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glasmoon.egloos.com

포토로그



공동경비구역 JSA by glasmoon


어느덧 아련해져버린 90년대 말, 멀티플렉스가 태동하기 시작했지만 단성사와 피카디리를 필두로
종로의 터줏대감들과 신촌의 녹색극장, 강남의 씨티극장도 건재하고 '안방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KBS 토요명화와 MBC 주말의 명화가 그들 못지않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혼돈의 구세기말.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당시 자연스럽게 통용되던 '방화(한국영화)는 돈주고 보는게 아니다'는
명제가 그 시절에 이르러 깨져나가기 시작했으니 그 계기는 누군가에게는 "접속"(1997)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였으며 절대 다수에게는 "쉬리"(1999)였겠지만
나를 포함한 또 많은 누군가에게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였다.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아직 시퍼렇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불온 서적으로 법정에 가있던 시기에
이처럼 전향적인 시각의 영화를 만드는것 자체가 체제에 대한 짜릿한(...) 도전이라고 당시 젊었던
박찬욱 감독은 소회한 바 있고, 실제로도 최악의 경우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될 여지도 있었으나
개봉을 앞두고 남북간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그리고 6.15 공동선언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남북간의 냉랭한 분위기는 급거 반전되었고 그 여파를 그대로 맞은 영화 또한 크게 성공하였다.
대학 입학 후 최소한의 의식화(?) 과정은 거쳤으되 병역을 전투경찰로 치루고 전역 후 IMF 사태에
휩쓸리면서 남북 문제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나에게,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북측 또한 사람 사는 곳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우며 그들의 삶에 관심을 일으켰다.
비록 작품에서 소소한 웃음의 장식을 걷어내면 분단이라는 삼엄한 현실과 그에 희생되고 좌절하는
남북 젊은이들의 피와 비극만이 남는다 해도.


윗 세대에게는 1976년의 도끼 만행 사건을 통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이라는 위기의,
현 세대에게는 2000년의 이 영화를 통해 분단 시대의 쓰라린 아픔의 상징이 된 이곳 판문점은
다시 2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2018년 화해와 번영으로 가는 입구라는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언젠가 판문점에서 무기와 긴장이 사라지고 이 모든 것들을 간직한 박물관으로 거듭나기를,
그래서 다음 세대 앞에서 '내가 어렸을 적엔 말이야, 여기 판문점에서~' 라며 지나간 과거의 일로
추억삼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글

  • 자유로운 2018/05/01 23:12 # 답글

    부디 이제는 영원한 평화의 길을 걷는다면 좋겠습니다.
  • glasmoon 2018/05/02 20:45 #

    정말 간절하고 간절하게 바랍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