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처럼의 계획 아래 전라 지역의 성당 여덟 곳을 답사하며 찍은 사진 일백 수십여 장을 날린 뒤
며칠 걸려 마음을 비워내고(...) 용산의 새남터 성지를 찾았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이라는 용산, 그것도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긴 한데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강변북로와 철도(한강철교), 이촌고가도로로 포위되다시피한 지역이라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의외로 발견하기 쉽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신자분이라면 한 번씩 가보셨겠지만서도.

성당 정면 앞을 이촌고가도로가 막고 있어 올려보기가 쉽지 않은 성당 전면부.

조선 초기부터 중죄인들의 처형장이었던 새남터는 박해 시기 사제들이 주로 처형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사제인 중국인 주문모 이후 총 11명의 신부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도 있었죠.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면면이 워낙 그러하다보니 일찌감치 순교 기념지로 지정되었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에 즈음하여 기념 성당이 계획되어 1987년 완공 후 봉헌되었습니다.
박태연 씨가 설계한 성당 건물은 안팎으로 한국적인 미를 강조하였는데, 겹겹이 쌓여 올라간
지붕 처마나 옆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이 마치 경주의 대형 사찰처럼 보이죠?

고가도로와 높이가 같아진 2층에서는 그 너머 북쪽으로 용산을 지나 남산까지 한 눈에 보입니다.
용산차량사업소 부지를 계속 저렇게 내버려두진 않을테니 언젠가는 시야가 막히겠군요.

한식 양식을 차용하였기 때문에 단청이 칠해지거나 하진 않았어도 성전 내부는 크고 화려합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된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감한 십자고상과 함께,
반원형으로 파고 들어간 제대 후면 등은 확실히 경주 일대의 사찰과 암자들을 참고한 걸지도?

제대 좌우로는 순교자들을 묘사한 대형 부조가 벽면을 채우고 있는데
왼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89위 성인상, 그리고 순교자 여덟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성모자와 14위 성인상,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부조를 제작한 방오석 화백은 작년 여름 선종하시어 이곳에서 장례 미사가 봉헌되었다고.

1층에는 소성당과 함께 여러 유물 및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처형터를 재현한 이 종이
공예는 고증이 다소 어긋나 있지만 '처형'이라는 이제는 생소한 분위기만큼은 전해지는군요.

다시 밖으로 나와 종탑을 올려다봅니다. 처음부터 뭔가 묘한 기시감이 든다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일본성들에 있는 천수각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국내의 전통 건축물 중에는
지붕 위에 탑을 올린 경우가 거의 없어서인지도.

안뜰 한 쪽에 있는, 역시나 한국미 가득한 성모자상과 그 왼편의 주문모 신부 흉상.

성당 바깥의 철로변 차음벽에도 이곳에서 순교하신 열 두 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외 여러 사제들이 순교한 곳이라는 중요한 의미와 함께
그 건물과 미술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한껏 반영한 새남터 성지 성당이었습니다.
다음 차례는 필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미리내 성지가 되겠네요.
성당 여행; 당진 솔뫼성지성당
성당 여행; 익산 나바위성당
덧글
했는데 내려서 보니 공냉이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