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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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에이드, 랩소디 by glasmoon


PC 통신의 전성기를 지나 인터넷이 도입되었으나 아직 충분히 발전하고 보급되지는 않았던,
사진 한 장 받는데도 몇 분이 걸려 지금과 같은 동영상 공유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90년대 초.
그래서 정식 경로로는 유통되지 않는 라이브 영상이나 뮤직 비디오가 무척이나 귀했던 그 시대,
록 관련 동아리나 소모임마다 각기 보유했던, 수십 수백번을 돌려 음질도 화질도 너덜너덜했던
해적판 복사 VHS 테이프들 중에 특별히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 것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당대의 유명 뮤지션과 밴드들이 총출동했던 1992년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
그리고 또 하나가 그 프레디 머큐리와 퀸이 최고조의 기량을 선보인 1985년 라이브 에이드였다.


미리 밝히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밴드로서의 퀸, 보컬리스트로서의 프레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클래식 음악이 지긋지긋하여 록으로 탈출했던 나에게 퀸의 음악은 너무나 클래식 지향이었고
더욱 무겁고 더욱 빠른 음악을 추구하던 혈기와 취향에 퀸의 사운드는 너무나 밝고 가벼웠으며
같은 맥락에서 거친 브루탈 창법으로 치닫던 시대에 프레디의 목소리는 너무나 높고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역시 미성을 자랑하는 존 앤더슨과 예스처럼 꽉 짜여진 사운드를 구축한 것도 아니고,
거의 매 앨범마다 심하면 매 곡마다 색깔이 다른 이들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 애시당초 이들의 음악이 팝이나 합창곡(...)이 아닌 밴드 음악이긴 한 건가??
그래도 퀸은 정말로 히트곡이 많았고, 그 중 대부분이 국내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으며,
음악을 함께하던 동료들도 그들의 곡을 좋아했기에, 나도 함께 그 곡들을 왕왕 연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음으로 즐긴 적은 거의 없었고 내가 퀸을 좋아하게 될 날은 결코 오지 않을거라 여겼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물론 프레디와 퀸과 그들의 음악이 가진 위상은 결코 변함이 없었고
그 사이 프레디와 함께 'Under pressure'를 만들었던, 영원히 살 것만 같았던 데이빗 보위와
추모 공연에서 'Somebody to love'를 기막히게 불렀던 조지 마이클도 프레디의 곁으로 떠났다.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찍었다.

비록 온전히 끝맺지 못하고 해고당하긴 했어도, 싱어가 퀸과 프레디의 팬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어떻게 보면 싱어와 이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지막 20분간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퀸의 공연을
소리 하나 손짓 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는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로 인해 전기 영화인지
음악 영화인지 모호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감수해야 했지만, 팬들에게 이보다 더 감동적인
영상과 연출은 없었으리라. 팬이 아니라 자부하는(?) 누구마저 울림을 느낄 정도였으니.

집에 돌아와 TV의 유튜브 채널로 라이브 에이드와 추모 콘서트를 찾는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희미한 조각들이 최신 기술의 힘으로 복원되며 세상 좋아졌다는 노친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CD 장을 열어 연습때문에 샀던 그들의 유이한 음반, "Greatest Hits" I과 II를 꺼내어 걸어본다.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퀸의 음악이 변했을 리는 없다. 어렸을 때의 내가 편협했을 뿐.
이것은 록의 어떤 하위 장르나 정형화된 밴드 사운드가 아니라 그저 네 명 퀸의 음악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고집세고 더디며 둔한 누군가는 이십 하고도 수 년이 걸려 알게 되었다.

덧글

  • 허벌( ̄3 ̄)y━・~~ 2018/11/09 20:17 # 삭제 답글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이 꼭 딱딱해 지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젊은 혈기의 편협함을 벗어가는 것도 시간의 효용중 하나 더군요. 여긴 아직 구 영화가 극장에 안걸려서 기다리고 있슴당.
  • glasmoon 2018/11/12 16:35 #

    시간적인 거리감(?)이 쌓여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걸지도 모르죠. ^^;
    개봉이 늦는걸 보니 일본에 계신가 보네요. 재미있게 보세요~
  • 2018/11/12 19: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1/13 14: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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