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년 전의 오늘, 1969년 7월 20일 인류는 드디어 지구 외 천체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나사는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면서 '인간의 우주 활동'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전하기 위해
계획에 사용될 모든 물품에 대해 다방면(온도,습도,압력,충격,진동 등등)에 걸쳐 철저한 테스트를 거쳤는데
우주비행사들이 사용할 손목시계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가혹한 시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시계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였습니다. 물론 이후 오메가는 그 영광을 판매 상술로 잘 활용했고,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모델은 '달에 다녀온 시계'로 홍보되며 "문워치"라는 별명을 얻었죠.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휴대전화의 사용과 함께 손목시계는 더 이상 차지 않게 된 저이지만
몇 해 전 언젠가 기계식 시계의 역사와 유명 시계들에 얽힌 뒷이야기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다른건 모르겠고(...) 달에 다녀왔다면 왕년의 우주 소년들에게는 확실히 어필하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시간이 흘러흘러 어찌된 일인지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손목시계 하나이건만 상술 아니랄까봐 엄청나게 화려한 박스에 담겨있더라구요.
실은 이 박스도 더 커다란 아웃박스에 들어있지만 과대포장은 이걸로도 충분하니 그건 뺍시다.

열어보면 뭔가 번쩍번쩍하긴 합니다. 비록 공간의 낭비가 심하긴 해도 말이죠.

구성품은 시계 본체, 스피드마스터 심볼을 입체화한 문진,
그리고 나토 스트랩과 벨크로 스트랩, 그리고 스트랩 교체를 위한 도구와 확대경(루페) 등입니다.

지금에야 문워치로 불리지만 스피드마스터란 이름에서 보듯 태생적으로 레이스 스포츠용 시계이므로
속도를 재기 위한 크로노그래프와 타키미터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모양이 똑같아도 글라스가 헤잘라이트 크리스탈인 모델과 사파이어 크리스탈인 모델이 있는데
달에 간 원본은 비행사들의 안전을 위해 충격을 받더라도 파편으로 부서지지 않는 헤잘라이트 크리스탈이나
아무래도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는 스크래치가 덜 가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이 낫겠죠.

그리고 사파이어 크리스탈 모델에는 이렇게 무브먼트가 보이는 시스루백이 적용됩니다.
물론 거기에 당연히 딸려오는 추가 가격;;
수동시계에 조예가 있는 분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저처럼 처음 접하는 보통 사람에게는
이렇게 무브먼트(칼리버 1863)의 작동이 눈으로 보이는 시스루백이 확실히 메리트가 있긴 하겠죠.
각인된 문구 'THE FIRST AND ONLY WATCH WORN ON THE MOON' 의 자부심이 보통이 아닌 듯?

동봉된 책자 두 권 중 하나는 스트랩 교체를 위한 설명서지요.
보다 가볍고 활동적인 나토 스트랩과 함께 들어있는 벨크로 스트랩은 실제 우주복 위 착용을 위해 사용된 방식.
아무래도 스틸 스트랩은 무게로도 시각적으로도 부담이 가는지라 나토 스트랩으로 바꿔 쓸 생각이었건만
이 시계를 얻은 뒤 반 년이 지나도록 실제로 착용한 횟수는 한 손으로 꼽습니다. -,.-

책자의 다른 한 권은 우주 시대에 활약한 스피드마스터의 역사에 대한 카탈로그군요.
머큐리 시대에 시작되어 제미니 시대를 지나 아폴로 시대를 관통했던 영광의 시간들 속에서도
가장 빛나는 페이지는 역시 아폴로 11호와 함께 했던 바로 그 때.

이 시계가 함께한 미션들의 패치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맨 마지막의 것은 미국과 구 소련이 함께했던 1975년의 아폴로-소유즈 시험 계획.

그리하여 본디 시계이나 이렇게 덕질의 수집품 처지가 되어버린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였습니다.
'달에 간 유일무이한 시계'라는 타이틀도 어마어마하거늘 이런 호사스런 박스 구성까지...
오메가여, 과연 덕후를 낚을 줄 아는구나!!! orz
달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저는 과연 죽기 전에 이 시계를 차고 위성 궤도라도 올라갈 수 있을까요??
반다이 - 어른의 초합금 1/144 아폴로 11호 & 새턴 V형 로켓
덧글
저는 롤렉스파입니다만 이건 또 이것대로....
쿼츠 손목시계가 처음 나온것도 1969년이었죠. 조금 더 빨랐다면 기계식 시계 대신에 세이코 쿼츠시계가 달에 갔을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나저나, 싸고 우수한 쿼츠시계를 두고 굳이 기계식을 고집하는 것은 쉬이 만든것보다 어렵게 만들어낸 것이 (기능적으로는 같거나 오히려 약간 열등하더라도) 더 소중하게 느껴져서일까요?
...라고 오바해 봤습니다. 아니 시계가 정말 좋네요. 저도 예약 할것을.
그런데 혹시 영화 "그래비티"를 보시고 지름신이 강림한 건 아닌지?
기계식 시계에 대한 감상이라면, 글쎄요, 저로선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역사적 공예품 취급이랄까^^;
그런데 달에 간 중국 우주인이 싸구려 중국제 손목시계 찼는데 문제없이 잘 가더라- 하면....
오메가가 "달에 간 시계"라고 자랑하는 것을 그만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