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본 영화들 정리입니다.
추석도 끼고 했는데 열흘 정도 텀으로 올리는건 빠른 편이라고 자부하고 싶군요(...)

이번달의 화제작이라면 단연 이거였죠? "광해, 왕이 된 남자".
일단 성적은 좋은 모양이던데... 그럴 수밖에 없는게 제작사 CJ의 광고 물량이 엄청나더구만요.
제 단골이 CJ계인 CGV여서 더 그렇겠지만 극장 안을 온통 홍보물과 영상으로 도배하다시피 한데다
다른 영화 상영 전 예고편 나가는 시간에 이미 한참전 개봉한걸 광고하는 것도 처음 봤습니다.
영화 자체는 뭐... (카게무샤+데이브)/2 랄까. 우리나라 영화의 단점(?) 중 하나였던, 요새 좀 나아졌던
스타+재미+웃음+감동+반전+교훈 등등이 모두 뒤섞인 종합선물세트. 그러나 그중 정말 맛난건 없다는거.
뭐든 하나 재대로 파는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런 거에 좋은 말 못합니다. 흐흐.
최근 흥행 신기록을 세운 "도둑들"의 영광을 이을까 기대되었던 "간첩"도 있었는데
"광해..."와 비스무리한 비빔밥 코스에다 액션까지 추가하려고 했던 모양이나... 실패!
배우들은 따로놀고 극도 따로놀고 웃으라는 부분도 그닥 웃기지 않더니 느닷없이 총알 날고 피범벅..;;
이런 소재로 이런 영화를 만들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정도가 의의가 되려나.

또 세간에 많이 오르내렸던 작품이라면 베니스에서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였군요.
위에 잠깐 언급된 "도둑들"의 기록을 위한 장기 상영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놓기도 했던데. ^^
이 작품이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냐... 라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감독이 나이를 먹으면서, 또 근래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야기하는 방향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가에 어울리는 관점으로, 뒤집으면 유수의 영화제들이 좋아하는 관점으로 말이죠.
그 여운이 며칠 갔다는 점도 그렇고 기억될만한 영화임에는 확실한 듯.
국내의 언더 쪽에서는 키노 망고스틴의 "영건 탐정사무소"가 있었는데,
전작들에 비해 제작비가 늘어나면서 볼거리는 보다 그럴듯해진 대신 톡톡 튀던 알맹이가 죽었더군요.
타임머신을 소재로 하는 그저그런 일본 애니메이션의 실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

지난달에는 또 유독 액션물의 속편이 많이 개봉하기도 했었죠.
이미 3부작으로 끝을 낸 본 시리즈를 되살린, 정작 제목의 '본'은 등장하지도 않는 "본 레거시".
전작들을 거대 음모론의 일부로 흡수하면서 뭔가 거창하게 벌려놓긴 했는데... 글쎄올시다.
특히 "허트 로커"에서 처음 봤을때 인상적이었건만 이후 고만고만한 액션 오락물에서
줄창 소비만 되고 있는 주인공 제레미 레너에 대해서는 좀 안타까운 감정이 남는군요.
제이슨 본과 매치가 성사된다면 누가 이길지 심히 궁금한 브라이언 밀스를 내세워 "테이큰 2"도 등장!
딸 대신 이번엔 부부가 쌍으로 납치되어 이스탄불에서 또다시 종횡무진 활약을 하시는데
전적으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보니 뭔가 감정을 이입할만한 요소가 부족하네요.
교훈이라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하지만 '니가 정말 짱 쎄다면 복수해도 좋다'?

재앙급 인간병기들도 다시 한번, 아니 더 화려하게 뭉쳤습니다. "익스펜더블 2"!
알맹이에 대해서 뭔가 기대했다면 그건 기대한 사람의 잘못인거고(...)
멤버는 더욱 보강되어 얼굴만 잠시 내밀었던 형사나 사이보그도 막판 대잔치에 합류하는데다
심지어 무적의 노리스 횽아까지! 이바닥의 큰형님이라고 다른 쟁쟁한 이들마저 한수 접어주는 포스!!
그러나 그만큼 나머지들의 존재감은 한없이 가벼워지니 주연급이었던 택배기사마저도 공기 수준.
위안이라면 반담의 발차기를 간만에 본 정도랄까. 이제 갈데까지 갔으니 3편은 하지 말기를;;
억지 춘향... 아니 억지 앨리스 놀이를 계속하는 "레지던트 이블 5"도 개봉했죠?
지금까지 봐온게 아까워서 마지막을 지켜봐주마 했건만 투 비 컨티뉴드..?? 허헉~ 니가 제일 무서워!!
내용은 허무한 수준이어서 그저 무적 앨리스 되살리고 지금까지 나왔던 멤버들 집결시키는 핑계랄까.
눈치를 보건데 다음엔 정말 끝을 낼것 같긴 하지만 이거 겁나서 원.

헉헉~ 드디어 액션이 아닌 쪽으로는 먼저 조니 뎁을 내세운 "럼 다이어리"가 있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뎁이 술 진탕 먹고 벌이는 소동극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0세기 중반 미국의 중남미 약탈에 대한 고발극처럼 흘러가더니
결국은 이도저도 아니라는거. 실화에 기반했다고 해서 이런 엉성함이 용납되는건 아닌데 말이죠.
그나마 앰버 허드가 참 예쁘게 나왔다는 정도가 위안. -,.-
양자경이 아웅 산 수 치로 분한 "더 레이디"는 실존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라는 점에서
또 해당 사태가 아직 완전히 전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한 작품이었는데
뤽 베송은 영악하달까 어이없달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대신
어디에나 잘 먹히는 가족애, 부부애에 대한 부분을 키웠더군요. 본격 전기의 탈을 쓴 멜로 드라마. 아하하.
이번 대선의 유력 주자로 나선, 우리나라의 영웅적 장군님의 따님께서는 이걸 보셨는지, 만약 보셨다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쬐끔 궁금하긴 합니다?

