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아이언맨 시리즈의 블루레이 박스 세트를 인증한 바 있지만
사실 DVD 시절 MCU 작품들 중에 처음으로 소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미와 흥행과 양면에서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는 "토르" 시리즈의 1편이었습니다.

간만에 다시 돌려보니 MCU의 높은 기준에서 본다면 (DC 기준이라면 중박 이상이겠지만ㅠㅠ)
"토르" 1편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이 신이라서 그런가 이야기의
골격은 전형적인 영웅 신화에 다름 아니고, 거기에 지구에서의 소동극이 살짝 섞인 수준이죠.
액션이라도 잘 뽑혀나왔으면 또 모르지만 초반의 요툰헤임 전투는 그저 맛보기일 뿐이었고
정작 중요한 클라이막스인 대 디스트로이어 전투는 서로 귀엽게(...) 몇 번 툭탁툭탁 하다 끝.
감독으로 셰익스피어 덕후인 케네스 브래너를 기용한 것은 액션보다 신화에 어울리는 진중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도였을텐데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 장점을 죽이고 단점을 드러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그 와중에서도 다른 히어로 영화에는 없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하나 멋지게 건져올렸습니다. 바로 복잡한 면모를 가진 개성적인 캐릭터, 로키였죠.
형에게의 열등감, 힘으로의 욕망,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다 타고난 냉소와 장난 등등이 얽힌
이 유례없는 인물은 톰 히들스턴이라는 탁월한 캐스팅과 케네스 브래너의 공들인 표현에 힘입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완성되었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나 형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다
비밀을 알게 되면서 흑화하여 전복을 도모하였으나 실패, 죽음과 부활이라는 의식을 거치며
진정한 악의 신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이 제가 끌린 "토르" 1편의 골자였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2편 "다크 월드"는 -비록 내용상 "어벤져스"를 사이에 끼긴 했지만- 매우 흡족한
속편이었습니다. 1편에서의 갈등 구조가 건재한 위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요소까지 얹어졌고
아스가르드 본국이 침공당하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공통의 목적을 위해 형제가 손을 잡았으되
티격태격하는 환상 캐미 속에 언제 뒷통수를 후려갈길지 알 수 없다는 묘한 긴장감이 내내 흐릅니다.
악역 다크 엘프의 존재감이 없는 거야 MCU의 전통인데다 진 빌런(?)은 따로 있으니 그렇다 치고,
전우주의 강국이라면서 전함 한 척에 본진이 털리는 거야 이야기 전개를 위한 밸런스 패치라 치면,
어디까지나 로키와 그 주변 관계에 집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영화였죠.
그러나 이들 두 편의 영화가 마블 작품 치고는 성적이 영 신통찮았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 결과 삼부작의 마지막 "라그나로크"에는 극약 처방이 내려져 강대한 숙적 헬라가 등장하고
수르트에 의해 아스가르드가 멸망한다는 핵심만 제외하고 바꿔~ 모두 다 바꿔~ 가 되어버렸죠.
종말론적인 암울한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화려한 색감과 유치뽕 경쾌한 음악 아래 일신되어
상징적인 토르의 긴 머리는 싹둑, 형제와 헤임달을 제외한 기존 아스가르드 인물들은 모조리 퇴장,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 이는 술고래 여전사, 그걸로 부족해서 헐크와 닥터 스트레인지가 알바 뛰는
대격변의 전개! 아니 뭐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었어요...라기보다 객관적으로 재미는 훨씬 좋아졌죠?
"토르"의 색채에서 벗어나 "가오갤" 스러운 분위기가 되어버려 그렇지. (이때 이미 염두를 뒀었나;;)
하지만 로키 중심적 관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로키가 더이상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거였죠.
헬라는 너무도 강력하여 무언가 꾸밀 여지가 없고 이야기의 초점은 토르의 자력갱생에 있다보니
순식간에 조연 개그캐로 전락해버리는 로키. 당연히 맛깔나게 뒷통수를 후리는 장면도 없고..ㅠㅠ
분명히 재미가 있고 흥행에도 성공했으며 인피니티 사가의 전체적 맥락에서는 잘 들어맞았지만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써 파멸해가는 아스가르드를 배경으로 토르와 로키의 오랜 애증의 관계에
종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락을 짓는 장엄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누군가는 실망할 밖에요.
예상과 달리 로키의 인기가 워낙 높아져 함부로 어찌할 수 없게 되었나보다며 기껏 위로했더니
이어지는 "인피니티 워" 초반부에서 바로 퇴장!? 고작 이렇게 하려고 남겨둔거야??
물론 언제나 그러했듯 어디에서 다시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아놔~~

뭔가 하소연이 길어졌는데, 결론인즉 인피니티 사가 3대 주인공인 세 인물의 삼부작 세 시리즈를
결국 모두 소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최근까지 블루레이를 외면하던 사람이 이래도 되는건지.
이 셋 중에서라면, "라그나로크"만 취향에 맞았다면 토르 삼부작이 두고두고 기억할만 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현실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캡틴 아메리카 삼부작이 되겠네요.
어쨌든 이렇게 블루레이는 소장했지만 전 어릴적부터 DC 파이지 마블의 팬은 아니라구요!
...설득력이 없나요? orz
미국의 이상과 현실
그는 어떻게 무기 제조를 그만두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나
덧글
지금은 검색해보니 셋 다 품절인데.;; 알았다면 진작에 갈아탔을 텐데, 아쉽네요.
오늘도 그래24에서 한 세트 할인 판매 중이네요~
공돌이는 이렇게 살다 이렇게 죽는다 - 3부작
장난의 신과 거기 놀아나는 병ㅅ... - 3부작
(그 와중에 배트맨 배역이 바뀌었더군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DC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