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할로윈에 제대로 몰입하여 포스팅하고야 말겠노라는 다짐이 올해도 허무하게 지나갔지만,
1994년 개봉한 알렉스 프로야스의 "크로우"는 여러 의미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다른 수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브루스 리가 남긴 유산을 너무나 늦게 알아보았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단순하고 직선적인 복수극을 대단히 감각적으로 버무려낸 프로야스의 연출은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으니,
한창 할리우드로 영입되던 MTV 출신 감독 중 한 사람인 그는 영화를 커다란 뮤직비디오로 완성한데다
그에 힘입어 작품과 함께 공개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는데...
영화와 혼연일체인 타이틀곡을 부여한 더 큐어를 필두로
헤비메탈의 마지막 울림 중 하나였던 판테라, 전성기를 향히 질주하던 나인 인치 네일스를 비롯하여
당시 국내에 소개되기 전이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등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능력있는 밴드들,
그리고 작품을 마무리하는 제인 시베리의 아름다운 트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보물상자라고밖에!
물론 이것이 이후 한동안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닌 삽입된 노래들로 채워지는
바람직하다고는 못할 유행의 시발점 중 하나가 되긴 했지만서도.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나는 또 하나의 트랙이 있었으니, 바로 스톤 템플 파일럿츠의 'Big Empty'.
나른하고 몽환적인 도입부와 거칠고 폭발적인 후반부의 대비는 청자의 귀를 단번에 매혹시켜
당대의 얼터너티브 열풍으로부터 한 발 벗어나 쇠락하는 헤비메탈을 끝내 부여잡고 있던 누군가로 하여금
교양 필수였던 너바나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그런지 밴드의 정규 앨범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그런지 팬들로부터 독창성이 부족하다느니 모 밴드의 짝퉁이라느니 하는
혹평을 많이 들었던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로서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가볍게(?) 접할 수 있었달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사운드와는 결국 친해지지 못한 채 나는 입대 영장을 받았고
그 이후로도 간헐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펄 잼 등과는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으니.
스톤 템플 파일럿츠의 목소리였던 스콧 리차드 웨일랜드, 48세의 나이에 2015년 12월 3일 사망하다.
최소한 나에게는 에디 베더보다도 그대의 목소리가 친숙하고 정겨웠다오.





덧글
이 사람 죽은은 좀 놀랍네요......
여느 밴드들처럼 멤버들끼리 투닥거리다 보컬이 바뀐지는 좀 됐지만 STP의 프론트맨이라면 역시 그로 기억되겠죠.
그러고보면 앨리스인체인스는 겹조사가 이어지는 바람에 재기 불능이 될 줄 알았구만 건재하다는게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