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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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上) by glasmoon



핀란드에서 국경을 넘어 드디어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입성했습니다.
모스크바가 (일단 공국 시절은 생략하고) 혁명 이후 강대한 소련과 시궁창을 상징한다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혁명 이전 러시아 제국의 낭만과 시궁창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제정 러시아 시절의 수많은 유물들이 잠들어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돋보이는 곳이라면
단연 겨울 궁전, 즉 에르미타주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이겠죠? 제국 시절의
소장품을 궁전에 전시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미술관의 유래로나 소장품의 규모로나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에 필적한다는 바로 그곳!



월드컵 맞이한다고 아주 새 건물인 양 단장을 해두었네요.
정문 위에 장식된, 러시아 제국의 상징이었던 황금 쌍두독수리 문장이 아주 광채를 발합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중앙에 정원이 있고 그를 에워싸듯 연결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진 양쪽 끝으로 얼핏 보이듯 아침부터 이미 티켓 구입과 입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가~



궁전을 미술관으로 바꾸었다는 점은 루브르와 같으나 내부의 화려함은 이쪽이 더한 것 같군요.
워낙 러시아 황실이 이쪽 취향이었기 때문인지?



소장한 작품의 양 역시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에 견줄만 한데, 바티칸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포함하여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대부분 돌아본 입장에서는 (아직 암스테르담 미술관이 남았구나)
딱히 인상적인건 없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죠. 오히려 자국 작가들에 집중한 러시아 미술관이나
며칠 뒤 모스크바에서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쪽이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렇다보니 이미 알고있는 미술사적 주요 작품들보다는 러시아 자국의 상황을 화폭으로 옮긴
기록화나 초상화 쪽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시 여건상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황제의 방 옥좌 위에 걸린 이 그림!



Jacopo Amigoni, "Peter the Great with Minerva", The State Hermitage Museum

비록 이 궁전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인물이긴 하나 뭐니뭐니해도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이자
러시아 제국의 첫 황제,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 Пётр I Алексе́евич, 1672~1725)입니다.



Nikolay Sauerweid, Peter I of Russia stops maraudering soldiers after taking Narva, State Tretyakov Gallery

17세기 말, 아직 몽골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유럽 열강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동쪽
촌구석의 작은 나라 루스 차르국을 러시아 제국으로 탈바꾸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인물이
바로 표트르 1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구 문물에 관심이 많던 그는 직접 사절단의 일원으로
서유럽을 순방하며 최신 기술과 과학에 매료되었고 귀국 후 적극적인 도입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서유럽에 끼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당시 북유럽의 패자였던 스웨덴 제국의 출중한 왕,
라인하르트 칼 12세와 충돌이 불가피했고 이후 20년간 이어진 대북방전쟁에서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끝내 승리함으로써 잉그리아 지방을 포함한 발트해 연안을 영토로 확보합니다.



서유럽으로 나가는 출구로 잉그리아를 중요하게 여긴 표트르 1세는 늪지대의 작은 항구인 이곳에
새로운 도시의 건설과 모스크바로부터의 천도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네바 강변에 직접 오두막을
지어 기거하며 공사를 독려했고, 늪을 메우는 9년간의 대공사 끝에 1712년 정식 천도를 선언하며
도시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Sankt Petersburg,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이름이 부여되었습니다.
성 베드로의 핑계를 대긴 했지만 누가봐도 자신의 이름(표트르=페테르=베드로)을 붙인 셈인데
러시아식 페트로그라드가 아닌 독일식 페테르부르크가 된 것에는 서구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당시 살았다는 오두막(이제는 작은 집)은 네바강 북쪽 강가에 아직 남아 관광지가 되었죠.



네바강의 반대편 남쪽 강가, 에르미타주 미술관 서쪽에는 표트르 대제를 묘사한 거대한 동상인
브론즈 호스맨(Bronze Horseman)이 있습니다. 이름은 푸쉬킨이 쓴 동명의 시에서 딴 것으로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2세 치하에서 프랑스 조각가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Étienne Maurice
Falconet)에 의해 무려 14년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예카테리나 2세는 로마노프 왕조의
핏줄이 아니었기에 표트르 1세를 추앙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전체 높이 13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동상인만큼 제작되는데 별별 난관도 많았고, 받침대로 쓰인
1500톤에 달하는 일명 썬더 스톤은 인간에 의해 옮겨진 가장 큰 돌이라는 타이틀도 얻었죠.



Nikolai Ge, "Peter the Great Interrogating the Tsarevich Alexei Petrovich at Peterhof", State Tretyakov Gallery

제국의 영광을 세운 이 위대한 표트르 대제도 말년의 후계자 문제에서는 매우 고민이 컸으니
적장자이자 황태자 알렉세이와 마찰이 빈번했습니다. 황태자는 서유럽만 따라가는 황제의 개혁이
못마땅했던데다 황제가 친어머니인 황후를 제치고 하녀 출신의 정부를 총애하는 것도 한몫 했죠.
반목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쿠데타에 대한 소문이 돌자 황태자는 오스트리아로 피난했고,
돌아오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는 황제의 말에 귀국했지만 바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뒤
형 집행 이전에 감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 사인에 여러 뒷소문이 돌았음은 물론이구요.



