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의 고만고만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스톰"이라는게 있었습니다.
감독도 주연 배우들도 딱히 부각되는 필모그래피가 없는 신인급인데다 투입된 예산도 많지 않은,
딱히 굵직한 이야기도 없이 CGI로 묘사한 토네이도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여름철 재난 영화라는 점에서
왕년 얀 드봉이 만들었던 "트위스터"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할까요.
대신 CGI로 그려진 초대형급 토네이도의 위력이 -적잖이 과장된데다 사실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걸출한지라
한여름 더위를 날려보내기엔 더도덜도 없이 딱이었던 그런 영화였죠.
여느 할리우드 재난 영화가 그러하듯 어리고 순진한 남자 주인공이 있고, 그가 동경하는 여자 아이가 있고,
주인공에겐 단짝인 남동생과 사이가 썩 좋진 않지만 나름 직업 의식과 사명감이 올곧은 아버지가 있고,
그런데 그 마을을 토네이도가 덮치고, 토네이도를 쫓아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뛰어들고,
토네이도의 규모가 커지면서 피해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어마어마해지고, 주인공 일행도 위기에 처하고,
각자의 기지와 누군가의 영웅적 희생 끝에 결국 살아남아 자연의 경고를 되새긴다는 뭐 그런 뻔한 얘기였는데.
토네이도가 그 이빨을 드러낼 즈음 남녀 주인공이 폐쇄된 공장의 잔해 더미에 갇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옴짝달싹할 도리가 없는 처지, 물은 점점 차올라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이 마지막을 예감하며 카메라에 가족들을 향한 유언을 녹화하고자 하는
그런 상투적인 장면을... 늘 보아오듯 그렇게 무덤덤하게 볼 수가 없더라구요. 자꾸만 무언가가 겹쳐보여서.
그저 평범한 시민일 뿐인 제 가슴에도 못을 하나 박아놓은 그 사건으로부터 어느덧 일 년이 되었습니다.
한 해가 지나도록 달라진 건 없고 각자의 가슴에 박힌 크고작은 못들 또한 빠질 기미가 없는 채.
잊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덧글
이문세씨가 부른,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잖아요. 그대 내 곁에 있어요. 떠나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그대 사랑해요.... 이 노래가 오늘따라 더욱 애절하고 사무치게 들립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