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glasmoon.egloos.com

포토로그



공중 도시를 찾아서 by glasmoon

세상 끝의 지배자


이카 지방의 나스카 - 와카치나 - 파라카스로 이어지는 페루 여행기 1부(...)가 끝나고
이번부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2부, 쿠스코 편이 시작됩니닷.



파라카스에서 쿠스코로 직행하면 좋겠지만 800 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리도 거리인데다 페루
산간 지역의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하기에 버스로 약 17시간이라는 엄청난 이동이 되므로
시간이 가장 아까운 아시아 여행객은 리마로 돌아가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이건만, 리마는 벌써 두 번째인데 스쳐지나가기만 하는군요. ^^;



비행기의 창가 자리에 앉아 졸다 깨어보니 구름 평원 위로 뭐가 삐죽삐죽 솟은게 보입니다.
음냐... 히말라야에 밀려 콩라인 처지긴 해도 안데스의 이름이 그냥 얻어진건 아니라는 게죠.
구름 위로 저 정도 올라왔으면 대충 해발 6천 미터 언저리는 될 듯;;;



저런 어마어마한 산들이 이어지다 갑자기 평탄한 고원이 나타나면서 쿠스코에 도착했습니다.
쿠스코 자체가 해발 3,300 미터의 고원 도시이기에 제가 태어나서 가장 높이 올라온 셈인데
어떤 사람들은 고산병으로 고생한다지만 그래도 뭐 별일 있겠어, 아무 이상 없구만 했더니
택시에서 내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찰나 숨이 턱! -ㅁ-;;;; 바로 약 챙겨먹었습니다.



볼거리 가득한 쿠스코 시내는 일단 미뤄두고, 일정상 바깥 동네부터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쿠스코 북서부 우루밤바 강 일대의 '신성한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이란 곳인데
잉카 시절 수도 부근이다보니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유적들이 남아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마추 픽추를 가는 길목이기에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적당한 이름이 붙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적지가 다수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마추 픽추로 가는 길에 몇 군데 둘러보는 정도죠.
제일 먼저 자동차가 멈춘 곳은 쿠스코에서 가까운 마을 친체로(Chinchero)입니다.
쿠스코보다도 지대가 높아 대략 해발 3,800 미터! 계단 하나 오르는게 한 층 오르는 것 같아!!

친체로의 역사는 기원 전으로 거슬러올라가고, 현재의 모습은 15세기 후반 잉카 황제였던
투팍 잉카 유판키(Túpac Inca Yupanqui)가 개인 별장을 만들면서 갖춰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6세기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필두로 스페인이 침략하였을 때 괴뢰 황제로 세워졌던
망코 잉카 유판키(Manco Inca Yupanqui)가 저항 운동을 시작한 곳이기도 한다는군요.



경사지에 만들어진 마을 위에는 너른 광장이 있어 인근 주민들의 장터로 이용됩니다.
친체로 지역 자체가 염색품과 공예품의 산지로 알려져있기도 하구요.



크지 않은 마을에 이렇게 넓은 공터가 그냥 만들어졌을 리는 만무하니...



필시 잉카 황제의 별장 혹은 별궁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겠죠.
그리고 스페인의 침략 및 점령과 함께 이곳에도 십자가가 세워지고...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을 본 건물은 허물어져 성당이 되었습니다.



스페인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흑역사가 있는 관계로 이슬람 축출(레콩키스타) 이후
강경한 원리주의로 돌아가 구교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는건 재작년 현지에서 확인했지만
신대륙 식민지에서 그들이 행한 것들을 보면... 저도 일단 가톨릭 신자지만 참;;;



성당 뒤편으로는 스페인이 채 없애지 못한 토대들이 과거 잉카의 영광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부수고 남아 500년을 버틴게 이 정도면 확실히 별궁(혹은 별장)의 규모는 대단했겠네요.



그 아래엔 아마도 경작지로 보이는 자리들이 복원되어 있구요.



친체로를 떠나는 마을 어귀 높은 곳에 전망대가 있어 잠시 멈추었습니다.
저~아래 보이는게 우루밤바(Urubamba) 강을 낀 우르밤바 마을이며 구름에 살짝 가려진
봉우리가 부근에서 가장 높은 치콘(Chicón) 산입니다. 가까운 동네 뒷산이 해발 5,530 미터!



