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장거리 여행에 또 겸사겸사 근처 성당들을 돌아보면서 순서가 엄청 밀리고 있네요;
대선 직전...이라니까 굉장히 오래된 것 같지만 실제 얼마 되지 않은 대구(인근) 여행 세 번째,
칠곡의 왜관 성당입니다.

사실 왜관 지역은 칠곡군에 속한 하나의 읍이라기보다 그냥 '왜관' 독자적으로 인식되는 편인데
지리상 대구와 구미라는 도시에 끼어있는데다 이름이 유래된 칠곡읍은 대구시에 흡수되어버려
사실상 군청소재지인 왜관이 중심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당은 군청과 철도역이 있는 구시가지와 아파트가 밀집된 남쪽 거주지 사이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성당으로부터 두 블럭쯤 동쪽으로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있지요.

성 베네딕도회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라는 모토를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수도원 농장의 농산물, 각종 성물, 종교 관련 서적(분도출판사), 독일식 소시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도자들이 한 가지 이상의 노동에 종사하며 숙련된 솜씨로 고품질 생산품을 만들어내는데
최근 다녀온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색유리화도 왜관수도원 유리공예실에서 만들었죠.
그리고 수도회 안에는 건축 설계를 주특기(?)로 하는 분도 계셨으니, 바로 알빈 슈미트 신부입니다.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간 122개의 성당 포함 무려 185개의 건축물을 설계하였습니다.

알빈 신부가 설계한 성당은 모던하면서도 크고 화려함 대신 지역과의 조화를 보여주게 되는데
성전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지그재그로 꺾이고 그 안으로 종탑을 품은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점은, 내부가 매우 밝다는 것입니다.
채광이 매우 좋기도 하거니와 벽도 매우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어 잠시 어리둥절할 정도였죠.

게다가 비둘기 형상의 성령과 결합된 십자가, 현대적 도안에 가까운 디자인의 제대 뒤 벽화,
독자적으로 큰 공간이 할당된 감실 등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이에 대하여 알빈 신부의 변을 직접 들을 수 없음이 아쉽지만
성당의 건립 시기(1966)가 보편성과 공동체를 강조하며 천주교 내에서 일대 변혁을 일으킨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직후라는 점을 들어 그 정신을 드러내려 했다는 해석이 있고
저도 그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좋은 할아버지같았던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혁신을 일으킨 것처럼
소박한 지역 성당에서 구현된 그 정신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이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잡지는 못했고
우리나라의 성당 건축은 여전히 낭만주의와 절충주의의 틀 안에 있다는 비판도 받게 되지만요.

찾아갔을 때 마침 성당에서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어서 방해될까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없었네요.
이채로움에 놀라고 그 까닭에 다시 감탄한 왜관 성당에 이어 대구(인근) 여행의 마지막으로
왜관의 또다른 유명한 성당이 이어집니다.
성당 여행; 대구 복자성당
성당 여행; 대구 계산성당
성당 여행;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
덧글
네 정면 왼쪽의 초상화는 김대건 신부님 초상화구요. 다음에 꼭 가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