올해 유달리 모성(혹은 부성)에 대한 영화가 많은데 거기에 또 하나 추가되는군요. "더 트리".
호주의 황량한 환경과 거기에 자리잡은 한 그루의 큰 무화과나무를 통해
가족의 상실과 그 상실의 극복을 잔잔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딘가의 어떤 영화들처럼 이야기가 판타지나 마법, 기적으로 빠지지 않았다는 것도 큰 미덕.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고급 매음굴을 소재로 한 "라폴로니드: 관용의 집"은
대충 사건이나 이야기보다는 현상과 관찰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짐작하고 나름 각오(?)했었는데
지레짐작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친절(??)한 작품이었죠. 19세기 회화에서 튀어나온듯한 미장센도 발군.
성적인 욕망이 영화가 끊임없이 다루는 주요 주제 중 하나임을 본다면
그를 다룬 근래의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하고 재미있는 영화라면 우선 "이탈리아 횡단 밴드"부터 생각나는군요.
이제는 나이 먹은, 왕년에 밴드하던 중년 아저씨들이 음악제 출전을 위해 이탈리아를 횡단하는 이야기.
설정이야 이탈리아 시골의 토속이 가미된 재즈(?) 밴드지만 충만한 내공이야 당연한 얘기고
산넘고 물건너는 풍광 좋은 여행에 음악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우리도 사랑일까"는 그 말랑한 제목에 낚여 함께 왔다가 낭패를 본 커플이 있을지도?
사랑이라는 현상 또는 현실을 까발린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미쉘 윌리엄스가 주연한
"블루 발렌타인"과 은근 닮은 구석이 있는데, 제 취향에는 "블루..."쪽이 더 나았던듯 싶습니다.
미쉘의 연기가 일취월장했음은 인정하지만 어째 이쪽 장르에만 몰리는것 같다는게 음음.

유쾌한 쪽으로는 간만에 대박 코미디가 있었죠. "19금 테드"!
발상도 발상이지만 눈썹 짙은 중년(?) 곰인형의 걸쭉한 입담이 아주 걸물이에요~
기본적으로 화장실 유머인데다 뒤로 가면서 갈등의 해결을 위해 뻔한 공식을 따르기는 하지만
간만에 극장에서 원없이 웃어봤습니다. 뒷자리 분들 시끄러웠다면 죄송. 큭큭큭~
위에 언급했던 모성 영화에도 엮이는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늑대아이".
이야기가 이야기다보니 호소다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엷어진건 아쉽긴 한데
이야기 자체의 힘은 여태껏 만들어낸 몇 안되는 작품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네요.
특별한 경우에 빗대어 보편적 가족애를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과 함께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성장을 모두 잘 녹여냈다는 점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지난달에는 또 특이하게 음식점과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두 편 있었죠.
두 편이 다루는 두 식당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서 "엘 불리"가 이름도 생소한 아방가르드 레스토랑,
그러니까 엄청난 자료와 실험, 엄격한 계량과 통제를 통해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낸다면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제목 그대로 수십 년간 스시 하나에만 몰두하고 끊임없이 연마한
그야말로 장인적 기량의 극한에 도달한 요리를 선보입니다.
전 요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정말이지 평범한 사람의 시각으로는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야말로 '예술' 이라는 단어가 합당하다고 동의합니다.
근래 그 단어가 너무 남발되는 경향이 있어 전 자제하는 편이지만 말이죠.

드디어 마지막으로... 로버트 웨이드가 찍은 "우디 앨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여전히 왕성한 창작열을 자랑하는데다 최근 "미드나잇 인 파리"로 흥행을 거두었기에 좀 의아할수도 있으나
우디 앨런도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원로(...) 감독임을 감안하면
이런 다큐멘터리가 나오는게 이상하지도 않겠죠. 역시 좀 어색해서 그렇지.
제가 아는 우디 앨런은 중기작 이후 감독으로서의 모습이 대부분이기에
잘 모르던 작가 시절, 코미디언 시절, 초기작들과 변화 과정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
여기까지 9월엔 총 19편이었습니다.
8월에 20편을 찍고서 좀 줄인다고 했건만 줄였다는게 고작 1편이네요. --;;
몇 편 꼽으라면 역시 피에타와 라폴로니드, 그리고 늑대아이와 끝내주게 웃긴 19금 테드 정도?
10월은 스케줄을 훑어봐도 관심가는 작품이 많지 않으니 정말 편수가 좀 줄어들 듯합니다.
아니 정말 좀 줄어야 합니다;;;
8월에 본 영화들
7월에 본 영화들
6월에 본 영화들
5월에 본 영화들
4월에 본 영화들
1/4분기에 본 영화들
덧글
전 휴대폰 착신음에서 '빵' 터졌습니다. 임페리얼 마치야 그렇다 치고 나이트라이더...(아이고오~ 데굴데굴~~~)
알트아이젠 님 / 익스2는 성격이 좀 다르다 치고, 늑대아이와 테드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요~
노이에 건담 님 / 그렇게 되면 미련없이 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