그리고 왼쪽으로 눈을 살짝 돌리면 해발 3천 미터는 기본으로 찍는, 쿠스코까지 이어지는
고원 지대의 끝자락이 보입니다. 이렇게 직접 보고나니 과거 잉카가 왜 해안 저지대가 아닌
높은 산악 지대에 터를 잡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는군요. 나스카와 파라카스에서 보았던
사막화된 불모지와 높긴 해도 기온이 적당하고 경작이 가능한 고원의 가치 차이는 엄청나겠죠.



그렇게 멀리서 보았던 고원, 마라스(Maras) 지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리다보니 골짜기 아래로 뭔가 하얀 것들이 보이네요?
마치 강바닥에 들러붙은 크고 하얀 따개비같은, 환공포증이 있다면 꽤 무서울것 같은 이곳은



잉카 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있는 마라스 염전(Salineras de Maras)입니다.
국내엔 살리네라스 염전으로 알려졌는데 'Salineras'가 스페인어로 소금 광산이란 뜻이죠. ^^;
여느 높은 세계구급 산맥들과 마찬가지로 안데스 산맥 역시 솟아오르기 전에는 해저였고,
그렇기에 지층 어디엔가 굳어버린 암염이 지하수에 녹아 흘러나오는걸 옛날 누군가가 발견하고
물이 순차적으로 흐르는 수백 개의 계단식 못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슷한 크기의 못들이 가파른 경사지에 얽히고 섥히며 늘어진 광경이
대단히 장관입니다만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어가서
걸어보거나 심지어 만들어지는 소금을 직접 만져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오염 문제가 대두되어 선을 치고 관광객의 접근을 막게 되었다네요;



염전에 이은 마라스 지방의 명소 두 번째! 는 모라이(Moray) 입니다.



고원 지대의 움푹 파인 지형에 마치 로마-그리스의 원형 극장처럼 여러 층이 나 있습니다.
다만 유럽의 원형 극장은 사실 반원형인데 반해 이곳은 완전한 원형이라는게 다르죠.
연구에 따르면 잉카 시대에 만들어진 작물 시험 재배지 및 연구소라는게 정설이라 캅니다.
지역 특성상 각 단마다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나요. 일설에 따르면 무려 최대 15도까지!?



직접 내려가보니 위에서 보는 것보다 꽤 크군요. 다만 온도 차이가 느껴지냐면.. 글쎄올시다?
하늘에 제를 바치는 장소였다던가 천문을 관측하는 장소였다던가 하는 이설도 있는 듯.



이제 마라스 고원 지대도 우루밤바 강변 저지대(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도 끝나고
강을 따라 계곡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잠시 가다 기사분이 위를 보라기에 고개를 들었더니 이런게 있네요. 뭐? 캡슐 호텔??
승강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숙박을 하려면 2시간짜리 400미터 암벽 등반을 해야 한다고???
과연 장사가 잘 될까, 누가 저런데 묵을까 싶지만 일단 존중은 취향합시다.



그리고 다시 길을 달려 마지막 경유지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 이르렀습니다.
오얀타이탐보는 앞서 친체로의 별궁을 지었던 투팍 잉카 유판키의 아버지,
즉 잉카의 9대 황제이자 제국을 확립한 파차쿠티(Pachacuti)가 정복하고 세운 도시입니다.
파괴된 뒤 화려하게 재건되어 우루밤바 지역의 중심지가 된 오얀타이탐보는 약 100년 뒤
역시 친체로에서 언급되었던 망코 잉카 유판키가 일으킨 반 스페인 항전의 중심지가 되었죠.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 거대한 유적지는 흔히 요새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사원이었다고 합니다...마는 이 위에서 버티면 치고 올라가는건 통 쉽지 않겠네요.



물론 스페인 점령 시절 많이 파괴되었지만 지금은 복원을 거쳐 대규모 유적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페루에서 본 원주민 주거 시설로는 최대급? 아 '그곳'을 제외하면요.



도중에 몇 번이나 쉬어가며 거대한 계단들을 오릅니다.
올라보니 꼭대기까지 또 뭐가 있고 옆으로도 길을 따라 부속 건물들이 이어지고 하는데...
아 몰라~ 하루종일 오르락 내리락, 이젠 지쳤어~



이곳이 태양신을 모시는 사원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여섯 개의 모노리스로 이루어진
거대 석벽입니다. 사원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이 거대한 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네요.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오얀타이탐보 시가지. 맞은편 산 중턱에도 뭔가 큰 유적이 있군요;



뒤까지 돌지는 못하고 중간쯤에서 내려오니 작은 연못과 함께 물이 흐르는 곳이 있네요.
잉카 시대의 수로가 살아있는 건가? 정말??