Ilya Repin,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State Tretyakov Gallery

왕의 아들 죽이기는 러시아 왕가의 전통인 것인지,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는
앞서의 그림과 함께 일리야 레핀의 유명한 그림인 이 작품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루스 차르국 시절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던 '뇌제' 이반 4세가 아들인 왕자 이반을 지팡이로 때려
죽인 일화를 묘사한 것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생략할까요? ^^;



Jean-Marc Nattier, "Portrait of Catherine I", The State Hermitage Museum

아무튼 알렉세이가 죽고 7년 뒤 표트르 1세도 사망하면서 황제위는 알렉세이가 그토록 싫어했던
계모에게 돌아가 예카테리나 1세(Екатерина I Алексеевна, 1684~1727)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하녀 출신인데다 문맹이기까지하여 정치에 관심이 없어 귀족들에게 맡겼고,
즉위 후 2년만에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막장의 역사...



이어 제위에 오른 표트르 1세의 손자이자 알렉세이 황태자의 아들인 표트르 2세 (Пётр II
Алексеевич, 1715~1730)는 아버지를 죽인 할아버지를 싫어하여 그의 정책들을 취소시키다
불과 14세에 죽으면서 왕조의 정통 직계는 일찌감치 끝장나버렸고, 표트르 1세의 이복 형인
이반 5세의 딸 안나(А́нна Иоа́нновна, 1693~1740)의 치세는 잔혹함과 전쟁으로 암흑의
시기가 되었으며, 그녀의 조카인 이반 6세(ЕИван VI Антонович, 1740~1764)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차르가 되었으나 섭정을 둘러싼 암투로 1년 만에 외숙모뻘 옐리자베타
(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1709~1762)에 의해 폐위되어 유폐된 끝에 암살당했습니다.
옐리자베타 대에 이르러 드디어 러시아는 안정을 찾는 듯했고 이 겨울 궁전도 지어졌지만
그녀 역시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로마노프의 부계 혈통은 완전히 단절되지요.



Georg Christoph Grooth, "Grand Dukes Peter Fedorovich and Catherine Alexeevna", Odessa museum

옐리자베타는 표트르 1세의 핏줄을 찾아 그의 외손자가 되는 독일 홀슈타인의 공작 표트르 3세
(Пётр III Фёдорович, 1728~1762)에게 황위를 물려주는데, 그는 정신적 지적인 장애와 함께
전쟁중인 적국 프로이센의 덕후(...)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표트르 3세는 즉위하자마자
유리하게 진행되던 프로이센과의 7년 전쟁을 불리한 조건으로 강화해버렸고, 귀족들을 무시하며
고향 출신 양아치(...)들과 어울려다니는 한편, 독일식 루터 교회를 추종하여 러시아 정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실정을 광속으로(...) 벌이며 평민, 귀족, 군대, 성직자들의 공분을 산 끝에
제위 반 년만에 반란이 일어나 황후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니 바로 예카테리나 2세입니다.



Valery Jacobi, "Inaguaration of the Academy of Art", Louvre Museum

예카테리나 2세(Екатерина II Алексеевна, 1729~1796) 또한 독일 출신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러시아 황가로 들어오면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공부하고 개신교에서 정교회로 개종하는 등
스스로 러시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무능한 남편에 비해 훨씬 총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결국 실패했지만) 계몽주의에 관심을 가져 국민을 위하는 계몽 군주가 되고자 했고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고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크림 반도를 비롯한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우크라이나 일대에 주민 이주를 추진하여 농업 생산량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그리고 문화 예술에 관심이 깊어 유럽의 여러 예술품을 수집하여 겨울 궁전 별관에 전시함으로써
현재의 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있게끔 만든 사람이 바로 예카테리나 2세. 두둥~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넵스키 대로의 동쪽,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앞
오스트롭스키 광장에는 예카테리나 2세의 커다란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동상 아래 종 모양의
기저에는 그녀가 거느렸던 수많은 정부들 중 유명 인사들이 조각되어 그녀를 받쳐올리고 있죠.
그중 아마도 가장 유명할 그레고리 오를로프는 표트르 3세를 폐위하는데 앞장섰으며 신황제가
즉위한 후에는 한동안 사실상 정치적-육체적(...) 동반자로서 사이에 두 자식까지 두었고,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그녀와 함께(...) 보낸 폴란드의 스타니스와프 왕자는 여제의 지원으로
폴란드 국왕에 선출되었으며, (그러나 폴란드는 이후 분할되어 그를 마지막 왕으로 남기고 소멸)
역시 그녀와 더불어 유명한 군인이자 정치가로 성장한 포템킨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전함과,
그 전함에서 일어난 사건, 그 사건을 다룬 영화를 통해 불멸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Alexander Roslin, "Portrait of Catherine II of Russia", Hermitage Museum

황가에 혈연적 정통성이 없었던데다 귀족들에 의해 추대된만큼 권력 기반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츰 힘을 키워나가 30여년의 치세를 사실상 러시아 제국의 중흥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표트르 대제에 이어 예카테리나 대제라는 극존칭을 얻은 대단한 그녀! 그러나 그 과정에서 후진적
농노제를 강화하여 훗날 커다란 화근이 되는 씨앗을 심게 되는데...


미술관과 그림으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러시아 황제 연대기가 되어버린 두서없는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ㅁ-


백야와 좀비의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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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함부르거 2018/08/09 20:42 # 답글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얼마 전에 술에 취한 미친놈(...)이 훼손했죠. -_-;;;; 그 전에 다녀오셨나 보죠?

    남대문도 그렇고 인류의 유산을 훼손하는 놈들은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진짜... -_-;;;
  • glasmoon 2018/08/13 21:17 #

    그 직후 6월에 갔습니다. 아마도 가품이 전시되어 있었던 듯. ㅠㅠ
  • 노이에건담 2018/08/11 14:28 # 답글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젊은 왕비, 모스크바를 늙은 과부로 비유한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드네요.
  • glasmoon 2018/08/13 21:20 #

    상트 페테르부르크였다가 페트로그라드였다가 레닌그라드였다가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엄청난 도시니까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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