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glasmoon.egloos.com

포토로그



그라운드의 이방인, 파울볼 by glasmoon



2015 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제가 응원하는 두산 베어스는 3연승 뒤 내리 4연패 중이죠.
저도 여느 야구 아저씨(ㅠㅠ)들처럼 1982년 원년 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 시절엔 경기도 선수도 룰도 잘 몰랐습니다. 아직 어리기도 했던데다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이었던 사촌 형들을 무작정 따라 응원한 셈이었거든요.
82년 프로 출범 이전에는 실업 야구와 고교 야구가 인기를 끌었다는건 다들 아실 터.
그런데, 가뜩이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와해된 한국 야구가
어떻게 빠른 시간 안에 프로 수준의 경기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전쟁 후 폐허나 다름없던 땅에서 한국의 야구계는 본보기로 삼을 만한 선진야구가 절실했다.
하지만 야구 종주국 미국은 너무 멀었고 가까운 일본은 너무 미웠다.
그래서 찾은 답이 선진야구 실력을 갖췄지만 뿌리가 같은 재일동포들이었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1956년부터 1997년까지 결코 짧지 않은 40여년의 시간동안
해마다 8월이면 '모국'에서 경기했던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을 이야기합니다.
초청 경기를 열었던 초창기에는 카 퍼레이드에다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닐 정도로 대인기였다네요.
경기 후 귀국할때 기부했던 야구 장비들마저 맨바닥 상태의 한국 야구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처음에는 지도 수준이었던 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교류전 비슷한 성격을 띄었고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가 시작된 뒤론 거기에 하나의 팀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끝내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서너 차례인가 준우승을 거두었는데
저 또한 어린 시절 TV 중계 고교야구에 재일교포 팀이 나왔던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는군요.

그런데 길게는 몇 십 년이 지난 현재 제작진들이 인터뷰하고자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연락이 닿아도
절대 다수가 거절하거나 기피합니다. 좋은 의도로 모국을 방문했지만 좋은 기억이 없었다는 거죠.
일본에서는 '자이니치(재일조선인)'라는게 주위에 알려져 야구 인생이나 취업 행로가 막히기도 했거니와
또한 한국에서는 앞으로는 환영하지만 뒤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 취급이었으니,
경계인으로서 양쪽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교포의 처지는 여기에서도 되풀이되는데...

우리는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으로 모국을 찾았던 명단 속에서 굵직한 이름을 몇몇 찾게 됩니다.
훗날 일본 야구의 전설이 되는 장훈, 한국 실업야구를 거쳐 프로 코치를 지낸 배수찬,
그리고 김성근.


솔직히 베어스 팬으로서 번번히 발목을 잡았던 김성근 감독을 좋아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선수를 총동원하는 그의 경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도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야구계의 어른다운 행보라며 존경하게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고양 원더스는 기적적인 창단부터 리그 돌풍을 지나 갑작스런 퇴장까지 과연 도깨비같은 팀이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저니맨 최향남, 코치까지 하다 다시 선수로 돌아온 김수경을 비롯해
방출된 선수들, 지명당하지 못한 선수들, 이미 생업에 종사하다 야구를 잊지 못한 선수들이
오로지 김성근이라는 이름 아래에 또 한 번의 기회를 노리며 뭉칩니다.

그래도 대다수가 선수 출신이니 다시 끌어올리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예상과 달리
수 년 간 현장을 떠나면서 풀어졌던 몸과 마음을 다시 다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고, 하는 경기마다 한 점 내기도 힘들었지만
감독 이하 모든 스태프와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하나씩 이루어 나갑니다. 그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
LG 투수가 된 이희성 선수를 시작으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프로 영입이 스물을 헤아릴 즈음,
2014년 모처럼 긴 추석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스태프와 선수들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고양 원더스 야구단 해체'

과정에서 원더스의 구단 운영이나 경기 진행에 정상적이지 못한 부분도 물론 있었다지만,
결과에서 원더스가 배출한 선수들이 높은 프로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지만...

한참 훈련하던 때 어떤 선수가 말합니다.
"도중에 그만 둔 선수들은 항상 야구에 미련을 남기고 살아간다. 나는 이 팀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되든 안되든 여기서 끝까지 노력해본다면 떠나더라도 미련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팀이 해체되고 뿔뿔이 흩어져갈 때 어떤 선수가 말합니다.
"전 이미 한번 떠났다 온거잖아요. 버틸 때까지 버텨보려고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 어느 밸리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은 영화로 올립니다.


덧글

  • 동사서독 2015/04/09 17:22 # 답글

    82년부터 야구팬이셨군요. 저는 92년 롯데 우승 즈음부터 야구팬이 되었답니다. 그전까지는 그리 열정적이지 못했었죠. 김일융 김영덕 김무종 고원부 고지행 김성근 장명부 홍문종 김실 송재박 송일수 등등 재일교포 야구인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었죠. 롯데는 도위창이라고 일본인 코치를 두기도 했었는데 그분도 재일교포인지 모르겠네요.
  • glasmoon 2015/04/09 20:43 #

    저도 제대로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군대 시절부터죠. 그때 우승을 하긴 했는데 짬이 안돼서 티도 못내고^^;
    베어스에서는 작년 감독이 교포신데...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네요. -_-;;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