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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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의 얼굴들 by glasmoon

모스크바의 칠공주


이제 본격적으로 모스크바를 돌아볼 참입니다만, 역시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명소라면
크렘린부터 성 바실리 성당, 레닌 묘 등등이 가득 모인 붉은 광장이겠죠?



지하철을 내려 트베르스카야 대로를 따라 내려오니 모스크바 시청 건너편 트베르스카야 광장에서
모스크바의 창건자로 알려진 유리 돌고루키(Юрий Долгорукий)의 기마상을 만납니다.
역사적 맥락으로 보자면 모스크바를 세웠다기보다는 키예프 대공국의 분열기 이 일대를 영지로
받으면서 슬라브계의 영향권에 편입했다는게 맞는 건지도 모르지만 유리 돌고루키가 모스크바
대공국의 전신인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시초이기도 하니 이래저래 원조(?)임은 확실합니다?
밀덕이라면 러시아의 최신 잠수함인 보레이급 1번함의 함명으로 기억하는 분도 계시겠군요.
참고로 보레이급의 2번함은 그의 후손이자 러시아 최고의 영웅인 알렉산드르 넵스키.



유리 돌고루키의 동상 뒤, 광장의 동편 끝에는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의 좌상도 있습니다마는
위치로나 크기로나 그다지 눈에 띄는 건 아니로군요. 하긴 눈에 띄는 수준이었으면 소련 해체기에
진작 끌어내려지거나 박살이 나거나 목이 잘리거나 수난을 겪었겠지만서도. ^^;



대로를 따라 계속 내려오면 모스크바 예술극장으로 통하는 카메르게르스키 골목의 입구에서
또다시 두 명의 입상을 만납니다. 주인공은 사실주의적 연기 이론을 주창한 연출가 겸 배우이자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창립자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Константи́н Станисла́вский)와
그의 선배이자 동료였던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Владимир Немирович-Данченко).



이 골목이 톨스토이나 차이콥스키 등 모스크바의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고,
혁명기에 살았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Серге́й Проко́фьев)의
집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집 앞에는 역시 그의 모습을 한 동상이 서있군요.
여담으로 소련 정부에 의해 많은 간섭을 받았던 프로코피예프와 그를 뒤에서 괴롭혔던 스탈린이
같은 날(1953년 3월 5일) 사망하는 바람에 각종 기사는 물론 조문객, 심지어 장례에 쓸 꽃까지
몽땅 스탈린 쪽에 쏠려 프로코피예프의 죽음은 완전히 묻혔다는 안습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곳 프로코피예프의 집과 스탈린의 초대형 장례가 열린 붉은 광장이 매우 가까운데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깔려 죽을만큼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였기에 운구 행렬마저 한참 돌아나가야 했다고;;



골목의 끝에서 남쪽으로 대로를 향해 내려오면 이 거리의 얼굴 마담, 볼쇼이 극장을 만납니다.
제가 발레를 비롯한 춤 쪽으로는 조예는 커녕 상식도 부족하기에 큰 감흥은 없지만서도. ^^;



볼쇼이 극장 앞으로 대로 건너편 혁명 광장에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흉상이 있군요.
기단에 새겨진 문구는 그가 쓴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러시아 혁명의 이론적 토대는 마르크스가 세웠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긴 주인공은 레닌이었기에
다행히 신격화는 피했고(?) 러시아에서 제가 본 마르크스의 상도 이것이 유일합니다.
뭐 마르크스나 레닌이나 과거 우리나라에서 입밖에 낼 수도 없는 이름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제 붉은 광장이 코앞이로군요. 혁명 광장에서 남쪽으로 걸어가자니 어딘가 낯익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게오르기 주코프(Гео́ргий Жу́ков)의 거대하고 당당한 기마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4중 영웅 칭호에 빛나는 명장이자 대조국전쟁시 사실상의 최고 지휘관이며 전쟁 전후 권력 교체기
마다 휘몰아친 대숙청의 소용돌이에서도 일시적인 굴욕은 있을지언정 끝까지 살아남은 최강자...
라는 구질구질한 설명은 필요없겠죠?



주코프 기마상이 바라보는 이 널찍한 광장이 붉은 광장! ...은 아니고, 마네쥐 광장입니다.
기마상 뒤편, 전쟁 박물관과 국립 역사 박물관 사이를 통해 붉은 광장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날씨도 환상적이고 하늘도 푸르고 좋아 가자! 했는데...



팬스와 검색대로 빙 둘러싸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왜? 어째서?? 월드컵 때문인가???
경찰에게 손짓 발짓 섞어가며 짧은 영어로 물어봐도 알아듣는것 같지도 않고 무조건 모른다고만;;
지금 아니면 몇시에 여냐고? 몰라! 열긴 여는거야? 몰라! 아니 이쁘장한 러시아 경찰 언니면 다야
그럼 너 거기에 왜 서있는거니... TㅁT



일단 아침도 먹을 겸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허기를 달래며 새로운 작전을 모색합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문 연 곳을 찾는데도 한참 걸렸네요. 대충 손가락으로 찍어 주문한 거라
제가 먹은게 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맛은 꽤 좋았던 걸로 기억되지만서도.