이제 오얀타이탐보 시내를 잠시 본 뒤 기차역으로 갑니다.



왜냐면 오얀타이탐보부터 마추 픽추까지는 기차 외에 교통 수단이 없거든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육로가 폐쇄되었기에, 열려있다 한들 형편 좋을 리도 없겠지만,
열차를 타던가 혹은 기찻길을 따라 38 킬로미터 트레킹(...)을 하던가 외 선택지가 없습니다.



철길은 뒤로도 쿠스코까지 연결되어 있으므로 거기서부터 한방에 타고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시간은 아끼지만 대신 무진장 비싸죠.



제가 타는 열차는 잉카 레일의 보이저 호라네요. 이름이 마음에 드는걸?



유럽에서 만들어 가져왔다는 열차는 제작된지 오래되어 보이지만 당시에 꽤 고급이었는지
대체로 호사스럽고 시트도 안락합니다. 가는 중간에는 음료와 과자도 제공되구요.
페루 레일의 고급 열차는 정말 호화스럽다는데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다른 열차에는 없는, 지붕 쪽의 창이 난 이유는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거대한 산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싶더니 나중엔 정말 거인들 발 밑을 기어가는 느낌;;;
열차 지붕의 창문이 아니라면 산인지 하늘인지도 확인할 수 없을 지경~
그나저나 옆자리가, 분명 둘씩 와서 처음 만난 것일텐데, 어떻게 한 순간도 쉼 없이 떠드는지
귀에서 피가 난다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짐 줄인다고 이어폰도 두고 왔구만..ㅠㅠ



이렇게 청각 고문을 버텨낸 끝에 기차는 종점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날 과연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to be continued!!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핑백

  • Dark Ride of the Glasmoon : 무지개의 산 2019-10-07 16:56:40 #

    ... 된 기분이네요. 잠깐(?)의 산행을 위해 귀중한 하루를 보람있게 쓰고, 다음은 정말(!) 쿠스코입니다.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 more

  • Dark Ride of the Glasmoon : 황금의 거리 2019-10-11 21:28:58 #

    ... 이렇게 마지막 밤이 오고, 페루 여행도 이렇게 끝났습니다. 끝났다구요. ...에에이, 또 이어집니닷!!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무지개의 산 ... more

  • Dark Ride of the Glasmoon : 선 넘고 물 건너 2019-10-17 20:10:57 #

    ... 지나길래 찍었구만 정작 받침만 보이고 동상은 안보이네. -,.- 아무튼 이제부터는 볼리비아 여행기입니닷!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무지개의 산 황금의 거리 신전 위의 성당들 ... more

  • Dark Ride of the Glasmoon : 달에서는 문 워크를 2019-11-01 19:13:54 #

    ... 낌이 좋았던 라파스의 달의 계곡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라파스 주위에는 딱히 알려진 관광지가 없어요~ ^^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무지개의 산 황금의 거리 신전 위의 성당들 선 넘고 물 건너 코파카바나의 검은 성모 ... more

  • Dark Ride of the Glasmoon : 정복자의 도시 2019-12-14 15:51:44 #

    ... 로그 업데이트를 쉽니다. 여름에 너무 멀고 비싼 곳을 찍어버렸기에 이번 겨울은 가까운 곳을 짧게..^^;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무지개의 산 황금의 거리 신전 위의 성당들 선 넘고 물 건너 코파카바나의 검은 성모 달에서는 문 워크를 별의 바다 위에서 하얀 지평선 꽃의 거리 신전 위의 ... more

덧글

  • 두드리자 2019/10/01 01:10 # 삭제 답글

    그 유명한 캡슐호텔이군요. 승강기가 있었다면 묵어보셨을지도?
  • glasmoon 2019/10/01 18:35 #

    아뇨! 전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절벽 쪽은요!!
  • 이재민 2019/10/01 16:57 # 삭제 답글

    진짜 한번은 가보고싶네요.
  • glasmoon 2019/10/01 18:37 #

    공간적 거리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젠 노하우 공유나 정보 접근성도 좋아졌으니, 한 번 가셔야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