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CGV에서 VIP 고객 대상으로 하루 24시간 동안 원하는 영화를 모두 볼 수 있는
원데이 프리패스를 사은품으로 지급했었죠? 그러나 바쁜 생활에 하루 잡기가 쉽지 않다보니
결국 쓰지 못하고 잊어버리거나 해를 넘기거나 하다가, 연휴의 와중에 용케 떠올리는 바람에
어제 드디어 거사를 감행했습니다!

특별관은 적용되지 않으므로 장소는 일반관 위주로 구성된 CGV 신도림,
영화는 사이사이 쉬는 시간을 넣어 모두 네 편을 예매했습니다.
선정된 네 작품은 개인적인 기대작 "남한산성", 지난주에 보지 못한 "킹스맨: 골든 서클",
그리고
먼저 김훈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가뜩이나 사극인데다 다루는 시기도 시기인 터라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으나
그런 마음을 꿰뚫어보는듯 아주 훌륭하게 완성되었네요. 빼어난 그림,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담담한 연출에 이르기까지 아주 그뤠잇~!
역사적 사실이 일부 삭제되거나 변경되었다 하나 영화적 진행을 위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고
고증에 있어서도 제가 역덕은 아니어서 따져보진 못했으나 크게 흠잡을 데는 없다는 모양이니
과연 이준익 감독의 "사도"와 더불어 근래 가장 뛰어난 역사 영화라 하겠습니다.
다만 굳이 흠을 잡으라면 제X장 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잘개 쪼갠게 오히려 몰입을 방해했달까.
다음으로 근래 가장 유쾌한 스파이 영화였던 "킹스맨"의 속편인 "골든 서클"은,
이미 개봉후 한 주가 지난 터라 여러 반응과 평을 보며 기대 수준을 다소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네요. 속편이므로 위기 상황을 조성해야하는 당위는 알겠지만
그리고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지만
그냥 대놓고 조롱을 해버리던가, 이렇게 버려버릴거 뭐하러 스테이츠맨이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계속 빌빌거릴거 뭐하러 XX를 왜 살려왔는지, 그 와중에 다른 XX는 왜 죽였는지도 모르겠고...
줄리안 무어가 애써봐도 존재감 없는 악당들에 의미없는 월드 로케와 진부한 엔딩까지 이르면
특유의 잔재미는 조금 남아있지만서도, 이게 1편의 그 매튜 본이 맞나 싶습니다.
다음은 뭐니뭐니해도 올해의 가장 주목되는 작품 중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 2049".
아... 음... 이건 아직 정식 개봉 전이기도 하고;;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로군요.
일단 첫인상은 정말 돈을 그냥 부었구나... 근데 이렇게 나온다면 돈을 부을 만도 하겠구나...
전작이 워낙 추앙받는 걸작이다보니 부담이 엄청났을텐데 극복하고자 애쓴 흔적도 역력하구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전작의 미술과 분위기를 존중하는 것도 좋았고,
특히 테마 전반이나 중요한 장면에서 전작의 음악이 차용되는 순간은 아주 감동적이었고..ㅠㅠ
긴 상영 시간에 등장 인물이 많고 플롯이 복잡하다보니 첫 회 관람으로는 따라가기 급급한지라
다음주 개봉 뒤 바로 2회차를 시도하겠지만, 이건 SF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하는 작품일 겝니다.
그리고 마지막 뒷정리용으로 "범죄도시"까지 예매해 두었었는데
동행인의 체력 고갈로 인해 보지 못하고 철수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감상은 없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가 영화 세 편을 보고 돌아오니 오후 10시.
아아, 이 얼마나 보람찬 하루였던가~?
내년에도 원데이 프리패스를 받는다면 명절 연휴 중 하루를 잘 노려봐야겠군요. ^^
덧글
1편의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케이스로 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