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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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봉우리 by glasmoon

공중 도시를 찾아서


페루에 들어온지 어언 6일째, 드디어 잉카가 남긴 세계구급 유적지인 마추 픽추의 날입니다.



마추 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아래의 마을을 거쳐야 합니다. 우루밤바 강과 두 지류가
합쳐지는 자리의, 인구가 5천 명이 채 안되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 입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라 별로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죠.
마을의 가장 큰 거리는 우루밤바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강(이라기보다 천)
좌우로 펼쳐져 있습니다. 보다시피 경사는 살벌하구요.



숙소로 가는 도중 천변에 작은 공원이 보여 들렀더니 역대 잉카 황제들의 상이 있더라구요.
마을 자체가 마추 픽추로 가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한 관광업으로 유지되는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놓여있는 잉카와 관련된 기념물들의 숫자는 왕도 쿠스코를 훨씬 능가하는 듯?



혹시나 싶어 공원 근처를 둘러보았더니 웬걸,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 사람의 상도 있네요.
스페인 세력과의 첫 조우에서 사로잡혀 이용당하다 처형된 잉카 제국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입니다. 현지에서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축구에 살고죽는 남미 아니랄까봐 숙소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역시나 잉카의 상징물들로
장식된 축구장에는 늦은 시간에도 경기를 뛰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아니 비교적 낮다곤 해도
이 산 속에서 축구라니, 이러니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남미 고원 국가들에 오면 맥을 못추지;;



페루의 건물들은 대부분 창문에 새시같은거 없이 그냥 유리판을 그대로 홈에 끼워넣는 식이라
단열이나 방음을 기대할 수 없다 해도 유달리 밤사이 잠을 이루기 어려울만큼 시끄럽다 했더니
숙소 바로 앞이 작은 광장이었네요. 잉카의 신수 중 하나인 퓨마의 상으로 장식된 이곳은...



아마우타 광장(Plaza del Amauta)이라고. 아마우타는 '현명한 자'라는 뜻의 케추아어로
잉카 제국에서는 주로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스승을 지칭했다 합니다.
...근데 어째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은 포스가--;;



해가 뜬 마을의 모습은 어젯밤 조명을 받은 모습과 사뭇 다르군요.
곳곳에 놓여진 잉카 황제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 재미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으니...



이미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섰기 때문입니다. -,.-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부터 마추 픽추까지 대부분의 관광객은 버스로 이동합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보다시피 가파른 산 하나를 갈짓자로 올라가는 길이기에..;;
물론 트레커를 위한 계단도 조성되어 있지만, 음, 굳이 제 발로 올라가고 싶다면야 뭐~



가파른 경사 위로 용케 길을 냈다 싶은 산길을 머리가 대략 멍해질만큼 왕복하다보면
드디어 저 앞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입구는 미어터지구요~



입구로부터 적잖이 걸어야 할 줄 알았더니 들어서자마자 거의 곧바로 유적이 시작되는군요.
흔히 '망지기의 집(Casas de los Guardianes)'이라 일컬어지는 작은 건물을 돌아 올라가면...



눈앞에 펼쳐지는 마추 픽추의 전경에 다들 탄성을 지릅니다.
그 첫 번째 포인트에서 다들 사진을 찍겠다고 길게 줄을 서있었는데... (사진 오른쪽 아래)



보다시피 농경을 위해 계단식으로 조성된 지역이라 촬영 포인트는 그 위로도 계속 나오고
심지어 위로 올라갈수록 더 전망이 좋으니 괜히 줄 서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두 번 다시 여기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무슨 소용이람. ㅠㅠ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의 마추 픽추(Machu Picchu)라는 이름은 아마도
일대의 산들 중에서 도시 하나가 올라갈만큼(...) 낮고 평평한 편이기에 붙었지 싶습니다.
해발 고도도 오히려 쿠스코보다 낮은 고작(?) 2,430 미터.



도시의 거주구는 중앙을 가로지르는 녹지에 의해 크게 둘로 양분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서쪽은 각종 신전과 귀족들의 거처가 있었던 걸로 보이고



상대적으로 낮은 동쪽은 하층민들의 집과 창고들이 있었던 걸로 여겨진다는군요.



제가 서있는 반대편 북쪽으로는 메인 광장과 피라미드 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높이 솟은게 '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와이나 픽추(Huayna Picchu).
저 위에서 마추 픽추를 내려보는 풍경이 기막히다는데.. 일일 입장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건
둘째치고 일행이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기도 해서 아예 알아보지도 않았네요.



마지막으로 주거 지역을 둘러싸고있는 계단식 경작지들.
기분 좋게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밭일 하다 발 한 번 헛디디면 저승 직행이야~!?



