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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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핀과 브루벨 by glasmoon


다녀온지 일 년 하고도 두어 달이 훌쩍 지난 러시아 여행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럽 나라들에 가게 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게 중요한 일정 중 하나가 되는데요,
물론 러시아 최대 최고의 미술관이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겨울 궁전)겠지만
그곳 말고도 주목할만한 미술관이 다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찍은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имени А. С. Пушкина)
도 그 중 하나일텐데, 좋은 작품은 많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니 기억에 남는건 별로 없더라구요.
왜인고 하니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는 인상파를 비롯한 세계구급 인기 작가들 중심이거든요.
본진 프랑스에서 주요 작품들을 본 사람이라면 약간 무덤덤해지는게 당연지사.



사실 그러한 부분은 루브르나 대영박물관과 비슷한 에르미타주 미술관도 마찬가지였으니
차이가 있다면 약탈품 위주인 두 곳과 달리 러시아는 제국 전성기때 돈으로 사모았다는 정도?
문화적 열등감의 발로였다고도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소장품을 수집할만한 재력이란;;;
어쨌거나, 그래서 다른 나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러시아의 미술 작품을 보고싶다면
먼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국립 러시아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Русский музей)에
가보면 됩니다.



Ilya Repin, "Self-portrait" (1878), State Russian Museum

그리고 그곳의 수퍼 스타는 단연 일리야 레핀(Илья́ Ефи́мович Ре́пин)이죠.



Ilya Repin, "Barge Haulers on the Volga" (1870–73), State Russian Museum

하급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적성에도 없는 군대의 길을 걸을 뻔하다 미술로 전향한 그는
시작이 빠른 편이 아니었음에도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며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레핀은 평민과 농민을 비롯한 러시아 하층민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데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초기 대표작인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Бурлаки на Волге)"에 잘 나타납니다.
서유럽과 달리 19세기 후반까지도 이런 중노동에 인력이 쓰였던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이.



Ilya Repin, "Religious Procession in Kursk Province" (1880–83), State Tretyakov Gallery

부활절 행진을 그린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Крестный ход в Курской губернии)"
또한 종교 행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종교화에 흔히 나타나는 신에 대한 찬양이나 부활의
거룩한 영광같은 것들은 온데간데 없이 화면을 가득 매우고 있는건 이름없는 평민들의 지친
일상과 그들을 누르는 종교와 공권력의 쉼없는 억압으로 느껴지지요. 이런 그림들을 통해
레핀은 러시아 사실주의의 기수가 됩니다.



Ilya Repin,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on November 16, 1581" (1885), State Tretyakov Gallery

레핀은 한편 러시아 자신들의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묘사한 역사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서유럽에서는 이미 퇴조한 역사화에다 프랑스 여행에서 얻은 인상파 등의 기조를 결합하여
매우 과감하면서도 생생한 이미지를 불어넣었습니다. 그 중 명실상부 대표작이라 할 만한
"뇌제 이반과 그의 아들(Иван Грозный и сын его Иван 16 ноября 1581 года)"은
제국의 기초를 다졌으나 공포 정치로 인해 폭군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반 4세가 광기에 휩쓸려
황태자인 아들을 지팡이로 때려죽인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 있는데, 이반 4세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당시까지 부정적이었던 역사적 인식마저 재평가하게 할 정도였죠.

그러나 이 그림은 그 강한 기운 탓인지 두 번이나 반달리즘의 표적이 된 걸로도 유명해서
당시 미술관장의 사임과 큐레이터의 자살을 불러왔던 1913년의 첫 공격은 그나마 레핀이
살아있던 때라 작가 본인의 복원이 가능했지만 작년 5월 취객에 의해 두 번째 공격을 받아
또다시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듣지 못한 채 러시아에 간 것은 작년 6월. ㅠ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레핀은 문학의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국가적인 작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세에 걸맞게 황제와 귀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도 남겼죠.
저로서는 하층민의 삶에 관심을 두었던 사실주의 작가가 높으신 분들의 초상화도 그렸다는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러시아 국가 의회 100주년 기념으로 의뢰를 받아 완성한 대작
"1901년 5월 7일 러시아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회의(Торжественное заседание Государс
твенногосовета 7 мая 1901 года в день столетнего юбилея со дня его учреждения)"를
러시아 미술관에서 접했을 때는 그냥 압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Ilya Repin, "Ceremonial Sitting of the State Council on 7 May 1901 Marking the Centenary of its Foundation" (1903), State Russian Museum

높이 4미터, 폭 9미터라는 초대형 사이즈로 전시실 하나의 벽을 꽉 채우고 있는, '회의'라는
심심할 수밖에 없는 소재를 담으면서도 구도와 인물 배치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이 그림은
역사화이자 기록화이면서 거대한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각기 그려진, 상석에서 보고를 받는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한 주요 등장 인물들의 초상화가 화면에서 결합했다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전시실의 다른 벽은 그 준비 단계에서 그려진 개별 초상화들이 가득 메우고 있구요.
이런 곳에서도 느껴지는 대륙의 기상이랄까;;;

이렇게 평민과 귀족, 황족을 가리지않고 러시아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일리야 레핀은
혁명의 시대를 지나면서 부르주아적인 예술에 민감했던 볼셰비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고
심지어 그가 만년을 보낸 핀란드의 마을 쿠오칼라(Kuokkala)는 겨울전쟁을 통해 소련으로
편입되면서 레피노(Repino)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그가 그렸던 사실주의 화풍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되어 한 시대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직도 공산권
일부(...) 국가에는 여전히 남아있다던가요. -,.-



위의 그림들 중 "크루스크..." 와 "뇌제 이반..." 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미술관이 아닌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에 있습니다.
사업가이자 예술 후원가였던 파벨 트레티야코프(Па́вел Миха́йлович Третьяко́в)의 개인
콜렉션에서 출발한 미술관으로, 파벨 트레티야코프는 레핀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구입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기도 하죠. 1854년 22세 때 수집하기 시작한
러시아 미술품들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늘어난 소장품들을 놓기 위해 집은 계속 개축되었으며,
집이 모스크바로 옮겨지고 동생 세르게이의 서유럽 회화 콜렉션이 합쳐진 시점에서는 이미
러시아 국립 미술관에 준하는 중요성을 가진 명소가 되어 있었죠. 트레티야코프는 1892년
집과 미술품들을 국가에 기증했고 이것이 지금의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됩니다.



