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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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 - 달덩이 by glasmoon


먼저 고백하건데, 라디오헤드의 앨범(내멋대로 달(웅)덩이라 부른다)을 15년만에 구입한 것은
옛정이 다시 불붙었다거나 갑자기 바람이 났다거나 (그게 그건가?) 하는게 아니라
요즘 하드록/헤비메탈 분야의 대기근(혹은 멸망의 전조)으로 귀가 기아에 허덕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달'에서 따온 제목과 커버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지와 브릿팝 열풍에서 한 발 비켜있던 나로서도 그들의 에너지 넘치는 데뷔작 "Pablo Honey"로부터
히트곡 가득한 "The Bends"를 지나 문제작 "OK Computer"로 변이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Kid A"의 전환은 의심의 여지 없이 충격이었으며,
"Amnesiac"에 이르러 이들의 음악을 듣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나에게 '라디오헤드'란 진화를 거듭한 나머지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게 된 공룡이나
너무나 빨리 성장한 나머지 죽음을 목전에 둔 조로증 환자에 다름 아니었다.



과연 첫 트랙과 첫 싱글은 잘 뽑고 볼 일이다. 이렇게 포스팅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곡 때문이니까.


15년의 세월동안 건재한 그들과 견고해져가는 평단과 신앙에 가까워진 팬덤을 바라보며
저들은 이제 어떤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이따금 생기긴 했지만
그때는 그것 말고도 들어야할 음반이 너무나 많았고 지금은 별로 없다는게 차이인가.
그리고 그 긴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들어본 그들의 음악은 의외로, 괜찮은 노래였다.
록 음악이고 밴드 음악이고 포스트 어쩌고를 떠나 그냥 '괜찮은 노래'.
라디오헤드가 시대를 앞서갔다느니 새로운걸 어쨌다느니 하는 사탕 발린 소리는 치우자.
하지만 내 귀가 좀 더 열리고 좀 더 포용력과 이해력을 갖추는데 시간이 걸린 건 맞다.
이런 류의 음악이 차츰 퍼지면서 스며들어 알게모르게 익숙해지는데 걸린 시간을 포함해서.

나는 아직 15년의 시간동안 그들의 음악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확실한건 극단적인 상상에서처럼 자기 소멸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는 현재의 모습 뿐.
스스로에게 가혹한(팬들에게는 매몰찬) 실험 끝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 것인지,
날카로웠던 모서리가 가차없는 정질과 세월의 풍파에 어느 정도 깎여나간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서로서로 나이를 먹었다고 좋게좋게 타협한 것인지,
이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을 떠날 때다.


덧. 그래도 "Amnesiac"은 듣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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