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영화 관련으로는 -하긴 뭐든 제대로 하는게 있냐마는- 포스팅을 거의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뭔가 기억할만한 기록은 남겨야겠다 싶어, 1/4분기에 본 작품들 몰아서 정리합니다. -,.-

먼저 꽤 화제가 되었던 "밀레니엄" 시리즈.
할리우드 리메이크판 개봉과 함께 스웨덴 오리지널판도 같이 개봉했더랬죠.
며칠 간격으로 두 편을 모두 보고난 뒤, 제 관점으로는 아무래도 원판이 나았다고 느껴집니다.
데이비드 핀처가 손댄 할리우드판은 두 인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매끄럽게 다듬어지긴 했는데
원작이 가진 복잡미묘한 디테일들마저 씻겨나간 느낌이랄까, 그냥 잘 만들어진 스릴러물 정도?
아니 평범한 기자일 터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언제 악당들을 쓸어버릴지 몰라 조마조마했달까^^;
시리즈 전체에 대해서는 2부와 3부를 이야기할때 다시 정리할 기회가 있겠습니다.

올 초 유독 스크린에서 크게 불었던 복고 유행을 주도한게 이 두 작품이겠네요.
오스카를 휩쓴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와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둘 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봤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의외로 '재미' 측면에서 훌륭했습니다.
특히 장치적 측면에서 무성영화를 표방하면서도 음향과 음성을 효과적으로 써먹는 점이라던가
초기 영화의 놀라움을 현대적 3D 표현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아이디어도 좋았구요.
다만 무성영화 내지 멜리에스에 대한 헌사 이상의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각종 상을 휩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미묘미묘?

드디어 상을 받나 싶었던 개리 올드만이 물먹었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있었군요.
일단은 스파이라면서도 모조리 근육질 훈남에다 요란스럽게 총질하고 다니기 일쑤인 요즘에
이렇게 아날로그적이고 머리 대박 굴리는 중후한 아저씨들을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말이죠.
그쪽을 사랑해 마지않는 누구에게는 간만에 제대로 취향 직격~♥ (특히 올드만과 함께 존 허트옹!)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목숨을 거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뱅뱅클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DSLR 보급률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이니 나름 반향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많이들 보진 않으신 듯?
영화 자체는 무엇이 '좋은' 사진인가에 대해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이야기를 말아버린 기색이 있을까나.
그리고 요즘 뜨는 화제의 인물, 테일러 키치를 여기에서 처음 인지했죠.

흥행은 대차게 망한 듯하지만 테일러 키치를 확실히 띄운 영화, "존 카터"입니다.
이후 한 장르로 자리잡게되는 우주 활극, 좀 있어보이게 말하자면 스페이스 오페라의 효시격 작품으로
그 역사적 위치에 비해 영화화가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게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극장을 찾아간 소감은, 비슷한 시기 3D로 재개봉한 "스타워즈 EP1"도 마찬가지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내가 이걸 왜 보고 앉아있나' 하는 정도?
스타워즈도 배경과 세계관, 일부 캐릭터에 홀린 팬심으로 보는거지 활극류는 참 저와 안맞는 듯.
EP1은 마음먹고 다시봐도 다스 몰의 포스와 콰이곤 진의 면모 외에는 참 재미 없더군요. -_-

반대로 재미 면에서 가장 훌륭했던 작품이 "디센던트"와 "크로니클"이었습니다.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는 재미있다고 항상 여기면서도 저에겐 뭔가 2% 부족한 구석이 있었는데
조지 클루니가 가세하면서 드디어 완전체가 되었더군요.
재작년의 "인 디 에어"도 그랬고, 진지하게 망가지는 역에는 조지 클루니만한 이가 없습니다. ^^
"크로니클"의 조시 트랭크/맥스 랜디스는 어딘가 본듯한 요소를 버무려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았네요.
아무리 단순한 이야기도 제대로 살을 붙이면 한시간 반을 채우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걸 새삼.
다만 이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의 새로운 진화를 제시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글쎄요,
작중 인물이 직접 카메라로 찍었다는걸 표방하는 그 트릭 자체에 좀 신물이 난 상태라.

영미권 밖에서는 스페인어권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둘 있었네요.
"내가 사는 피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아니랄까봐 기발한 아이디어를 깔고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의 초중기작들에 비하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극적인 긴장감은 훌륭했습니다.
복잡한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레나 아나야와 미중년이 된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연기도 좋았고.
쿠바 혁명을 전후한 시기 한쌍의 남녀가 겪은 사랑과 음악을 그린 "치코와 리타"는
이야기 자체는 훤히 보인달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로맨스의 살을 붙인 정도지만
3D에 입혀진 2D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질감과 그림체, 그리고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더군요.
베보 발데스가 작업한 사운드트랙은 올해 최고의 후보로 손색이 없습니다.

