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이제서야, 2018년들어 처음으로 서울/경기권 밖으로 달려나간 성당 여행!
그 목적지는 청양의 다락골 성지성당입니다.

행정구역상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에 위치하며, 저처럼 수도권에서 내려가는 방향 기준으로는
홍성 끄트머리를 막 지나 홍성-청양-보령 사이의 경계 부근이 됩니다. 그나저나 날이 꽤 덥죠?
올 시즌 본격적인 라이딩을 좋은 5월 다 보내고 6월 하고도 중순이 되어서야 시작해버린 까닭에
2018년은 처음부터 여름용 메시 복장이라는 다소 엽기적인 스타트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홍성-청양-보령의 경계가 되는 오서산 남동쪽 기슭의 산골을 길따라 들어가면
잘 알려진 곳들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단정한 모습의 다락골 성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다락골은 18세기 말 신해박해 이후 최인주가 가족과 함께 들어오며 교우촌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인주의 셋째 아들인 최경환은 1839년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올랐고,
그 최경환의 장남이 '땀의 순교자'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입니다.

일단 제1 목표인 대성당부터 돌아보기로 하죠.
제가 국내 성당 돌아본게 이제 60여곳 되는걸로 아는데, 이렇게 연못을 낀 경우는 처음 봅니다?

성당 건물을 포함하여 다락골 성지의 시각적 특징은 무엇보다도 낮고 넓다는 것이로군요.
건물이 모던하면서도 어딘가 낯익다 싶더라니, 우리나라 현대 성당 건축에 큰 획을 그은
김영섭 씨의 설계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김영섭 설계 성당이 이게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성당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단아한 성모상은 한수영 씨의 작품.

현관에 들어서자 작은 점토상들이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지 자체가 여유롭지 못한 형편에 바로 인근의 최양업 신부 생가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보니
홍보 및 후원금 모집을 위한 것인 듯.

성전 입구에는 최양업 신부와 그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너무나 빨리 순교한 김대건 신부를 대신하여 1850년경부터 전국 각지에 걸쳐
매년 3천 킬로미터 가까이 걸어다니며 국내의 사목 활동을 사실상 홀로 감당하며 이끌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천주교는 그의 엄청난 땀이 흘렀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임에도 수많은 바램과 요청에 의해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되고 있죠.

성당 건물은 빛을 중요시하는 김영섭의 설계 중에서도 이례적일만큼 많은 빛이 유입되는 편입니다.
직육면체형 건물 위로 둥근 지붕이 얹혔는데 벽과 지붕 사이를 전부 유리창으로 채운 식이죠.
사진 정면으로 보이는 제대 왼쪽 측면도 전부 유리창으로 처리되어 성전 내부를 밝게 채웁니다.

제대 뒤, 오스트리아 조각가 셉 아우뮬러의 작품인 십자고상은 2차대전 후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독일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 발견된 양 팔 없는 십자고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예수의 두 팔을
대신하겠다는 신자들의 다짐을 담았다 합니다.

제대 왼편에 특이하게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된 14처 타일화는...

성당 곳곳을 장식한 색유리화, 성수대, 촛대 등과 함께 최영심 작가의 작품.

경사 있는 언덕에 성당을 짓고 입구를 윗쪽으로 내었기에 뒤로 돌아내려오면 2층 건물이 됩니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더욱 현대적인 느낌의 건물은 성지 부속 수녀원.

나즈막한 계단을 따라 다시 위로 올라오니 호수 건너편으로 소성당이 보이는군요.

작지만 따로 종탑도 가진 반듯한 소성당입니다.

대성당처럼 복잡한 형태나 구조를 가지고있진 않지만 채광이 좋다는 것은 한결같네요.
제대 뒷편이 통유리로 뻥 뚫린 성당은 처음 봅니다. *ㅁ*

대성당과 소성당 사이 공터는 새로 정비 조성하는 사업이 한창이었고 (국가 지원이라고)

안내판을 보고 산을 향한 길을 찾아 올라가면 이렇게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두 개의 상 뒤로

제법 가파른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줄줄이 늘어선 무명 순교자들의 묘, 이른바 줄무덤이 있습니다. 여기 묻힌 이들은 병인박해(1866)
당시 홍주에서 처형된 순교자들로 누군가 몰래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묻었다고 전해진다고.
이런 대규모 줄무덤이 크게 세 곳에 모여있습니다.

최양업 신부의 출발점에다 무명 순교자들의 많은 무덤들, 거기에 김영섭 설계의 건축물까지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의외로 높은 가치를 가진 다락골 성지입니다.
최양업 신부가 고난의 생을 마감한 배론 성지에 비하면 작고 소박하며 덜 알려진 곳이지만
담긴 의미와 숭고함에 있어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을 거라 여겨지는군요. 청양의 산골이라 일부러
마음먹지 않는 한 찾아갈 일이 없겠지만 만약 가신다면 그 가치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더불어 피로 물든 이 땅이 오늘 평화로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에 신께 감사합니다.
성당 여행; 제천 배론성지성당
성당 여행; 청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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