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이사악 대성당과 페트로파블롭스키 성당을 돌아본 뒤 요새의 동쪽 다리를 건너왔습니다.
그나저나 배들이 참 많죠? 지리적으로 발트해와 네바강을 끼고 있는데다 원래가 늪지대를 메워
건설한 도시인만큼 강줄기도 많고 운하도 많고 배도 많고... 그래요. 그리고 모기도 많구요. -ㅁ-

네바강을 북안을 따라 동쪽으로 300 미터 쯤 걷다보면 도시 건설 당시 표트르 대제가 살았다는
오두막! ...이라기보다 작은 집이 있고,

300미터 정도 더 걸어가 네바강의 강줄기가 나뉘는 곳에서 큼지막한 군함을 만나게 되니,
박물관으로 보존되어있는 팔라다급 순양함 오로라(또는 아브로라; Аврора) 입니다.

물론 그럴만한 함생을 살았으니 보존된 거겠죠? 보시다시피 나이가 좀 되는 할머님이신건 확실!
이 오로라 할머님은 190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에 참전하였다가 학살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1차 세계대전에도 뛰어들었다가 혁명에 휘말려 페트로그라드(당시)의 겨울 궁전을 향해 포격
(비록 공포라도)을 가한 배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기록적인 발육(?)을 자랑하던 시기에
나이는 거스를 수 없어 훈련함으로 사용되며 점차 은퇴를 생각하던 차에...

2차 대전이 발발! 물밀듯 밀려오는 나치 독일의 군세에 맞서 레닌그라드(당시)를 방어하다
포격을 맞아 절반쯤 가라앉게 되었음에도 끝까지 기세를 잃지 않고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등
정말 뜨겁게 사신 할머님! 이쯤이면 기념함으로 보존할 만하잖아요? (포템킨 지못미;;)
그녀의 행적 중 아무래도 1917년의 혁명 때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 그 시기의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복원되고 내부는 박물관이 되었는데... 제 동선과 시간을 도무지 맞출 수가
없어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런던도, 블라디보스토크도, 얼마전의 헬싱키도 그랬는데
어째서인지 저는 잠수함에는 모두 들어가보고 수상함에는 모두 못들어가는 징크스가..ㅠㅠ

이제 웅장한 트로이츠키 다리를 건너 다시 네바강 남쪽으로 건너옵니다.

겨울 궁전 옆 운하를 운치있게 헤쳐나가는 유람선들. 저걸 타봐야 되겠죠?

강도 많고 수요도 많다보니 배를 운행하는 회사도 많고 다니는 코스도 정말 다양합니다.
저는 좀 쉬다 숙소 근처의, 말 조련사 동상으로 유명한 아니치코프 다리에서 출발하는걸 탔죠.

배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규격(?)은 모두 같은데, 낮고 넓으며 앞쪽은 선실 뒷쪽은 개방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형식이 되었는고 하니...

운하에 놓인 다리들이 무척 낮거든요. 배에 앉아서 손만 뻗어도 닿을 정도니까 뭐.
그래서 미처 다리가 가까워진걸 알지 못하고 풍경에 정신이 팔려 뒤돌아 서있다가는 안전사고
(라고는 해도 십중팔구 즉사겠지)를 당할 위험이 큽니다. 제가 탄 배에서도 그럴 뻔한 아줌마를
안전 요원이 뛰어들어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죠. =ㅁ=

유독 더운 해의 6월 말이었지만 밤 10시를 넘긴 시각,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강바람은 찹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안에서 담요를 꺼내오고, 뒤의 만취한 러시아 언니 둘은 코를 골기 시작하고;;
그래도 배를 타고 돌아보는 다른 나라의 도시만큼 이국적인 경험도 없죠? 여긴 로모노소바 다리.

이곳은 성 니콜라스 해군 성당인 듯. 로마도 아니고 대체 성당이 몇개나 있는 거냐~

낮에 들렀던 성 이사악 대성당의 돔과 그를 바라보는 니콜라이 1세의 동상이 빛납니다.

그리고 아까 지나쳐왔던 에르미타주 다리를 통해 네바강으로 나가는데... 기막히게 일몰이네요!

자정 넘어 야경 투어는 스케줄상 도저히 각이 안나오니 일몰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싶긴 했지만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 위로 해가 넘어가는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ㅠㅠ

저녁에 건너갔던 트로이츠키 다리를 이번에는 아래로 지나...

다시 운하로 들어가려는데, 해가 진 반대편에서 이번에는 보름달이 떠오르네요. 으헝헝~ ㅠㅠ
오른쪽의 반짝이는 건물과 숲은 마르스 광장과 이웃한 여름 정원.

자정이 가까워지고 뒤늦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며 강과 운하의 짧은 여행도 이렇게 끝납니다.
...하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上)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下)
피의 구원 성당과 카잔 대성당
성 이사악 대성당과 페트로파블롭스키 성당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