그의 콜렉션이 주로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 작품에 집중되었던만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미술관과 더불어 러시아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에는 필수 코스가 됩니다.
그래서 위에 언급된 레핀의 그림들을 비롯해서 많은 러시아 작품들을 관람하던 와중에
한 층의 중앙 홀을 매운 사뭇 범상치 않은 일련의 그림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Mikhail Vrubel, "Self-portrait" (1905), State Tretyakov Gallery

이번 러시아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건진 최대의 수확 중 하나, 미하일 브루벨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Вру́бель). 일리야 레핀보다 10년쯤 뒤에 태어나 19세기 말에 활동한
상징주의 및 아르누보 사조의 화가입니다.



Wróbel에서 기원한 성에서 보듯 폴란드계 러시아인인 그는 레핀과 비슷하게 군 복무를 겪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뒤늦게 제국 예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1884년 브루벨은 키예프 성 시릴 성당의 벽화 작업을 위해 베니스에서 중세 예술을 공부하는데
초기 르네상스와 비잔틴 미술에 대한 이 때의 경험이 그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죠.



Mikhail Vrubel, "The Swan Princess" (1900), State Tretyakov Gallery

여기에 동양 미술, 특히 페르시아 카펫에 대한 관심이 겹쳐지면서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거장
알폰스 무하나 구스타프 클림트와는 꽤 다르면서 어딘가 비슷하기도 한 화풍이 완성됩니다.
어떻게 보면 동양(페르시아)의 영향과 금색(정교회 이콘) 등 화려한 색상이라는 두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죠. 제 첫인상은 무하와 클림트가 합쳐져 흑화한 느낌이랄까;;
브루벨 역시 아르누보 아니랄까봐 회화 외에도 색유리화, 도예, 무대미술, 의상 등등에도
탁월한 역량을 보였고, 위 그림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차르 술탄 이야기"의 인물인
백조 공주(Царевна-Лебедь)의 의상을 스스로 디자인한 뒤 다시 그림으로 옮긴 것.
당시 백조 공주의 배역을 부인인 나데즈다 자벨라-브루벨이 맡았는데 얼굴은 전혀 딴판이다~
라는 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겠죠?



Mikhail Vrubel, "Demon Seated" (1890), State Tretyakov Gallery

그에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면 이것 "앉아있는 악마
(Демон сидящий)"를 비롯한 악마 시리즈일 것입니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낭만시에서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보수적인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칠고 추악하다는 악평을, 우호적인
후원가들로부터는 천재성이 번득인다는 호평을 받았죠. 레르몬토프의 시가 아니더라도
그는 예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결혼 뒤 생활이 안정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다방면의 작업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는데...



Mikhail Vrubel, "Demon Downcast" (1902), State Tretyakov Gallery

그로부터 10여년 뒤, 캔버스에 다시 악마가 소재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패배한 악마(Демон поверженный)"의 끝없는 작업은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급기야 신경 쇠약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되기에 이릅니다.
더불어 매독에 의한 신체의 손상이 시작되고 아들이 죽으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던 그는
시력을 잃으면서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10년 사망하였습니다.
딥다크한 환상 계열을 다루는 작가에게 이런 인생은 정말 필연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꽤 지나간 기억을 더듬어가며 간만에 길게 포스팅 해보려니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들을 포함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해외 반출 없이 자국 내에 남아있어
몇 군데 도는 것만으로 모두 볼 수 있음! 뒤집으면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힘듦!
그러니 러시아에 가시면 에르미타주만 보지 마시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 미술관!
모스크바에서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을 꼭 찾아주세요~!!!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上)
에르미타주의 로마노프들 (下)

모스크바의 칠공주
쏘아랏!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
붉은 광장의 얼굴들
가랏 크렘린! 차르 캐논!!
모스크바 대미궁 탐험

덧글

  • 두드리자 2019/08/20 23:11 # 삭제 답글

    "존경하는 레핀 선생님. (수고비는 부르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림을 그려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을 거부하는 건 어렵죠. 부탁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려야죠. (부탁하는 사람중에 이반 뇌제보다 포악한 사람은 별로 없을 거고)
  • glasmoon 2019/08/22 16:52 #

    말씀대로 예술가는 예술가일 뿐 사상가나 운동가일 필요는 없기도 합니다. ^^;
  • 좀좀이 2019/08/22 22:07 # 삭제 답글

    뇌제 이반과 그의 아들이 무려 두 번이나 반달리즘의 표적이 되었군요. 그림 실제 보면 그림 속에서 나오는 광기를 느끼게 되는 걸가요? 실제 보면 굉장할 거 같아요.
  • glasmoon 2019/08/23 10:56 #

    트레티야코프에서 유심히 보면서 나름 감동했었는데 제가 본 것은 사고 뒤에 걸린 모조품이었던 것인지... 플라시보였던 것인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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