이렇게 배를 채우며 지도를 들여다본 끝에, 마네쥐 광장에서 건물 하나 안쪽인 니콜스카야 거리를
통해 다시 접근해보기로 합니다. 찾느라 먹느라 한 시간쯤 보냈더니 그새 인파가 많이 늘었군요.



그러나 여기도 차단! orz 하긴 관광객이 지도로 찾는 길을 현지 경찰이 놓칠 리는 없는 건가.
그래도 난 저기를 들어가봐야 한다구! 모스크바 와서 붉은 광장에 못가는게 말이나 되냐!?
그렇게 망연자실한 와중에 깃발을 든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옆으로 지나갑니다?
눈치가 어째 저 가이드는 뭔가 알 것같은 기분? 저 사람들도 이렇게 허탕만 칠 건 아니잖아??



그래서 광장 북동면의 굼 백화점을 크게 빙 돌아, 광장의 남쪽 끝으로 왔습니다.
물론 여기도 차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말이 좀 통하는 경관이 있었고, 이쪽 블록은 얼마 후에
연다고 하더라구요. 아아 중국 아저씨 아줌마들 고맙습니다. 짱깨라고 부를거 한 번은 참을게요.



그리하여 한 삼십 분 남짓을 더 기다려, 드디어 붉은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이렇게 텅 빈 광장에
들어와본 한국 관광객이 또 있을까!? 왼편의 길고 붉은 벽 뒤가 크렘린, 그 끝의 오른편에 솟은
붉은 성채같은 건물이 역사 박물관, 노른편의 녹색 지붕을 가진 긴 건물이 굼 백화점입니다.



등 뒤로는 크렘린의 입구 중 하나인 스파스카야 탑과 종종 크렘린으로 오해받는 명실상부한
테트리스 모스크바의 마스코트, 성 바실리 성당.

사실 우리말로 붉은 광장, 영어로 Red Square가 되지만 원래 이름인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에서
Кра́сная(크라스나야)라는 단어는 중세에 '붉은' 외에 '아름다운'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렘린의 저 벽이 하얗게 칠해졌던 시기도 있었고, 저 탑들과 성 바실리 성당의 모습이야 더할 나위
없으므로 원래 의미는 '아름다운 광장'이었던 거죠. 그러나 현대 러시아어로 오면서 단어의 의미가
축소된데다 붉은색을 상징으로 하는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소련의 성립이 겹치며 빼도박도 못하고
'붉은 광장'이 되어버렸다는, 언어와 역사가 공교롭게도 얽힌 이름입니다.



일단 먼저 북쪽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또다시 펜스에 막혀 이 이상은 다가갈 수가 없네요.
눈치를 보니 이 구역은 오후에 있을 월드컵 거리 응원을 위해 테러 보안상 통제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서도, 바로 왼편에 보이는 레닌의 묘도, 그 뒤로 크렘린의 벽을 따라
줄지어있을 수많은 연방 영웅들의 무덤도 보지 못한다니! 유리 가가린!! 코롤료프 선생님!!! TㅁT



성 바실리 성당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빼고, 오후에는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에 들렀다,
밤에 숙소로 들어가면서 다시 야경을 보러 들렀습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말을 달리고 있는 주코프 원수.



아침에는 통과하지 못했던 부활의 문.



부활의 문 앞 바닥에는 러시아의 도로 기준점을 알리는 청동판이 있는데, 그 앞에서 등 뒤로
동전을 던지면 행운이 온다나 뭐 그런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에요. 근데 웬 러시아 아저씨가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는 족족 기다란 집게(??)로 집어 담더라는? 국가의 일을 하는건가??



역사 박물관도 조명이 들어오니 정말 멋지네요.



축구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장소와 사람들. 여기에서 러시아 월드컵 전 경기를 중계했다니,
하루만 빨리 왔어도 제가 붉은 광장에서 전세계 사람들과 한국-독일 경기를 볼 수 있었을텐데요.
아쉽 아쉽~~



안그래도 거리와 기분에 취하는데 크렘린과 성 바실리 성당 사이로 보름달까지 떠오르니 이건 뭐~
제가 어릴적 TV에서 보았던, 전차들과 미사일들이 행진하던 공포의 광장은 이런게 아니었구만
역시 이 광장은 '붉은 광장'이면서 또한 '아름다운 광장'이었던 겁니다.

이제 시작한 모스크바 여행기, 다음은 아까 건너뛴 성 바실리 성당으로~ ^^


모스크바의 칠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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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8/12/11 15:02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12월 11일 줌(http://zum.com) 메인의 [핫토픽]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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