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싱키를 시작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드디어 붉은 제국의 심장, 모스크바에 왔습니닷.
기차를 내린 이곳은 레닌그라드 역. 러시아는 연결된 열차 노선의 종착지가 역 이름으로 붙기에
여기에서 타고 내리는 열차는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옆에는 또 하나의 역,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점인 야로슬라블 역이 있습니다.
어째 낯이 익다 싶더니 작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았던 기차역과 아주 흡사한 생김새네요.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일부러 이 역과 닮게 지었다고 합니다.

레닌그라드 역과 야로슬라블 역, 그리고 길 건너편의 카잔 역(아마도 이 사진을 찍은 곳)까지
콤소몰스카야 광장 주변에 주요 기차역 세 곳이 붙어 말 그대로 철도 교통의 요지가 됩니다.
사진의 두 역 사이 무슨 판테온 마냥 돔형 지붕을 가진 화려한 건물은 통합 관제 센터! 가 아니라
그 유명한 모스크바 지하철의 콤소몰스카야 역인데, 음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게 되겠죠?

이제 역을 나와 드디어 모스크바에 왔다는 감격(?)에 젖어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니...
유럽 여느 대도시의 구도심처럼 비교적 높지 않은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유달리 높이 치솟은 두 빌딩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게다가 둘 모두 꼭대기의 첨탑에는 붉은 별이?
아아, 이것은 필시 그 자매렸다!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보게 될 줄이야..;;

1930년대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이른바 '소비에트 궁전'이라는 초대형 건축물을 기획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소련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써 100개 층에다 초대형 레닌 동상 포함 높이 495 미터라는
(당시 최고층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381 미터) 그야말로 압도적인 건물로 설계되었으나
기초 공사만 수 년째 하던 도중 독소전쟁이 발발하여 건설은 백지화되고 자재는 전쟁에 동원되었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스탈린의 소련은 수도 모스크바가 (특히 뉴욕에 비해)
초라해 보인다며, 미국과 자본주의에 질 수 없다며 소비에트 궁전같은 무모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합리적인(...) 크기의 마천루 건설을 지시했습니다. 그리하여 1947년부터 1953년까지
러시아 바로크에 미국식 고층 빌딩을 결합한 이른바 '스탈린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바의 마천루
일곱 동을 '(모스크바 또는 스탈린의) 일곱 자매'라 부릅니다.

레닌그라드 역 앞의 레닌그라드스카야 호텔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으로 고작 17개 층에
136 미터에 불과(...)하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닮은 그 위용은 뭐 보다시피;;; 당시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화려한 호텔임이 분명하나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며 2008년에는 힐튼 체인에 가입,
현재 정식 이름은 '힐튼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스카야'가 되었다는게 정말 아이러니로군요.

레닌그라드스카야 호텔 왼편 뒤로 보이던 건물은 붉은 문(레드 게이트) 빌딩입니다. 이 이름은
빌딩의 위치가 과거 붉은 개선문이 있던 붉은 문 광장에 있기 때문이긴 한데 어쨌든 빌딩의 현관도
붉게 칠하긴 했군요? 좌우 옆으로 달린 비교적 작은 두 동은 아파트라고. 중앙 타워는 24개 층에
138 미터 높이로 소련 시절 중공업건설부를 거쳐 현재 러시아 교통건설부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건물을 멀리서 훑어보고는 짐을 들고 숙소로 향했는데... 강을 건너는 버스의 차창에
더욱 어마어마한 건물, 코텔니체스카야 제방 빌딩이 보이더라구요. 게다가 숙소 바로 앞이야--;;
정말 동네 어디에서나 저 거대한 흰색 벽과 번쩍이는 별이 보입니다. 이거 인민 감시탑이었나??

저는 아직 뉴욕에 못가봐서, 구시대 마천루를 코앞에서 올려다보는 경험은 상상 초월이더라구요.
게다가 이 건물은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높이보다 훨씬 긴 좌우 날개 건물을 가지고 있는지라.
게다가x2 26개 층 176 미터의 이 거대한 건물이 행정이 아닌 거주 용도라는데서 다시 한 번 깜놀.

며칠 뒤 모스크바의 번화가인 아르바트 거리를 찾았을 때,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보니
왼편으로 지나가는 건물들 뒤로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더라구요. 아아, 또 만났구나..;;;

아르바트 거리 서쪽 끝에 위치한 이것은 러시아 외무부 건물입니다. 칠공주 중에서 보는걸 넘어
직접 외벽을 만져본 것은 이 건물이 유일했군요. 안으로 들어가볼까도 했지만 아무래도 러시아
정부 건물이라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니(?) 자제자제. 뾰족한 장식이 많이 붙어 고딕 색채가 강한
교통건설부(레드 게이트)와 다르게 비교적 매끈하고 단단한 인상이 느껴집니다.

제가 직접 본 것은 위의 넷 까지이므로 나머지 셋은 위키에서 빌려온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높이로 보나 연면적으로 보나 일곱 자매의 장녀라면 단연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본관이겠죠.
36개 층에 240 미터 높이의 위용은 한동안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이기도 했고, 지금도 교육
기관으로는 최고 높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건물에 어울리는 넓은 캠퍼스와 공원을 끼고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는데 시내 중심가에서 좀 떨어져있다보니 시간 빠듯한 누군가에겐.. ;ㅁ;

일곱 자매의 두 번째 장신은 러시아 외무부 빌딩의 강 건너편, 206 미터의 우크라이나 호텔입니다.
특급 호텔로 지어진 것은 레닌그라드스카야 호텔과 같지만 아무래도 규모는 남다를 수밖에 없죠.
505 개의 객실에 38 개의 아파트, 5 개의 레스토랑, 전용 요트 선착장까지 갖추었다고.
현재는 미국 자본이 유입되어 래디슨 로얄 호텔이 된 것은 레닌그라드스카야 호텔과 같은 운명?

거의 동시에 착공한 일곱 자매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것은 쿠드린스카야 광장 빌딩입니다.
일곱 동 중 주거 용도였던 두 빌딩 중 하나인데, 다른 하나인 코텔니체스카야 빌딩이 좌우로 팔을
넓게 펼쳤다면 쿠드린스카야 빌딩은 그걸 접어올린듯 우람한 어깨를 자랑하고 있군요.
중앙 타워는 24개 층에 높이 156 미터. 코텔니체스카야엔 예술가들이, 쿠드린스카야에는 높으신
분들이 거주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로 부자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라나.

아무래도 코텔니체스카야 빌딩은 숙소 앞이다보니 낮이고 밤이고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야경은 또 다른 의미로 엄청나더라구요. 안그래도 크고 아름다운데 저런 조명이라니;;
게다가 맨 위에서 빛나는 붉은 별의 위용은;;; 이것이 전성기 붉은 제국의 힘인가~ -ㅂ-

이 건물들이 한창 막바지 공사 중이었을 1953년 초, 스탈린은 결국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원래 계획되었던 여덟 번째 건물은 후계자 흐루쇼프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뭐 우리말 어감상 팔공주(...)보다는 칠공주가 나으니 별 상관없나요? 아닌가^^;?
비록 시작은 소련과 스탈린의 미국에 대한 열폭의 표현이자 강력한 폐쇄 사회의 상징이었지만
이제와서는 모스크바의 랜드마크이자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는, 역사에 흔히 있는 얘기죠.
모스크바의 일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上)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下)
피의 구원 성당과 카잔 대성당
성 이사악 대성당과 페트로파블롭스키 성당
오로라와 크루즈를
대륙의 분수 궁전, 페테르고프
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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