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 주간의 성당 여행, 이번에는 서울의 후암동 성당입니다.

서울역 건너편의 남산 기슭에 위치한 후암동은 서울의 오랜 주택지 중 한 곳입니다.
고지대의 특성에다 남산과 용산 미군기지 사이에 낀 위치로 인해 적잖이 노후된 지역이지만
거꾸로 그로 인해 서울의 옛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기도 하죠.

후암동 성당도 후암로에서 작고 가파른 길을 찾아 올라가야 하기에
후암동인걸 알면서 왜 자전거를 타고 왔을까 적잖은 후회를 계속 했습니다.
3~5층 정도의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 끼어있는데다 성당 입구에도 같은 방식의 건물이 세워져
알고 가는 사람이나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찾아오기가 쉽지는 않겠네요.

오른편이 성당 본관, 왼편이 근래에 증축된 신관입니다.
1964년에 지어져 50년이 훌쩍 지난 건물이다보니 공간으로나 시설로나 부족해짐은 당연하나
먼저 사진에서 보듯 새 건물이 입구를 가리면서 성당 전경을 보지 못함은 아쉬운 일입니다.
아래는 어딘가에서 빌려온 왕년의 모습.


나상진 설계의 이 후암동 성당은 일전에 소개한 이희태 설계의 혜화동 성당과 함께
국내에 세워진 첫 세대의 모더니즘 성당 건축물이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두 건물 모두 콘크리트 벽채를 일부 노출하는 한편 마감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절충하고 있죠.
그러나 후암동 성당은 계단 방향을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돌렸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 되는데
이는 계단과 함께 길쭉한 성당 건물의 옆 공간을 안마당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면적이 부족한 서울 시내에서 공간 효율성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배치는 이후 널리 받아들여져 70년대 전후에 세워진 여러 성당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한 나머지,
이 후암동 성당처럼 주변이 다세대 주택이나 빌딩들이 포위된 극단적인 경우에는
성당 정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제대로 볼 수도 없다는 단점이 생기는군요.
신축 건물 위로 올라가야 이 정도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부는 혜화동 성당과 마찬가지로 기둥 없는 장방형 구조입니다.
그러나 스테인드 글라스를 겸한 창문이 측면을 따라 길게 마련되어 들어오는 빛은 훨씬 많네요.

제대 위에는 그 공간을 위한 채광창이 윗 방향으로 나 있습니다.

측면의 창문이 제대 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군요.

사시는 곳 근처의 성당이 이렇게 길쭉한 건물이고 또 옆으로 계단이 나 있다면
건축적인 요소에서는 이 후암동 성당의 후손(?)쯤 되는 건물일 수도(혹은 아닐수도) 있습니다.
후암동 성당은 왕년의 드라마 "겨울 연가"에도 배경으로 등장하여 유명해진 적이 있다는데
그때는 아마도 입구에 신축 건물이 생기기 전이었겠죠?

정면을 어떻게든 담아보겠노라 골목들을 빙빙 돌아보았지만 여기가 한계인 듯.
한국식 모던 성당의 원형을 간직한 후암동 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부활절이자 세월호 3주기였죠. 잊지 않겠습니다.
성당 여행; 서울 혜화동성당
성당 여행; 의왕 포일성당
덧글
네 말씀대로 입구쪽에 새 건물이 올라갔는데, 덕분에 성당 전면부는 보기 어려워졌지요. 모든 건축물이라는게 시기와 필요에 따라 바뀌게 마련입니다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