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설이 지나고, 이제 따뜻한 봄이 다가오는데
이제서야 겨우 올라가는 유리달의 2010년 영화 결산입니다. ^^;;
아마 작년은 제가 나서 극장에 가장 많이 들락거렸던 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1월부터 관심있는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는게 어째 수상하다 싶더니
몇몇 극장의 마일리지는 VIP를 찍고도 한참 남을 정도였으니까요.
연말에 본 것들 중에는 포스팅도 못하고 넘어가버린 것도 부지기수.
물론 영화 관계자나 정말 많이 보는 분들에 비할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저로서는 꽤 무리한 셈입니다. 쿨럭~
어쨌든 많이 보기도 했고 그래서 서너 편만 뽑아내기도 좀 어렵고 해서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둘씩 짝지워보았습니다.

더 로드 (The Road) 폐허 속의 불씨, 더 로드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제가 접한 가장 어두운 묵시록이자 가장 눈부신 희망.
뛰어난 원작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나 그 분위기를 스크린에 옮긴 것만으로도 일단 볼만한데다
비고 모르텐센은 물론이거니와 샤를리즈 테론, 로버트 듀발 등의 연기도 짧지만 인상적.
유일한 흠(?)이라면 코맥 맥카시의 원작이 몇 단계 위에 있다는 것.
크레이지 하트 (Crazy Heart) 쓴 인생 단 음악, 크레이지 하트
빛나는 중견
본디 이바닥 출신이라 이쪽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썩 내켜하지 않는 누구마저도
멋진 연기와 오버 없는 연출, 그리고 현장감을 살려 대단히 잘 녹음된 음악에 마음을 놓아버렸다나.
재작년 "레슬러"의 미키 루크와 막상막하인 제프 브리지스의 모습은 그저 흠좀무.
최근 대박 행진중인 "블랙 스완"도 어쩌면 "크레이지 하트"와 같은 맥락이죠 아마. 으음.

예언자 (Un prophète) 현실은 환상과 혼돈 사이에, 예언자
본격 클래시컬 판타스틱 리얼 갱스터 성장 영화. 현대 프랑스로 배경을 옮긴 "대부" 1편.
섞였으되 원 재료의 맛이 살아있다 못해 더욱 강렬하여 보는 이를 혼돈과 황홀(환각?)에 빠뜨린다.
이토록 도메스틱(?)하면서도 인터네셔널(!)을 넘어 커먼(...)한 지경을 탐구하는 폭력물도 흔치 않다.
당분간 이를 넘어서는 갱스터 무비는 보기 힘들 듯.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그는 어떻게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 허트 로커
'제대한 사람이 왜 계속 군대 꿈을 꾸는가'에 대한 한 편의 극단적인 해답.
한 분야를 들고 파는(미크로) 관점을 통해 전쟁이라는 거대한(마크로) 담론의 본질을 파해친다.
의외라면 의외였지만 어쩌면 이러한 시각은 도리어 여성(캐서린 비글로우)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현대의 전장에 승자는 없다. 높으신 분들의 주판알 튕기기만 있을 뿐.
"예언자"는 굳이 '2010년의 영화' 한 편을 꼽아야만 한다면 가장 유력하지 않았을까 싶은 걸작입니다.
이를 따돌리고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가져간 "엘 시크레토"는 그에 비하면 좀..--;

