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때문에 극장에서 한 번밖에 보질 못한 터라 BD 소프트가 나오는대로 구입할 생각이었으나
사전 예약을 개시하자마자 광속 품절 크리, 어차피 초회 한정 머시기엔 관심 없으니 그렇다면야
조금이라도 저렴한 일반판을 사주마 했더니 그건 또 보너스가 빠진 1 디스크 사양으로 발표났길래
부랴부랴 수배해서 가져온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초회판 2디스크 블루레이입니다.
이제 워낙 소량을 찍어내니 제때 맞춰 줄서지 않으면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네요. 씁~
어차피 수입하는 사운드트랙도 한참 지나서야 소량씩 들여오는 바람에 사람 기다리게 만들더니!

근데 열어보니 정작 별거 없더라구요. 1디스크 사양에도 들어간 와타나베 신이치, 루크 스콧 감독의
프리퀄 영상은 이미 유튜브에 공개되어 다들 보셨을테고, 제작/출연진의 인터뷰도 여느 영화들처럼
'누구는 정말 대단해요~', '그건 진짜 엄청났어요~' 식의 마냥 좋은 덕담 릴레이라 별 의미가 없고,
제작 과정이나 그와 관련된 뒷이야기는 찔끔짤막 맛만 보여주는 정도이다보니;;
그래도 알게된 거라면 화면상에서 전해진 것처럼 세트도 소품도 최대한 실물 사이즈로 다 만들었다,
심지어 이건 당연히 CGI겠지 싶었던 장면들도 의외로 실사로 촬영하여 처리한 부분이 적지 않다,
반대로 이건 당연히 실사 합성이구나 했던 장면들은 또 거꾸로 CGI의 도움을 받았더라.. 정도?
뭐 이러한 실사와 CGI의 협업(?)에 힘입어 무시무시한 영상을 뿌려댔다는건 아시는 바와 같고,
반젤리스의 원전을 존중하며 현대적으로 변주한 음악이 그에 잘 어울렸다는 것도 이미 이야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게 쏟아부은 제작비를 회수하기엔 팬이 아니면 알아먹기 힘든 플롯에
몇 안되는 액션 장면, 지나치게 긴 상영 시간이 겹쳐 극장 흥행에서는 폭망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속편이 나온다면 어째 또다시 30년이 지나야 "블레이드 러너 2079"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냥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닌다 합니다마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제가 보았을 때 가장 허탈했던 부분은 의외로(?) 상상력의 빈곤함이었습니다.
물론 전작인 "2019"와 거기에서 구축한 세계관이 존재하니 전과 같은 혁명적인 전환은 불가능하고
거기에 다시 매우 그럴듯한 디테일이 입혀졌지만, 작품 내에서도 밖에서도 30년이라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 번 본' 인상이 이어진다는건 -물론 반갑기도 하지만- 다소 맥빠지는 일이었죠.
거기에다 작중에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대정전'이라는 이벤트까지 연대기에 삽입했건만
타이렐이 월레스로, 넥서스 6가 넥서스 8으로 대체되었을 뿐 대립 구도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고
무엇보다 전작과의 연결 고리인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비중이 생각외로 상당히 큼을 확인하면서
'비슷하게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대결 구도는 그대로이고 특정 핏줄이 여전히 휘어잡고있는'
옆 동네의 전설적인 히트 시리즈(거기도 최근작은 망했다던가)의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까지 해서 이끌어낸 결과가 안드로이드(로봇)의 조직적 반란(모의)이라는, 이제와서는
우릴데로 우린 나머지 다 녹아 없어질 지경의 전개에 이르면 입에서 절로 작은 탄식이..;;
그러나 "2049"를 독립된 작품보다 종속된 속편, 나아가 "2019"의 변주로 보고 차이점에 주목하면
또 유의미한 장점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일단은??) 인간이었던 전편의 데커드와 달리
이번 주인공 K는 레플리칸트임을 명백히 하고 시작함으로써 화면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진데다
레플리칸트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의 위안용 AI 조이를 통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는 무엇인가'
라는 전편으로부터 이어진 주제를 한 단계 더 깊이 파고든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데이터의 편린이라던가 월레스의 집착을 통해 재연되는 전작의 인물과 장면들,
무엇보다 '그 음악'까지 동원한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팬들은 이미 울고 있을 밖에요. 씁~ㅠ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결산해보면 과거의 걸작을 현대 기술로 되살렸으나 정작 알맹이는 부실한
근래 프랜차이즈 영화의 문제점을 답습했다는 비난은 겨우 피했으되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었고,
독창적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을 정말 압도적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수준의 영상과
음악을 통해, 그리고 전작 요소의 활용을 통해 어느정도 만회한 수작 정도로 귀결됩니다.
