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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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본 영화들 by glasmoon



1월은 지옥이라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극장은 부지런히 갔습니다.
뭔가 능동적인 여가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나마 영화라도 봐야 스트레스 관리가 되지 싶었는데
몸이 떡이 되어가니 이것도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왠지모를 의무감에 본 것도 있고. --;
하여간 2013년의 첫 달에 본 영화 정리합니다.



3D 영화를 썩 반기지 않는 저에게도 정말 훌륭했던 3D 영화가 연초부터 두 작품이나 있었군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베르너 헤르초크의 "잊혀진 꿈의 동굴".
(전자는 사용 기한이 임박한 쿠폰 쓰느라 3D도 아닌 4DX에서 물세례 맞아가며 보긴 했지만서도^^;)
"...파이"는 빗대어 풀어낸 인생 담론도 좋지만 바다의 풍광이 (CGI가 입혀진걸 알면서도) 기가 막히더군요.
물론 진 주인공인 리차드 파커 씨의 풍채도 멋졌지만 말이죠.
한 술 더 떠서 헤르초크의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은 3D 효과가 이를 위해 나왔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금껏 봐왔던 선사시대 동굴 벽화의 사진들이 얼마나 제한된 정보만을 담고 있었나를 사무치게 느꼈죠.
좁고 굴곡이 심한 동굴 벽면의 핸디캡을 드라마틱하게 살려 둘도없는 작품을 남긴 이름모를 예술가들에게 경배를!



우리의 톰 형은 새로이 크리스터포 멕쿼리 감독과 손잡고 또다른 코믹스 소설 "잭 리처"를 스크린으로 옮겼습니다.
원작의 팬들로부터 주인공과 톰 형이 어울리지 않네 어쩌네 하는 불만에 대해서는 전 원작을 모르므로 알 수 없지만
화면의 톰은 나이먹어 은퇴한 -그러나 더욱 무대뽀가 된- 이단 헌트라는 소릴 들어도 할 말 없겠더구만요.
유일한 재미라면 바로 위 "...꿈의 동굴"을 연출한 헤르초크 감독님이 연기한 최종 보스! 과연 순수한 악의 화신!!
이제 남매가 된 워쇼스키 일당(?)의 신작 "클라우드 아틀라스"도 개봉했는데
이 또한 일부 관객들로부터 이야기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 편집이 너무 불친절하다는 불만을 들었던 모양이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되는군요. 제 감상이라면 '그래서 뭐?' 정도.
워쇼스키 일당에 대한 기대는 진작 접었어야 했고, 이제는 정말 접었습니다.



지난달에는 재난 영화(?)도 둘 있었군요.
먼저 길예르모 델 토로와 함께 "오퍼나지"를 만들었던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더 임파서블".
여러 해 전에 밀어닥쳤던 "해운대"의 뒷맛이 영 씁쓸했던 저로서는 쓰나미 영화라길래 내키지 않다가
이완 맥그리거와 나오미 왓츠가 설마 동시에 병X같은 작품을 골랐겠냐 싶어 속는 셈치고 간게 대박이었죠.
흔히 이런 류에서 CGI를 떡칠하며 강조하는 초대형 재난이 뒤로 물러나면서 한 가족의 사랑과 생존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피해 규모로도 파급 효과로도 2004년 쓰나미보다 더욱 엄청난 재난이 2008년에 있었죠.
신인 감독 J.C. 챈더에게 여러 상을 안긴, 세계 금융위기 전날 그 진원지를 다룬 "마진 콜".
말단 조직에서 출발하여 상부 구조로 차례차례 올라가면서 진행되는 욕심의 확장과 동어 반복의 아이러니.
돈만지는 업계에서 실력있는 엔지니어들을 쓸어가는건 이 나라나 그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지난달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덴마크 영화 "더 헌트"였죠.
소소하게 시작된 거짓말이 몇 개의 입을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거야 현실에서도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지역의 작은 공동체에서 금기된 문제가 잘못 건드려졌을때 상상하기 힘든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인간 사이의 굳건한 신뢰라는게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인간이 악의가 없이 어떠한 악행을 할 수 있는지.
집단으로 뭉쳐진 심리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묵직한 고발.
제작자로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델 토로가 새로이 발굴한(?)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의 "마마"는
참 간만에 보는 호러 영화면서 참 익숙한 포맷인데도 참 잘 만들어진 예라고 하겠네요.
늑대소녀(?)와 동양풍 귀신, 델 토로식 판타지가 환상적인 비율로 조합되었다고밖에.



