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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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부당거래 by glasmoon



아직도 1천 6백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모 전 각하는 전재산 29만원으로 잘만 사신다.
비자금과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모 대기업 회장님은 2년만에 일선에 복귀한다.
중요 사건에 의도적으로 개입한 모 대법관님은 여론과 조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사실 이런 사례에 비하면 요즘 말실수 좀 했다고 까이는 모 당대표님은 차라리 귀여운 편이다. (우웩)
해외 토픽에서 보다시피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개발도상의 다른 나라라면 사정이 크게 다르기야 하겠냐마는,
특히 대한민국에서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무덤덤한 사회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통념적으로 희화화란 것이 비주류 내지 -권력을 포함해- 비정상적인 집단 및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본다면
그동안 국내 영화 속에서 권력층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드물었던 것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체념 속에 지극히 정상적이며 또한 지극히 당연하게 기능한다.
따라서 이를 다루는 것은 일부 '비정상적인' 저널리즘의 고유하고 또 협소한 영역이었다.




사람들이 입에 담지 않는 이야기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당연히 스스로가 모르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면에는, 누구나 다 알지만 또 알고싶어하지 않는(=대면하고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각본쓰는 검사, 연출하는 경찰, 연기하는 스폰서'
이 영화의 카피를 보면 얼핏 검찰과 경찰과 스폰서가 한통속이거나 또는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이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상호 연관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금방 알아챈다.
그들은 각기 모두 집단 내 상부 조직(부장검사, 지방청장, 건설사장단, 그리고 푸른기와집)의 절대적 영향 아래에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또 하나의 권력(언론) 및 실제 배우(더이상은 네타)와 종횡으로 얽힌다.
심지어 그들 셋 사이에서도 엄연한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영화의 무게 비중(출연 빈도)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내심 아쉬운 부분일까.
제각각이면서도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이루는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까지는 바라지 않는다지만
'결국은 다 나쁜놈이다'라면서도 마지막에 이르러 특정 캐릭터의 죽음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한 누구와 대비해서 역시 경중을 따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속에서 이 작품을 보면서 중반에 이르도록 약간의 이질감 내지 어리둥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당연시되어왔던 권력의 '정상적'인 속성을 '비정상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회자되는 국산 상업 영화들의 대물림되는 단점, 즉 아무리 심각한 내용이더라도 최소한 두어번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이라는 요소와 한편 비슷하게 심어진 노골적인 개그 코드는
거꾸로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이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 빗댄 풍자극임을 깨닫게 한다.
단언하건데, 이 작품은 한국산으로는 내가 처음 본, 진정한 의미로서의 블랙 코미디이다.

지난 세기 말, 우리나라 영화의 중흥과 함께 부상한 많은 신인 영화인들 중에
가장 이질적인 -그래서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이가 바로 감독 류승완과 배우 류승범이었다.
비록 스크린에 드러나는 폭력 수위는 자제되었으되, 이런 역린을 건드리는 발칙한 이야기를 달리 누가 한단 말인가.
이 독보적인 형제는 현격히 완숙해진 이 작품을 통해 청년기를 마감하고 장년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부터 어느덧 십 년. 그들도 스스로가 만든 껍질을 깨고 도약할 때도 됐지.
충분히 그럴 나이도 경력도 되었지만, 그래서 감독 자신도 스스로 묘한 심정을 표명하고 있지만
청년기 특유의 날것을 더이상 보기 힘들어지는게 아닌가 아쉽기도 하다.

더러운 세상, 아직 이 영화를 못 본 분이라면 나중에 빌려서라도 시원하게 웃어보시라.
으하하하하하하!!!! C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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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rk Side of the Glasmoon : 2010 유리달이 본 영화들 2011-03-04 02:34:38 #

    ... 어른들을 위한, 그리고 다가올 소년들을 위한 잔혹한 데미안. 아무래도 둘의 성격이 극명히 다르지만 일단 '애니메이션'이기에 묶었습니다. ^^; 부당거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부당거래 길지 않은 영화 경력이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이 정도는 처음이지 않았나 싶은 본격 블랙 코미디. "'아'는 '아'라고 해야지 왜 '아'를 못하고 ... more

덧글

  • 알트아이젠 2010/12/28 07:43 # 답글

    류승완 감독님의 날것은 '짝패'로 졸업한 느낌이더군요. 아무튼 본다본다해놓고 극장에서 보는걸 놏쳤는데, 기회가 되면 꼭 봐야겠습니다.
  • 동사서독 2010/12/28 18:31 # 답글

    류승완 1기는 재기발랄함이 돋보였던 초창기 인터넷 영화를 극장판으로 옮겨놓은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정리한 것 같습니다. (흥행은 망했지만...)

    이번 <부당거래>로 이제 류승완 2기 첫 발걸음을 훌륭하게 시작한 것 같습니다.

    초반의 재기발랄함이 거대 자본에 매몰되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장 모 감독처럼 되지 말고 영화적 완성도에서는 농익음을 보여주면서도 신선한 감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 glasmoon 2010/12/29 02:10 # 답글

    알트아이젠 님 / 꼭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동사서독 님 / 장편 버전도 싫어하진 않지만 역시 다찌마와리는 그 인터넷 단편이 이미 훌륭한 진수였죠;;
    뭐 저 류씨 형제는 그런 뻔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거라 근거없이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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