어쨌든 스×워즈고 에×리언이고 죄다 헛발질만 요란하게 하고 있으니 이정도면 그저 감지덕지~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런 대자본이 투여되었는데도 제작사의 간섭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30분 정도 덜어내고 늘어짐을 피해 130분 정도로 편집했더라면 과연 득이 컸을지 실이 컸을지?
어느샌가 주류 감독으로 부상한 드니 빌뇌브가 평단의 평가와는 별개로 흥행 부진이 이어졌기에
차기작에서도 이런 자유와 권한을 누릴 수 있을지 걱정 반 우려 반(응?)... 이라는 걸로 정리하죠.
아, 그리고 오는 15일,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최종판 버전으로 재개봉합니다.
1993년 국내 개봉했을 때 본 이의 숫자는 매우 적을 터, 25년만에 찾아온 스크린 관람의 기회이니
팬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덧글
과거 팬들을 위한 향수와 새로운 작품으로서 준비한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교묘하게 버무리느냐가 감독의 중요한 과제인거 같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옆동네 모 시리즈의 8편이 개인적으론 많이 아쉬웠습니다 ㅠㅠㅠㅠ)
모 시리즈의 8편이야 뭐.. 하아;;;;
원작과 비교해서 영화외적으로 중요한 건 최근 AI나 가상현실이 뜨고 있다는거 아닐까 싶네요. 조이 류의 위안용 AI는 조만간 실현되지 않을까 싶고... 한계에 이르른 인류가 자신을 대체할 존재를 만들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거죠... 그런 관점이 좀더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프 월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으면 꽤 신선한 영화가 나왔을 법도 한데, 어쩌면 장르 자체가 달라졌을지도?
말씀대로 작중 노예 취급인 레플리칸트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의 AI를 도입한건 꽤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오프 월드에 대해서는 위에 보노보노님 의견에도 말씀드렸지만 다루는 순간 영화의 성격이 바뀔 거라 봅니다. 필립 K. 딕의 많은 작품들 속 묘사들처럼 2019에서도 그저 '환상의 (그러나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 같은 취급이었죠.
- '에일리언 프리퀄들이 별 중요하지 않은 궁금증 해결하느라 불필요한 사족을 건드리며 원작의 매력을 말아먹는 상황'에 대해선 정말 뼈아프군요. 그러니까 미지의 존재이기에 가능한 공포와 매력을 스스로 걷어내고 있으니. 물론 모르면 알고 싶은게 인지상정이고, 빈 데가 있으면 채워 넣는게 창작자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월레스가 의도한 자연 생식은 목적은, 대량 생산을 위한 손쉬운(?) 방법이라기보다 한 순간에 끝날 수도 있는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타개책에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넥서스 6는 이미 다 사라졌고, 넥서스 8도 수틀리니 대부분 폐기되었는데 넥서스 9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월레스가 레플리칸트라는 떡밥도 나오고... 아 이건 여기까지? ^^
그게 아니라 여전히 레플리컨트를 도구로서만 본다면 통제가 힘든 번식방법을 선호하는건 좀 말이 안되는것 같습니다. 생산비용이 낮아진다는 말이 가능하겠지만 아동착취를 생각해도 생산력있는 개체로 숙성하는데 10년은 더 걸리는 비용+들쭉날쭉한 퀄리티. 거의 최악의 선택아니겠습니까 ㅎㅎ
아, 오프월드를 다룬 영화가 이미 있습니다. 커트러셀 주연의 망작 솔져. 작가가 블레이드러너 시나리오 작가였고 같은 세계관 맞다고 말했죠. 다행히(?) 영화가 너무 폭망 퀄리티라 블레이드러너 세계관에 피해를 크지 주지 못했...
- 98년작 "솔저"는 한참 B급 SF 영화들을 섭렵할때 매우 유쾌하게 보았더랬는데, 나중에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말을 듣고는 주저없이 '꺼져'를 외쳐줬습니다.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