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됐다는 것인지 눈이 많이 오네요. 오늘은 11월에 본 영화들 정리합니다.

지난달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영화라면 단연
그리고 드디어 짧지않은 여정에 마침표를 찍은 "트와일라잇: 브레이킹 던 part 2".
그.러.나... 어지간한 영화는 다 보는 저라도 이런쪽은 좀 난감해하는 편이라서요--; (오글오글~)
게다가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을 소재로... 음냐..--;;
시간이 많아 보고싶은거 다 보고 난 뒤라면 또 생각해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남을 리도 없고,
그래서 이 둘은 안봤습니다. (안봤으면 안본거지 꺼내긴 왜 꺼낸거야!)

보지 않았으면서 위에 저 둘을 먼저 얘기한 이유는
아무리 11월이 비수기라지만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중량감있는 외화들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그 비슷한 거라면 후안 솔라나스의 "업사이드 다운"과 스콧 데릭슨의 "살인 소설" 정도?
그러나 "업사이드 다운"은 독특한 설정과 비주얼을 빼면 새로울거 없는 '신분을 뛰어넘은 러브♥스토리' 이고
"살인 소설"은 엄청나게 왜곡된 국내판 제목과 포스터에 제대로 낚인 경우가 되었네요.
국내 제목만 봐선 마치 가공의 소설을 토대로 모방 살인이 일어나는 스릴러물처럼 생각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스크린에 비춰지는건 소설도 아닌 실화 르포 작가 주변에 일어나는 오컬트 호러. -_-

국내로 들어와보면 "내가 살인범이다"가 흥행작에 끼어있었네요.
일단 두 주연 배우를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데다 이런 류는 대체로 공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어라, 이거 "우린 액션배우다"의 정병길 감독 작품이었네요.
아니나다를까, 심리적으로 밀고 당기기엔 분에 겨운지 아주 몸으로 치고받고 난리가 아닙니다. ^^
예산상의 문제로 CG 처리가 티를 좀 낸다는게 흠이었지만 스릴러로서의 완성도도 좋았고, 나름 만족.
조성규 감독의 "내가 고백을 하면"은 감독의
지금까지의 연출작(셋 뿐이지만) 중에서는 가장 괜찮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홍상수 스타일의 모방'이라는 꼬리표를 떼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더군요.

11월에는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잘 안팔리는) 쪽에서 수작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민병훈 감독의 "터치"는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김기덕의 "피에타"가 극단적인 경우를 들어 속죄와 구원을 말한다면 이건 보다 현실적인 버전이랄까요.
상영관을 찾아 한밤중에 멀리 가서 본 보람이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런 작품이 왜 홍보되지 않는지 의아했는데
며칠 뒤 스크린 독점과 교차상영에 항의하며 감독이 직접 영화를 내리고 나서야 자그마하게 이슈가 되더군요. -_-
네 감독의 네 에피소드를 묶은 "가족 시네마"는 옴니버스이면서도 구성 작품 모두가 좋은 드문 경우였습니다.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명예 퇴직으로부터 신문에서 봤음직한 대형 사고,
미래의 이야기라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난자 거래와 출산 휴가에 따른 권고 사직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인 화제 위에서 가족의 의미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11월 말을 지나 12월이 된 현재 가장 뜨거운 작품이라면 이 둘이겠죠?
정지영 감독의 복귀작 "부러진 화살"은 약간 갸우뚱했지만 이번 "남영동 1985"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소재가 된 그 인물과 그 사건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 치더라도,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는 연극적 구성이면서도 처지지 않는데다
많지 않은 분량으로도 각 캐릭터들에 존재감과 설득력을 부여한 디테일과 그 모두를 조율한 연출 또한.
그런 면에서 오래전 제작된다 만다부터 말이 많다가 드디어 완성되어 개봉한 "26년"은
제작 인력의 잦은 교체와 무리한 개봉 스케줄 등이 겹쳐 영화적 완성도에 의문을 표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글쎄요, 비슷한 성격으로 만들어져 정말 욕나왔던 영화(제목은 차마)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제 영화 안목이 바닥이라 그런가, 허술한 면면이 보이긴 해도 크게 흠잡을만한 것이라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를 끌어가는 힘을 주인공들이 아닌 '그 사람'이 절대적으로 쥐고 있다는게
가공된 작품 내적으로든 외적 현실로든 아쉬웠지만서도.

