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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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Le Mans, 1971) by glasmoon


지난번 서킷의 불사조 영감님을 추모한 뒤 6월 르망 시즌에 맞춰 포스팅하려고 했던 것이건만
볼탱크와 아폴로 만든다고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7월 하고도 후반이 되었;;;
아우디에 이어 포르쉐마저 철수한 뒤 근래 르망의 LMP1 클래스는 좀 김빠진 상태가 되었지만
1970년을 전후한 시절의 르망은 페라리와 포르쉐, 포드의 그야말로 치열한 각축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자타공인 스피드광 레이스광이자 스스로 뛰어난 레이서이기도 했던 배우 스티브 맥퀸은
자신에게도 캐스팅 제의가 왔었으나 무산되었던 존 프랑켄하이머의 "그랑프리"가 성공을 거두자
제대로된 레이싱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자금과 사람들을 끌어모으면서 의욕에 불타오르는데~



자동차 영화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보셨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였습니다.
사공이 너무 많았는지 현장에서는 제대로 굴러가는게 없었고, 각본은 너무 늦게 나왔으며,
영화가 포르쉐의 최종 승리로 그려진다는걸 알자 엔초 페라리는 차량 협찬을 거두어들였고,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이 영화의 스튜디오를 팔아버리는 난리통 속에 감독도 바뀌었죠.
프로젝트가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끝내 완성되어 1971년 개봉이 성사되었지만
관객들은 외면했습니다. '진짜 레이스를 보여주겠다'는 맥퀸의 호언대로 차들만 줄창 달릴 뿐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 영화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영화 촬영에 사용된 필름들 중 일부가 뒤늦게 발견되어 2015년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참여했던,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스태프와 드라이버들이 당시의 일들을 회고하였지만
이 영화 자체가 현재 기준으로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기획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말도 안되는 현장감은 정말 1970년 르망 레이스를 찍었기 때문이고
촬영 카메라를 장착한 포르쉐 908을 직접 레이스에 참가시켜 완주(무려 9위)까지 시켰습니다.
연출을 위한 후반 촬영은 실제 포르쉐 917과 페라리 512를 대거 빌려다 레이서 태워 찍었구요.
물론 위에 언급한대로 엔초옹은 역시나 성질을 부렸고 사고 장면은 트릭을 썼지만 어쨌든.


한편 이와 반대로 레이스 외의 드라마 부분은 상업 영화라는걸 믿기 어려울만큼 비중이 작은데
그 몇 안되는 장면에서도 대사의 양은 단어의 수를 셀 정도이고, 대화가 좀 진행되려나 싶으면
카메라가 뒤로 빠지는 등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연출을 취합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이러한 방법은 관객들에게 생소하고 불친절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만큼 레이스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한편 몇 안되는 그 대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왜 레이스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아마도 맥퀸 본인의 솔직한 대답같은 것들 말이죠.
찾아보면 주인공, 라이벌, 아름다운 여성, 경주와 사고, 사랑과 이별같은 요소들이 다 있음에도
세세한 설명이나 '사적인' 부분들이 배제되면서, 그리고 실제 레이스를 촬영한 '뜨거운' 화면들과
합쳐지면서 레이스에 관심이 있거나 어느정도 지식을 가진 관객은 정말 르망의 현장에 있다는
강렬한 현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전 포스팅했던 "F1, 본능의 질주"가 마치 드라마처럼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면
이 "르망"은 반대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어진 영화였던 셈이죠.
저에게 가장 놀라움을 주었던 영화들 중 하나이면서 레이스를 묘사한 단연 최고의 영화이자
그냥 왕년의 멋진 배우 정도로 인식했던 스티브 맥퀸에게 인간적으로 빠져들게 만든 작품.
덕분에 양산차만 다룬다는 제 자동차 모형 나름의 룰 속에서 하나의 예외가 되기도 했구요.
어디보자 내년 쯤엔 만들 수 있으려나...?

덧글

  • 자유로운 2019/07/23 23:43 # 답글

    로망이 담겼지만 너무나 이상이 높았군요.
  • glasmoon 2019/07/24 15:59 #

    말씀대로입니다. 로망이 가득해서 르망... 이러다 돌맞지;;;
  • 노이에건담 2019/07/24 04:01 # 답글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시던 공업사 사장님께서 드디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시는군요.^^;;
  • glasmoon 2019/07/24 16:00 #

    워낙 띄엄띄엄 해놔서 뭐, 그것도 닥치고 정말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 dy군 2019/08/02 11:28 # 답글

    스티브 맥퀸씨는 영화상이나 일상에서도 패션 감각이 워낙 비범해서, 남성 패션계에서 영원히 살아계시죠.
  • glasmoon 2019/08/02 20:46 #

    뭘 입어도 뭘 해도 멋진 남자였죠. 만년에 카이저 수염을 기른것 만큼은 좀 깼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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