데이브레이커스 (Daybreakers) 멈춘 심장들의 사회, 데이브레이커스
뱀파이어물의 탈을 쓴 좀비 영화. 껍데기야 어찌됐든 B급의 재미가 있으니 장땡!
출연진의 면면에 혹해 A급 영화를 기대를 기대했던 이들이 벙쪘다고도 하던데..;;
곳곳에 녹아든 뱀파이어와 좀비의 클리셰와 그들의 교차(교배?)는 피의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스피어리그 형제여, 바라건데 부디 이 B급 정서를 잊지 말기를.
레드 (Red) 누가 이들을 퇴물이라 하는가! 레드
돌아온 A 특공대? 뭉친 형님들 익스펜더블? 다 비켜! 우린 은퇴한 빨갱이야!! (쿨럭~)
모 님의 말씀을 빌자면 은퇴한 레전드 탱커, 법사, 술사, 도적, 힐러가 간만에 모여
탱커가 꼬신 뉴비 여친님 경험치 셔틀을 뛰는 동시에 대격변 신생 공대들 발라버리는 영화... 라나.
왕년의 이 배우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보지 않으면 후회할 2010년 최고의 액션 오락 영화!
제가 사랑하는 B급 영화들 중에서라면 리메이크된 변형 좀비물인 "크레이지"도 괜찮았군요.

인셉션 (Inception) 인셉션, 1차 진입
돌아온 놀란의 역습. 우리는 그가 독보적인 퍼즐 영화로 출발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전폭적인 예산 지원과 빵빵한 출연진에 힘입어 완성된 "메멘토"의 업그레이드 완성판.
지금 꿈속의 꿈을 꾸고있는 나는 꿈을 꾸는 나인가 꿈을 꾸는걸 잊어버린 나인가. 아 헷갈려~
다만 잘 짜맞추어진 퍼즐이라는 것이 진미이면서 한편 한계랄까. "다크 나이트"가 워낙 대단했기에.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그 섬에서 무얼 보았나, 셔터 아일랜드
거장이 모처럼 마음먹고 만든 걸작 스릴러. 스릴러라면 이쯤은 되어야지!
근래 좀 힘이 빠졌다 싶었던 스콜세지가 보여주는 그림, 음악, 음향, 연출의 종합 선물 세트.
약간은 산만한 구석이 있지만 히치콕 스타일을 좋아하는 올드 팬이라면 입을 벌리고 환호했을 터.
이를 보고서 이제 디카프리오가 당당히 한 사람 몫의 배우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둘 다 디카프리오 주연이로군요. 그의 연기로 평가하자면 역시 "셔터 아일랜드"에 표를 줍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검은 고양이 날다, 드래곤 길들이기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 아래에 무참히 죽어나간 용들의 처지를 그대는 아는가?
...라 말하고 보니 왕년 숀 코네리가 용 목소리를 연기했던 "드래곤 하트"가 비슷한 입장이긴 했구나.
그러나 그와는 차별되는 고양이(...)의 귀여움과 하늘을 나는 쾌감! 그리고 끝까지 이어진 동지애.
"아이언 자이언트", "인크레더블"에 이어 두고두고 감상할만한 미국산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 クロラ) 하늘이라는 이름의 껍질, 스카이 크롤러
"공각기동대" 이후 "이노센스" 등에서 목과 어깨에 힘만 주던 오시이 마모루가 간만에 회귀한 역작.
역시 원작의 틀에 힘입은 바 크다 하나 그를 오시이 식으로 훌륭하게 해석해 내었다.
어디의 누군가는 어쩌면 소재가 비슷하달 "마X로스 프X티어"의 절망으로부터 이를 통해 위안받았다.
이것은 지나간 어른들을 위한, 그리고 다가올 소년들을 위한 잔혹한 데미안.
아무래도 둘의 성격이 극명히 다르지만 일단 '애니메이션'이기에 묶었습니다. ^^;

