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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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은 순식간 by glasmoon


국내 영화판에서 가장 대목이라는게 추석과 설 연휴 시즌이라지만 정작 그 대목을 노리고
힘이 들어간 영화들이 거꾸로 지리멸렬하게 된 것도 한 해 두 해의 이야기는 아니죠 아마?
실은 지난주엔가 '2019 추석 대전'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나 할 예정이었건만
그중 두 번째 영화를 보고는 어이와 함께 의욕도 상실되어 날려버렸던 것을,
오늘 혹시나 싶어 본 영화가 결국 마저 끄집어내고 마는군요.


이 두 영화가 현재 극장가에서 예매율 1, 2위를 다투는 작품이라 캅니다. 일단은.

요즘 영화 관람 편 수도 많이 줄이는 입장이라 평소같으면 그냥 넘겼을 가능성이 큰데도
굳이 극장에 가서 이렇게 화를 자초한건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마는
그 작은 이유 중 하나는 최근의 오락 영화들의 만듦새가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올 초 역대급의 기록적인 흥행을 달린 "극한직업" 이나 최근 좋은 성적을 남긴 "엑시트" 나,
예고편을 보면 그게 다일 수 있는 뻔하디 뻔한 쌈마이 B급 영화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도
정작 알맹이는 허세도 기름기도 빼고 빵빵 터뜨려가며 매우 잘 만들었거든요.
사소한 것들은 쳐내고 주인공들이 당면한 상황에 집중하면서 전같으면 붙었을 쓸데없는
구질구질한 것들이 모두 생략되었죠. 이를테면 그 마약범이 얼마나 악질이고 잔인한지,
화학 테러는 어떻게 발생했고 그 뒤의 대기업은 얼마나 이익만을 추구하는지 같은건 이제
썩 궁금해하는 사람도, 구태여 설명해야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잘 할 자신이 있지 않다면요.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태생적으로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영화이기에 그 넘들이 왜 나쁜지,
또 주인공들이 어째서 초법적 수단으로 그들을 처단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히 요구됩니다.
원작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렸는지 모르지만 영화판에 왔으면 영화팬을 만족시켜야 하는 법.
그게 되도 않는 양아치들에 갑툭튀 일본 야쿠자라니... 제작진 여러분 20세기에서 오셨어요??
게다가 캐릭터들은 전형성에 더없이 충실하다보니 개성은 커녕 화장빨 외엔 활기라곤 없고
이야기는 뻔할 뻔 자로 흘러가다 막판에 우르르 몰려나와 몇 대 몇백의 패싸움 하고 끝이라니.
게다가 그 사이사이 눈요기로 넣었다는 특수효과와 CGI들은 어찌나 저렴한지~
이 녀석들에 비하면 시리즈 중 최악이라는 "타짜: 원 아이드 잭"도 평균 이상으로 보인다니까요.

그에 비해 "장사리"는 한국 전쟁이라는 배경상 장르가 달라지고 또 장르 특성상 어느 전형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상당히 생긴다는 점에서 꽤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제목에 갇혀버린 몇 해 전의 "인천상륙작전"에 비하면 운신의 폭이 꽤 있는 편입니다.
전쟁사에 남을 상륙작전에 양동으로 동원된 학도병 부대의 승전과 패퇴, 얼마나 드라마틱해~
비교적 덜 알려진 쪽이고 사료도 적을테니 적당히 가공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잘 만들었다면 정말 잘 나올 수도 있었을텐데... 아뿔사 감독이 곽경택이네.
옛 교복과 경남 사투리, 그리고 친구 놀음 빼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는 그 곽경택 말입니다.
그래도 몇몇 소품은 그럭저럭 만든적 있으니 괜찮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초반 대위님의 주옥같은 훈화 말씀과 함께 산산이 흩어지고, 영화는 역시나 그렇게 흘러갑니다.
중간에 학도병 개개인의 눈물어린 감동 사연을 꼬박꼬박 하나씩 다 넣어주고도 총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 채 안되다니, 장사리 전투 자체에 대해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더랍니까??

이런 영화들이 흥행이 된다는건 도무지 제대로된 작품이 없다보니 반사 이익을 얻는 것일 수도,
어쩌면 요 근래 이어진 무거운 흥행작들에 대한 피로감의 발로일 수도 있겠습니다는
저에게는 급속한 성장을 거듭한 한국 영화가 다른 분야처럼 분화하기 시작한 걸로 보입니다.
어느정도 이루었다고 안주하면 퇴행은 순식간이었죠.

덧글

  • Ryunan 2019/09/30 16:35 # 답글

    요 몇 주간 덩치 큰 한국영화들은 다들 별로네요.

    그나저나 20세기 출신들은 맞죠 -ㅇ-;;; 21세기 출신들은 없었을 듯 합니다 ㅎㅎ
  • glasmoon 2019/09/30 20:37 #

    몇 해 전부터 뭔가 질적으로 하락세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향평준화도 아니고 퇴행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요.
    아 그 문장은 20세기에 만든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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