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순천에 갈 일이 생겨 준비하다가, 경로가 일치하지는 않아도 일단 전남이니(...)
5월에 핸드폰도 깨먹으며 대차게 망했던 목포 여행의 복원(?)을 겸하기로 했습니다.
목포행 당시 예정되었던 성당 열 곳 중에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두 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나머지 여덟 곳을 하루에 다 찍으면서 내려간 뒤 순천으로 이동한다는 상당히 무모한 계획!
...의 첫 번째 기착지는 익산의 여산 성당입니다.

익산시 여산면이긴 한데 거리로나 고속도로 IC로나 논산에서 더 가깝긴 합니다.
그리고 병인-무진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되었던 성지이기도 하지요.

여산 지역은 여러 박해에서 많은 피를 흘렸던 터라 1951년 일찍 순교 성지로 지정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본당 설립이 추진되었죠. 그에 따라 1968년 부지 매입과 성당 건축이
진행되고 이듬해인 1969년 나바위 본당에서 분리된 여산 본당이 창설됩니다.

근래의 성역화 사업과 함께 성당과 그 인근 지역은 매우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으로 맞이하는 잔디밭의 십자가 14처가 매우 휼륭하군요.

그리고 그 14처의 끝에는 바위 동굴이 만들어져 있는데, 처음에는 성모동굴인가 했더니
예수께서 처음 묻히셨던 그곳을 형상화한 것인 듯. 국내에서는 처음 보는것 같습니다.

성당 전면 앞에도 십자고상과 천사상이 있는 등 여기저기 성상과 예술품이...

건물은 얼핏 우리나라식 벽돌조 고딕 성당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다른점을
느끼게 되는데, 고딕 양식의 디테일을 상당 부분 따오기는 했지만 기본 구조는 일반적인
장방형(강당형) 건물에 가깝습니다.

그 차이는 건물 내부에서 확실히 알 수 있구요. 그래도 좌우측 벽에 문이 남아있다던가
천장 중앙부와 좌우의 높이가 다르다던가 하는 고딕의 흔적은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셈.
입구 중앙에 놓여진, 14처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성수대가 매우 아름답네요.

이곳 여산성당에서 가장 놀란 부분인데, 벽면을 보고 미사를 드렸던 트리엔트식의 제대가
놓여 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니 전에도 트리엔트식 제대가 있긴 했으나 모양도 색상도
단순했던 것을 최근에 단장한 듯? 국내에서 제작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위용인데 말이죠.

다시 밖으로 나가면 성당 오른편에 옛 사제관이, 그 앞 잔디밭에 성모상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들어오면서부터 분명 어딘가의 성당과 닮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이 각도에서 보고야 어딘지 생각이 났습니다. 음성의 감곡매괴성당이었군요.

물론 양식은 다르지만 종탑의 디테일이나 잘 정돈된 안팎, 부속 건물과 성상들의 배치
등에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나 봅니다. ^^

성당을 나가 300 미터 정도 올라가면 박해 당시 처형장이었던 숲정이 성지가,

반대편으로 150 미터 정도 내려가면 여산 동헌(백지사터) 성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백지사터라는 이름은 옛날 이곳에 백지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라는 뜻이 아니고
당시 순교자들에게 가해졌던, 하늘을 향한 얼굴 위에 젖은 종이를 여러장 붙여 질식시키는
백지사형(白紙死刑)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다시가는 목포행(...)의 시작, 여덟 곳 중의 첫 번째, 익산의 여산 성당이었습니다.
성당 여행; 익산 나바위성당
성당 여행; 논산 강경성당
성당 여행; 음성 감곡매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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