부당거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부당거래
길지 않은 영화 경력이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이 정도는 처음이지 않았나 싶은 본격 블랙 코미디.
"'아'는 '아'라고 해야지 왜 '아'를 못하고 '어'라 하냔 말이다" 냐는 대단한 일갈.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다 알지만 정작 보고도 모른척하고 넘어가는 더러운 세상?
류씨 형제는 분명 한층 성숙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젊음이 끝나가는 듯다는 것이 아쉽다.
아저씨 아저씨, 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꽃다운
옆집 아줌마네 딸래미를 돌보던 그옆집 아저씨. 그런데 아줌마도 아저씨도 평범치 않았으니 어쩐다.
게다가 그 아저씨는 출중한 살인 능력으로 모자라 불세출의 꽃미남;;;
원빈의 출중한 외모가 도리어 영화의 완성도에 해가 되지 않았나 싶으니 역시 잘나긴 잘났나보다.
그래도 그걸 이만큼
사실 "아저씨"는 여기 꼽기엔 좀 함량 미달이지만
그 외의 "악마를 보았다"나 "방가?방가!" 등에 비해서는 그나마 장르 영화로서 재미있었네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Il y a longtemps que je t'aime)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자식을 사랑해 가장 큰 죄악을 감수한 그녀. 그녀를 외면했지만 결코 품에서 놓지 못했던 어머니.
십 수 년이 지나도록 그녀와의 끈을 유지하고자 애쓴 동생. 그리고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
어찌보면 막장이다 싶은 내용이건만 이토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스콧 토마스 누님의 힘이리.
마지막에 조금 불필요하다 싶은 사족이 붙은게 두고두고 아쉽다.
유 윌 미스 미 (Je vais te manquer) 삶에 대한 그리움, 유 윌 미스 미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스스로가 죽음과 함께 잊혀지는 것이라던가.
여기 삶의 전환점에 이르러 무언가 다른 이유를 찾고자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나를 그리워하게 될까?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게 될까?
모처럼의,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캐롤 부케의 모습만으로 만족했다기엔 그 이상이었던 영화.
제가 좋아했던 언니들이 모처럼 주연으로 돌아온 영화들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또 한 분의 언니, 틸다 스윈튼의 "아이 엠 러브"가 개봉했는데 이게 또 후덜덜..;;
너무 많이 꼽았나요.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한참 걸렸습니다. 헉헉~
이외에 생각나는 영화라면 전쟁의, 아니 사회 시스템의 진정한 희생자를 적나라하게 그린 "베리드",
드디어 폭력으로 돌아온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
그리고 리마스터로 재개봉한 "대부" 1편과 2편이 있었네요.
3편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고 옹호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역시 현실은..;;
그 외에 평균들 빼고 유독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작품이라면
늑대인간이라는 최상의 소재에 쟁쟁한 배우들까지 캐스팅해놓고도 죽을 쑨 "울프맨",
팀 버튼에게 더할나위없이 어울리는 원작을 가지고도 눈요기에 그쳐버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대극으로 돌아온 리들리 스콧의 기대치에는 영 차지 못했던 퓨전판 "로빈 후드",
한편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지만 저로서는 영 공감하지 못했던 "유령 작가"와 "투어리스트",
그리고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범작 이상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던 "엘 시크레토" 정도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메이저 작품임에도 추리고 추려서 이정도라니 참 많이 보기도 봤군요.
아닌게아니라 해가 바뀌고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나 그 사이 본 영화들이 이미 쌓여가고 있는데...
작년의 정리를 이제사 했으니 밀린 것들은 언제 포스팅한담. -_-;;
2010 유리달이 들은 음반들
2010 유리달이 만든 모형들
2009년, 유리달의 영화 best 3
2008년, 유리달의 영화 best 3
2007년, 유리달의 영화 best 3
덧글
고양이를 기르는 입장에서 보는 내내
'아...고양이가 하늘을 날아.....우리집 고양이도 타고 다니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넘치게 만드는데다가..박진감도 넘치고...
그리고 엔딩이..(스포일러 아니죠 이제는?)
'아무리 주인공이래도 함부로 까불면 호된 꼴을 당한다'라는 작은 교훈도 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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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에요....응?
작년에는 대작 SF물이 없어서 좋은영화가 많지 않을거란 예상과는 다르게(취향이니까요),
꽤 괜찮은 라인업이 형성되어 있었군요. 다섯편 외엔 아직 보진않았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
모노타로 님 / SF에 국한하자면... 그닥 건질건 없었군요. 제가 꼽은 것도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