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glasmoon.egloos.com

포토로그



성당 여행 #081 서울 절두산성지성당 by glasmoon



거리가 가까우면 오히려 방문이 계속 미뤄지는 그런거 있죠? 볕이 좋았던 지난 주 어느 날,
마포구청 쪽에 일이 있어 나갔다가 더이상 미룰수 없다는 생각에 절두산 성지를 찾았습니다.



'머리 자르는 산'이라는 이름의 이 곳은 사실 산이라기보다 한강변에 돌출한 바위 정도였으나
병인박해 당시 신자들 수백 명을 참수하여 강물에 던져넣는 식으로 처형함으로써 악명을 떨쳐
지금과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된 걸로 유명합니다. 지난번 새남터 성지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탁 트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강변도로와 다리들에 포위되어 접근성이 좋지 못하므로
합정역에서 조금 걸어가던가, 자동차라면 내비게이션을 잘 보고 따라가던가 해야 하는데
의외로 자전거로 가는게 가장 편하더라구요. 강변 전용 도로에서 계단만 하나 올라가면 끝.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름과 함께 서울/경기권에서 워낙 유명한 성지이다보니
울창한 숲처럼 매우 잘 조성되었고 또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은 물론이거니와



너른 부지 곳곳에서 종교 조형물도 매우 많이 발견할 수 있죠. 80년대 방한 당시 이곳을 직접
찾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던가 테레사 수녀 외 실존 인물, 성인 성녀의 흉상도 많구요.



그리고 이 성지의 한가운데에, 직사각형의 잔디밭 위로 거대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끝에 있는건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죠. 사실 김대건 신부는 절두산이 아닌 새남터
성지에서 처형당했지만 대한민국 천주교 순교자를 대표하며 수많은 곳에 관련 기념물이 있는
분이니 역시 서울의 순교 성지를 대표하는 이곳에 이런게 없으면 더 이상할지도?



그리고 동상 앞에서 뒤를 돌아보면 울창한 숲과 나무들에 가려졌 있던 기념 성당이 드디어.



하늘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언덕을 오르기 전 먼저 성모상을 보고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옆으로 올라가려니



문에 표현된 나무 조각들이 매우 섬세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성당 건물로는 계단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언덕길을 따라 한바퀴 돌아가는게 왠지 이곳의 의미를 새기는데 더 좋아 보이네요.



1966년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아 절두산 성지에 기념 성당이 기획되고 공모를 거칠 때 걸렸던
한 가지 조건은 '절두산의 원형을 조금도 변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즉 밖에서 보았을 때 꽤나 높아보이는 이 건물은 실상 좁은 바위 절벽 위에 얹혀진 상태이고
그 아래를 많은 기둥들이 지지하는 형태인 거죠. 당시 건물을 짓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했을지는;;



아까는 나무에, 지금은 건물에 가려 안보이지만 오른쪽의 기념 성당의 바깥쪽은 둥근 지붕을,
왼쪽 기념 박물관은 직사각형의 지붕을 갖는데 각기 잘린 갓과 초가 지붕을 의미한다는군요.
그 사이에 솟은 둥근 구멍을 가진 종탑은 물론 순교자들이 찼던 형구에서 따온 것.



입구 한 켠에도 순교자를 표현한 조형 작품이 있구요. 계단 뒤를 돌아 강가 쪽으로 나가면
분명 한강을 내려다보는 기막힌 경치가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밤낮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이 많았는지, 그래서 경건한 성지의 분위기에 방해가 되었는지 지금은 막혀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밖에서 보면 높은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벽 위에 올려졌기에
성전 내부는 성지의 명성에 비하면 의외로 낮고 소박한 분위기입니다.



아마도 실제 처형지였을 바로 그곳 위에 제단이 있죠. 밖에서는 둥근 갓머리처럼 보일 그 부분.



왠지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이제 백년 하고도 오십년이 더 지났군요.



주차장을 가로지르고있는 2호선 지하철의 당산 철교 북단. 차음벽 위에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주차장을 돌아 성당 아래편에서 강을 바라보는 자리에는 2000년 이춘만에 의해 조각 설치된
순교자 기념탑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간격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디자인과 맥을 같이 하며
가운데 주탑은 형구(칼), 오른쪽 탑은 잘린 머리, 왼쪽 탑은 무명 순교자들을 의미합니다.



가장 먼 구석으로 나오니 나무에 가려진 기념 성당의 둥근 갓머리가 살짝 보이는군요.
세월과 함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성당의 모습을 보려면 잎이 떨어진 겨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죽음의 앞에서 조금 더 보이고 말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성당 여행; 서울 혜화동성당
성당 여행; 서울 새남터성지성당

핑백

덧글

  • 워드나 2019/06/21 21:43 # 답글

    밧슈 2호! 오랫만입니다
  • glasmoon 2019/06/24 15:06 #

    아 맞다 옛날옛적 그런 이름이었죠? 그 때부터 따지자면 3호기가 되긴 합니다만. ^^
  • 하쿠린 2019/06/24 11:22 # 삭제 답글

    절두산이라는 이름의 섬뜩함과 달리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은 성지군요.
  • glasmoon 2019/06/24 15:07 #

    조각품이나 여러 흉상, 기념물들이 너무 많아 사진에 다 담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가보심이~
  • 이요 2019/07/01 11:57 # 답글

    이 주변에 살고 있는데도 제대로 한번 돌아본 적이 없네요. 처음보는 조각들도 꽤 많고요. 날이 서늘해지면 한번 돌아봐야지...^^;;
  • glasmoon 2019/07/01 15:49 #

    볼거리가 워낙 많아서 충분히 흡족하실 겝니다요.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