좀 밝은 쪽으로 가보자면 어째서인지 포스터 색감도 비슷한 이 둘이 있었네요.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더없이 유쾌하고 원숙하게 풀어낸 벤 르윈 감독의 "세션"은
평소 그런 개념들에 별 관심없는 사람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위력을 보입니다.
역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장르이면서 제대로 만들어졌을때 가장 큰 효과를 일으키는게 바로 코미디가 아닐지.
근데 미국에 '섹스 테라피'라는게 정말 있나요??
그리고 믿고 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
원래 아이같은 어른을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를 주로 만들었지만 이번엔 대놓고 아이가 주인공!?
덕분에 조연으로 밀려난것 치곤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고 말이죠.
특히나 60년대를 절묘하게 되살린 치밀한 미장센과 특유의 색감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화같은 내용이 아닌 정말 애니메이션으로도 두 작품이 있었죠.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라면 그야말로 모르면 간첩인 "빨간머리 앤"의 극장 편집판은
원작이 워낙 방대하므로 주인공 앤이 초록지붕 집으로 들어가는 과정만을 함축하고 있는데도 감흥이 남다르더군요.
이젠 수 십년이 지났고 그나마도 TV 시리즈였는데도 한정된 작화나 셀의 채색만으로도 이렇게 뛰어난 작품이었나 싶은.
DVD 박스를 사놓고도 볼 엄두를 못내다 미개봉인 채 처분한 저로서는 극장용 편집으로라도 쭉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모처럼의 연출작 "부도리의 꿈"이 개봉했는데...
국내 개봉하면서 임의로 상당 부분이 가위질된 걸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탔더랬죠.
그래서 일부러 '감독판'이라는걸 상영하는 곳을 찾아가서 봤는데도 편집이 뚝뚝 끊어지는 부분이 느껴지는걸 어쩌나요.
찾아보니 원판은 108분, DVD/BR 소프트는 111분, 국내 일반 상영분은 90분, 감독판이라는 것도 100분 남짓.
세상에나, 검열이 있던 시대도 아니고 아직도 이런 가위질이 성행하는 겁니까??




비슷한 맥락으로 내용은 좋은데 열받았던 작품이 "로봇 앤 프랭크".
제가 워낙 프랭크 란젤라 영감님의 팬인지라 일찌감치 닥치고 보는 작품이었고, 노인 보조 로봇과의 호흡도 좋았건만
되도않는 통신어체로 도배되다시피한 자막은 대체 뭐랍니까?? 진짜 참다참다 영화관 뛰쳐나올 뻔했군요.
'모모C'라는 작자가 번역을 한 모양인데, 앞으로 그 이름 보이면 무조건 보이콧합니다.
오기가미 나오코가 연출한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고양이에 혹해서 본 경우일 수도 있지만
감독의 출세작 "카모메 식당"에서 워낙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번 고양이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성찰보다는 고양이를 매개로 한 에피소드 소품 모음집에 가깝더군요.




