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공부(?)를 마쳤으니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성당들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그 첫 번째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옆, 알렉산드르 2세와 연관된 피의 구원 성당입니다.

공식 명칭으로 '그리스도 부활 성당(Собор Воскресения Христова)'이 되는 이 곳은 또한
'피흘리신 구세주 성당(Храм Спаса на Крови)'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를 다시 줄여서
'피의 구원 성당', 더 짧게는 '피의 성당'의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피는
그리스도의 피이기도 하면서 암살된 알렉산드르 2세가 흘린 피를 의미하고 있기도 하죠.

다른 곳에서 빌려온 사진입니다만 원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흔히 모스크바의 상징이자
테트리스의 배경으로 기억되는 '그 성당'은 아니고, 의도적으로 그와 닮게 지어졌죠.

이번 러시아 여행 내내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여기저기 중요한 건축물들이 온통 공사중이더라구요.
월드컵 준비한다고 손상된 부분들에 대한 보수 공사를 시작한게 아닌가 싶은데, 정작 월드컵때
맞춰 끝내지 못하면 무슨 소용;; 하여간 가장 높은 주탑을 제외하더라도 특유의 양파 모양 돔을
올린 이색적인 외양에다 번쩍이는 금장, 외벽에 빈 공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만큼 빼곡히 들어찬
크고작은 성화들 등등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보유줄 수 있는 화려함의 끝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딘가 닮은 겉모습과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모스크바의 '그 성당'과 확연히 다르긴 한데...
일단 그 이야기는 모스크바에서 하기로 하고, 내부의 화려함도 외부에 전혀 밀리지 않는군요.
...아니 한 술 더 떠서, 가까이 다가가보면 내부를 빈틈없이 채운 이 성화들이 모두 모자이크!?
믿기지 않지만 그러하댑니다. 총 면적이 약 7,500제곱미터로 성당 모자이크로는 세계 최대라고.

이 성당은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를 받아 피를 흘린 자리에,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암살 2년 뒤인 1883년 착공하여 알렉산드르 3세 대에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24년
뒤인 1907년, 니콜라이 2세 대에 이르러 완공되었죠. 바로크나 신고전주의 양식이 주류를 이루던
제국의 다른 성당들과 달리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같은 러시아 중세 양식으로 설계한 이는
영국계 러시아 건축가 알프레드 파를란드(Альфред Александрович Парланд)입니다.

성전의 한 켠에는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흘렸던 그 자리를 이렇게 치장해 두었습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명군 대접을 받는 알렉산드르 2세가, 본인이 테러당한 곳에 이렇게 엄청난 성당이
세워진 걸 알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물론 지금이야 훌륭한 문화재로 남았지만
당시 이 성당을 건축하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돈이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데 일조했을테니까요.

하여간 제가 갔던 날 성당 주변을 통제하는데다 사이에 끼여 꼼짝도 못할 만큼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걸 뚫고 성당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그 이유인즉 성당 뒤 광장에서 월드컵 본선의
러시아 경기를 거리 중계했기 때문에..--;; 아니 뭐 맥주 들고 으쌰으쌰 소리지르며 재미있긴 했죠.
2002년에 서울 관광왔던 외국인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으면서. ^^

성당에서 운하를 따라 넵스키 대로로 내려오면 오래된 서점이자 아르누보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한 돔 끄니기(Дом Книги)가 있고...

그 넵스키 대로 맞은편 널찍한 공원의 뒤에,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워진 카잔 대성당
(Каза́нский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원을 감싸듯 좌우로 둥글게 뻗은 거대한 반원형 회랑...을 보면 바로 생각나는게 있죠?
넵. 건축가인 안드레이 보로니킨(Андрей Воронихин)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모델로 삼아
이 성당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총본산을 닮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그것도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복판에 짓는 것에 대해 당시 반대가 많았다고. 지금 봐도 납득은 잘..--;;

사실상 박물관이자 관광지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다른 유명 성당들과 달리 카잔 대성당은 실제로
정교회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이어서 내부 촬영 불가인지라 위키피디아의 사진을 빌려왔습니다.
지나친 장식 없이, 넓고 높은 공간이 적당히 어두워 엄숙한 분위기를 내는 것마저 바티칸을 닮았죠.

제가 갔을 때도 무언가를 참배하기 위해 한 켠에 이렇게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성당의 이름 그대로, '카잔의 성모' 이콘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본일지라도 말이죠.
아마도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기있는 이콘 중 하나일 이 카잔의 성모는 13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카잔으로 옮겨왔다고 전해지며 여러 전설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전설이 많은데, 그 중 최근의 경우가 나폴레옹 전쟁이었죠.
성당 봉헌 1년 뒤 발발한 전쟁에 출전하기 전 러시아군 사령관 미하일 쿠투조프는 성당을 찾아
가호와 승리를 빌었고, 실제로 전쟁에 승리하면서 카잔의 성모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성당의 좌우 회랑 양 끝에는 쿠투조프(왼쪽)와 함께 전쟁 서반에 러시아군을 지휘했던
바클라이 드 톨리(오른쪽)의 동상이 있구요. 이름에서 보듯 외국계 이민자 출신에다 전쟁 초반의
폭풍 퇴각으로 경질되는 등 고생이 많았지만 그래도 과연 승장이란 좋은 것이로군요~

처음 성당에 들어설 때 아무리 봐도 군인으로 보이는구만 왜 성당 앞에 이런 동상이? 라는 의문에
떠듬떠듬 간신히나마 키릴 문자를 읽어 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 역시 사람은 배우고 볼 일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또다른 성당 두 곳은 다음에 이어집니다. ^^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上)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下)
극동 러시아의 정교회 성당들
헬싱키 대성당과 우스펜스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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