말 "못말리는..." 분위기 나는거죠. 큭큭.
  • curse 2010/05/28 21:54 # 삭제 답글

    민주주의? 한국인이라는 족속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못할 개념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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