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세월동안 표류했던 "공각기동대"의 할리우드 실사화가 드디어 개봉했다.
예고편을 보고 기대는 진작에 접었으나 일단 팬을 자처하고 있으니 보지 않을순 없지.
이하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부득이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시라.

개봉 전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공각의 여러 버전 중
원작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노골적으로 따라한 장면이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각의 상징이 되어버린 광학 미채 다이브야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하겠지만
오프닝의 의체 제조 과정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의 대 전차 전투와 헬기 저격에 이르기까지
팬이라면 누구나 알아볼만한 장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사이사이의 나머지 장면과
일부 캐릭터들은 카미야마 켄지의 "SAC" 시리즈에서 따온 것들이 보충/보완한다.
그것도 그냥 따온게 아니라 배경이나 구도, 카메라 워크까지 그냥 복붙한 수준.
그 외 차량이나 광고로 도배된 도시 등은 고전 중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의 맛이랄까.
이런 고로, 이야기의 뼈대 역시 오시이의 극장판을 큰 축으로 따르면서
카미야마의 SAC의 캐릭터와 일부 요소를 첨가하여 적당히 주무른 수준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도 공각의 기존 세계를 알지 못하는 초심자들을 배려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그러한 노력(?)의 결과 공각만의 색채는 잃어버린 채 흔한 B급 SF로 다시 태어났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령의 위치가 최초의 전신의체 시술자로 바뀐 부분인데 그 결과
의체 구사 및 전뇌전의 전문가에서 사이보그 전사(...)로 전환되는데 크게 기여했거니와
종국적으로 이야기를 과거 잃은 사이보그의 진실된 자아 찾기로 이끈다.
여보시오, 폴 버호벤의 "로보캅"이 30년 전 물건이라고 이 양반들아!!
그러므로 강인하고 쿨하셨던 누님은 고민하면서 몸빵으로 때웠다 고쳤다를 반복하시고
(개봉 전 말 많았던 화이트 워싱에 대해서라면 나름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두긴 했다)
극장판의 인형사와 결합된 SAC 출신 쿠제는 말더듬이 병맛 복수귀가 되었으며
바토와 토구사는 대사 있는 부하 1과 2, 나머지 멤버들은 대사 없는 부하 기타등등.
아, 9과 전체를 통틀어 과장님 짱짱맨!
역시 최강캐는 허여멀건한 요한슨 따위가 아니라 기타노 다케시였어! 게다가 리볼버라니!!
폭풍과 같은 상영이 끝나고 엔딩 테마가 시작될 때 뿜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
공각기동대의 묘미는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다양하게 변주 또는 재해석하는데 있다 할때
본작에서 루퍼트 샌더스의 독창성을 찾는 것은 안드로이드에서 고스트를 찾는 것과 같다.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딱 돈들인 만큼 뽑아낸 것도 같지만,
원작의 팬들은 심드렁할테고 팬이 아닌 이들은 철지난 "매트릭스"의 아류작으로 볼지도.
아시아의 원작과 캐릭터를 가져와 묘한 결과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또 원작의 겉모습만은 기막히게 복제했다는 점에서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와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 하겠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는 각자 판단하시라.
공각기동대, 팔자도 걱정
덧글
어째든 그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은 총 3권, 오시이의 극장판 2편, SAC 두 시리즈, ARISE는 패스해도 무방하니... 음 적은 양도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