국내작에서는 "부러진 화살"과 "화차"가 있었군요.
"부러진 화살"은 비전문가가 어설프게 공부한 것을 가지고 전문가와 논쟁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거의 그 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손들어주는 것과 진배없다는 점에서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사법부가 그동안 얼마나 홀로 높이 군림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런 대접을 받아도 싼 걸까요?
"화차"는 좋은 원작을 가지고 좋은 배우들(화제가 된 김민희보다도 조성하가 눈에 확 들어옴)의
연기로 잘 만들어진 좋은 스릴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데...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달까, 감당 못하고 급히 닫아버린듯한 결말과 함께 뒷심이 딸린 느낌.

소소하지만 작지않은 작품으로 이 둘도 있었습니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은 간만에 '카메라로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었네요.
캐릭터와 이야기가 모두 단순한 속에서도 이 영화가 강한 흡입력을 갖는 것은
소년의 눈과도 같이 가감없이 솔직한 관점과 함께 화면 자체가 전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겠죠.
제이크 스콧의 "웰컴 투 마이 하트" 또한 풀어내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상처받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라기보다, 이 집안(감독 제이크는 리들리옹의 아들이자 토니의 조카) 핏줄도 참..--;;

올해 개봉작은 아니지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스카페이스"를 본 게 수확이었고
작년에 놓쳤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오스카 수상 덕분에 다시볼 기회를 가졌더랬습니다.
두 작품 모두 지금 이야기를 늘어놓기엔 좀 철지난 구석이 있으므로 생략;;
아니 "스카페이스"는 인생의 영화 중 하나이니 언제고 한 번쯤 얘기를 하긴 해야 할텐데.. 쿨럭~

마지막으로 아무생각없이 본 "디스 민즈 워"와 시사회에 초대받았던 "해로"가 있군요.
전자는 정말 머리식히러 본거고 그러라고 만든거니 거기에 딴지걸면 그게 이상한 거겠죠?
내심 "스미스씨네 부부싸움" 정도를 기대했는데 역시나 그정도에는 미치지 못했던듯.
"해로"는 두 배우의 연기 빼면 남는게 없더군요. 이해못할 바는 아니나.
하아. 좀 길었네요.
이 중에 셋 정도만 꼽으라면 "팅커 테일러...", "디센던트", "자전거 탄 소년" 정도?
"스카페이스"와 함께 그 작품들은 따로 포스팅하고싶긴 한데... 그러기는 힘들겠죠. 아마도.
곧 4월에 본 영화들 포스팅도 이어집니다. 4월에도 대략 열 편 남짓은 되려나;;
덧. 하나 빼먹었네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그냥 간단히 한 줄로 평하자면, 얘기는 별다를게 없지만 캐릭터만큼은 "살아있네~?"
덧글
놓치고 말았던 영화가 많네요. 크로니클과 화차는 예매했다가 시간을 못맞춰서 취소하고 말았지요. 이렇게 안 겹치기도 어려운데 .... 하하 ^^
일단 미국 Ver도 나름 재미있게 본걸로 기억하네요.
"say hello to my little friend!"
앞으로 나올 영화를 기대해야겠군요. 프로메테우스는 과연 어떨지... (우주에는 혼자서 못 가는 곳이 있다)
요즘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보다는 닥치고 치고 부수고 때리는 영화만 보게 되네요.
이것이 늙음인가 봅니다..흑흑..ㅠ.ㅠ
einsamkeit 님 / 건축학 개론은 예고편만으로도 충분히 닭살이라 실제로 보고싶은 생각은 안들더군요;
디센던트는 강추합니닷! 후회 없으실 거에욧!
알트아이젠 님 / 서울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았으니 지방이야 두말할 필요가--;;
울트라김군 님 / 제가 스카페이스를 능가하는 갱스터 영화를 보게 될것 같지는 않습니다. 쿨럭~
두드리자 님 / 에일리언, 특히 1편의 팬으로서 너무나 기대가 큰 나머지 실망할까봐 걱정이;;;
노이에 건담 님 / 사는게 바빠지면 영화관에서는 쉬고싶게 마련이니까요.
저도 이번달에 좀 빡센 영화들을 몰아봤더니 심신이 지치는게 팍팍 느껴지더구만요;
땡기지 않았는데 역시나 재미 없었던...
시네마떼끄 친구들 영화제 에서 '스카 페이스' 를 봤는데 글라스문 님도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