11월에는 또 인생의 마지막에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그런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루나 루나슨 감독의, 아마도 제가 처음으로 보는 아이슬란드 영화인 "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꼭 우리나라 경상도(...)가 아니더라도 전세계 어디에서나 아버지의 인생이란 다 비슷하게 마련이죠.
고단한 일에서 해방된 뒤에야 언젠가부터 크게 벌어진 틈을 돌아보게 되었지만 때는 기다려주지 않으니...
...까지가 보통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그 뒤의 상징적 묘사와 결말의 여운이 깊었습니다.
로버트 로렌즈의 첫 연출작이 되었지만 그가 주로 이스트우드 영감님의 작품들을 제작해왔다는 전력을 볼 때
역시나 영화 전반에 걸쳐 영감님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풋볼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는 야구, 그 야구에 빗대어 인생 얘기하기 좋아하는 할리우드답게
다분히 뻔한 얘기지만서도... 역시나 이스트우드 영감님다운 묵직함이 있습니다.
오히려 장르 영화의 클리셰들을 가지고 있기에 더 와닿는 부분이 있달까.
야구와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썩 내키는 작품은 없었던 야구 영화들 중에 단연 첫손가락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제 마지막이로군요. 마지막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두 작품입니다.
알렝 레네 감독은 제 얕은 경험으로는 그저 영화 관련 서적에서 어렴풋이 이름만 들어본게 고작이었는데
처음 본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서 완전히 매료당했습니다.
현대 영화에서 '편집'이 아닌 '형식'을 가지고 실험하는 감독이 아직 있었을 줄이야.
제가 작품의 다층위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자신없지만 몇몇 장면과 그림만으로도 오~
게다가 극중극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이니 더더욱 오오~~
그림이라면 또 미셸 오슬로의 실루엣 애니메이션 "밤의 이야기"도 대단했죠.
여러모로 감독의 1999년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의 직접적인 속편(?)이랄수 있는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반영하듯 더욱 아름다운 그림과 더욱 폭넓어진 연출을 보여줍니다.
다만 각 에피소드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전작에 비해 밀리는 느낌.

덤으로, 11월의 전국 여행 중 광주국제영화제에서 보았던 미케 다카시 감독의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이 또한 같은 사건을 두고 여러 인물들의 각기 다른 관점이 나열되는 "라쇼몽"식 구조인가 했는데
시각적으로 일본 전국시대(정확히는 에도 막부 초기) 사무라이의 유려함을 내보이는가 싶더니
마지막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역설적으로 그 허상을 고발하는 의외의 전개였군요.
우리말 제목에서 '할복'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뺐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여기까지 11월에 본 영화는 모두 13편이었습니다. 나름 선방했네요.
일이 바빠지는 와중에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더이상 볼 수도 없었겠지만. ^^;
기억될 작품으로는 "터치", "남영동", "볼케이노", "...변화구", "...보지 못했다" 정도를 꼽고 싶습니다.
10월에 본 영화들
9월에 본 영화들
8월에 본 영화들
7월에 본 영화들
6월에 본 영화들
5월에 본 영화들
4월에 본 영화들
1/4분기에 본 영화들
덧글
'밤의 이야기'는 역시나(...) 지방엔 상영되지가 못해서(왠지 '아주르 앤 아스마르' 때 생각이...먼산)
DVD나 정발되길 기다려야겠습니다...ㅠ.ㅠ);;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저 포스터와 말씀만 들어도 호기심이 증폭되는군요.+_+)
터치는 보고 싶었는데 극장에서 못 봐서 굿다운로드를 이용해야할 것 같고, 가족시네마는 제목이 낯선 걸 보니 검색해봐야겠다 싶네요.
남영동은 아직도 볼 수 있을지 겁이 나서 못 보고 있고, 26년은 얼마전에 봤는데 저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요. 초반부 애니메이션이 너무 강렬해서 아직도 무섭네요. ㅠㅠ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시사회 당첨되서 봤는데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야구와 영화라니, 안 볼 수가 없더라고요.
밤의 이야기는 내려가기 전에 극장에서 찾아봐야겠어요. :)
알트아이젠 님 / 아 영화화되면서 삭제된 캐릭터가 꽤 있었군요~
einsamkeit 님 / 귀여운 여자애가 폴짝이는 영화라면 저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을까요? 아하핫
좋은 영화를 시사회로 보셨군요. 저도 왕왕 당첨되긴 하는데 항상 전 못가고 딴 사람한테만 뿌리니. T_T
밤의 이야기는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제맛이니 꼭 극장에서 보세요~ ^^
26년이랑 남영동은 사춘기 시절 5공 시절 고문과 폭력을 다룬 책을 읽으며 충격 받았던 것이 생각나서 극장에선 못 보겠더라구요. 남영동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임철우 작가의 <붉은 방>이란 단편소설을 88년 즈음해서 열독했었는데 그때 그 끔찍한 내용을 스크린으로 다시 보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