지난달에 본 국내 영화는 단 한 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무후무한 대박작일 줄이야.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은 배경으로나 뛰어난 점으로나 아쉬운 점으로나 15년만에 재등장한 "쉬리"로 여겨집니다.
세계화 따위 일찌감치 끝난 마당이라지만 액션으로 "007"이나 "제이슨 본" 시리즈에 밀리지 않는 영화는 처음이었군요.
그러나 단점이 없는건 아니어서 그 복잡다단한 액션에 가려진 첩보물로서의 구석은 음..;; (CIA와 모사드는 장식??)
마지막은 터키계 독일 감독 아셰민 삼데렐리의 "나의 가족 나의 도시".
원래 작년 말 개봉이었는데 거듭 미뤄지더니 개봉관이라고는 부산의 예술영화 전용관 뿐이라 포기해야하나 싶었는데
웬걸, 개봉일 당일 새벽 자정에 EBS에서 해주더라구요. 이거 뭐지???
고발에서 삶의 여유로 전환되기 시작한 터키계 독일 영화의 자세 변화와 함께 역시나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하아, 이렇게 해서 마지막 "...가족...도시"를 제외하더라도 열 다섯 편이었네요.
기억할만한 작품이라면 "잊혀진 꿈의 동굴", "더 헌트", "세션", "문라이즈 킹덤", 그리고 "베를린"을 꼽겠습니다.
페이스를 좀 떨어뜨려야 하는데 이번달에는 김지운 박찬욱 감독도 돌아오고 홍상수 작품도 있고 그 외 다수;;
그냥 마음을 비워야죠 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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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알트아이젠 2013/02/06 10:04 # 답글

    [파이 이야기]와 [베를린]을 봤는데, 둘 다 만족스럽더군요. 그나저나 [베를린]이 표절 이야기가 들리고 있는데, 시간이 된다면 확인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더 헌트]의 주인공 배우분이 [007 카지노 로얄]에서 나온 악당이라서, 수틀리면 밧줄이라도 가져오는거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 두드리자 2013/02/07 00:20 # 삭제 답글

    ** Therapist라는 게 있기는 있더군요. 검색해서 찾아보시면 나올 겁니다. (위키백과에 항목이 있기는 한데, 댓글에 주소를 넣지 못하게 되어 있군요.)
    그리고 쓰나미에 의한 재난이라면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생각나는군요. 그 경우는 시발점은 지진과 쓰나미이지만 그 뒤는 철저한 인재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 지나가다가... 2013/02/07 22:51 # 삭제 답글

    잭 리쳐는 코믹스가 아니라 잭리쳐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소설중 하나(원 샷)가 원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출간되었고 시리즈 중 이번 영화 외의 이야기도 몇개 출간 되었구요.
  • 기억상실 2013/02/13 14:37 # 삭제 답글

    로봇과 프랭크 저도 좋았어요

    하지만 자막은 용서가 안된다는...
  • glasmoon 2013/02/13 16:40 # 답글

    알트아이젠 님 / 아 정말 카지노 로얄에서 그 장면은 참, 남자라면 누구나 움찔움찔!

    두드리자 님 / 그 사고도 조만간 영화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먼 드라마로 포장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지나가다가 님 / 서점에서 톰형 얼굴 박힌걸 보고도 왜 코믹스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수정했습니다. ^^

    기억상실 님 / 아 정말 그 분기가 며칠 가더라구요. 자막 제작자가 블로그에 남긴 해명글이 또 가관이라...
  • 두드리자 2013/02/13 23:44 # 삭제 답글

    원전 사고를 예언했다고 애니메이션화가 취소된 코펠리온 같은 예도 있으니, 당분간은 영화화가 힘들 거라고 봅니다. 사고 자체도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로 만든다면 아주 적합합니다만.
  • glasmoon 2013/02/14 13:30 # 답글

    두드리자 님 / 그러고보면 도쿄 매그니튜드같은건 간발의 차이로 성공한 건가요;;
    저 사고에도 작은 부분에서는 영웅적인 희생이 있었으니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 성격상 제대로 까주길 바라네요.
  • 기억상실 2013/02/14 14:20 # 삭제 답글

    블로그 해명글도 자막만큼이나 명작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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