일단 전망이 좋으니 또 패닝 한 번 돌리고~



마추 픽추는 전날 보았던 오얀타이탐보와 마찬가지로 15세기 잉카 제국의 황제였던
파차쿠티(Pachacuti)와 그의 아들 투팍 잉카 유판키(Túpac Inca Yupanqui) 대에
건설되었다는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둘이 잉카의 건축왕? 벌써 몇 번째냐~)
약 80년간 도시로 기능하다 스페인의 침략이 이루어지면서 일설에는 버리고 도망쳤다고도,
또 다른 일설에는 스페인인들과 함께 구대륙에서 건너온 천연두에 의해 멸망했다고도 하죠.
도시 자체의 경작지만으로는 천 명 전후로 예상되는 인구를 먹여살리기엔 역부족이었으니
타 지역으로부터 고립된 채로 유지될 수 없었다는건 매한가지이긴 합니다만.



원주민들을 통해 스페인 정복자들에게도 산 위에 있는 공중 도시에 대한 정보가 들어갔으나
스페인인들은 험한 산 위에 직접 올라가보기가 귀찮았던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덕분에 이 도시는 300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온전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1911년 잉카의 마지막 도시를 찾던 미국인 탐험가 히람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재발견되어 국제적인 명소로 부각되게 됩니다. 다만 빙엄 자신도 처음에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이 도시가 잉카 최후의 항전지 빌카밤바(Vilkabamba)로 오인되는 일이 아직도 빈번하다네요.
빌카밤바는 서쪽으로 한참 더 들어간 더 깊고 더 외진 곳에 있다고.



높은 곳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추천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하면
가장 중요한 신성한 광장과 피라미드부터 만나게 됩니다.



광장의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마도 가장 주된 역할을 했을 신전.
느리긴 하지만 잉카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지반 침하에 따른 붕괴가 진행되고 있군요.



광장 동쪽의 세 개 창문의 신전.
어깨 너머로 엿들은 외국인 가이드 말로는 앞에 세워진 돌이 해시계 역할을 했다는데...
이 신전도 원래는 짚 지붕이 덮였을텐데? 그럼 그림자가 지지 않을텐데? ...모르겠습니다.



피라미드에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광장으로 내려오면서 건너온 부분이 채석장이었던 듯.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마추 픽추 전체가 커다란 화강암 채석장이었다고도 합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인티와타나(Intihuatana)가 있습니다.
케추아어로 '태양이 묶여있는 기둥'이라는 뜻이 되는 인티와타나는 잉카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각 면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며 그 그림자로 시간 또는 계절을 파악했다고 하죠.
주요 도시마다 최소 하나씩 있었을테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스페인 점령 시기에 모두 파괴되어
현존하는 극소수의 인티와타나 중 하나가 이 마추 픽추에 남아있습니다.
2000년 맥주 광고를 찍다가 카메라 크레인이 스치면서 모퉁이를 깨먹어 큰 소송이 걸렸었대나~



피라미드에서 광장 쪽을 내려다보면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반대쪽은 살벌하기가 아주;;; 잉카 사람들의 노동 환경에는 정말 문제가 많았군요~



이렇게 중앙 광장(Plaza principal)을 건너오면...



도시의 북쪽 끝에서 커다랗고 평평한 신성한 바위(Roca Sagrada)를 만나게 되고,
이 왼쪽으로 와이나 픽추로 올라간는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정신없이 사진을 찍던 저는 고산병에 역시 정신이 없던 일행을 놓치는 바람에;;;



일행을 찾아 작은 집들이 밀집한 주거 지역의 미로를 헤집고 다니다...



태양 신전, 콘도르 신전이 있는 구역은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 와중 광장 끄트머리에 유독 높은 나무가 한 그루 있네? 무슨 의미가 있을 것도 같은데??



아마도 하층민들이 살았을 가장 낮은 구역을 지나...



답답하고 속타는 내 마음을 한가로이 풀을 뜯는 라마가 알 리는 없겠지;;;



마지막의 창고 부근에서도 찾지 못해 혹시 먼저 나갔나 싶어 출구 언저리까지 나가보았다가
그쪽에도 없어 다시 돌아갈랬더니 출구 관리자가 '헤이 아미고~ 너 다시 못들어가 어쩌구~'
정도의 뜻으로 짐작되는 스페인어를 쏼라쏼라! 아니 난 나간게 아니라~ 말이 통해야 말이지!!

그래서 어렵게 온 마추 픽추 후반부는 이렇게 망했습니다. ㅠㅠ



30분쯤 뒤 역시 찾다 지쳐 나온 일행과 만나 한바탕 옥신각신한 뒤에 다시 버스로 내려온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이제보니 버스 승하차장 근처에 세 동물(콘도르, 퓨마, 뱀)과 함께한
잉카 황제상이 있었군요. 딱히 이름이나 특징이 없는걸 보아 특정 인물이 아닌 상징물인듯.



상으로부터 골목 하나 안쪽으로 들어간 광장은 잉카의 건국 시조의 이름을 딴
망코 카팍 광장(Plaza Manco Cápac)인데 정작 중앙에 놓여진 상은 파차쿠티;;
아니 뭐 마추 픽추를 건설한 장본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럼 광장 이름은 또 왜;;;
뒤로 천주교 성당이 보이는게 살짝 아이러니하네요.



이제 철로로 내려와 기차를 타고 다시 쿠스코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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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두드리자 2019/10/04 22:00 # 삭제 답글

    갑자기 튀어나온 "망했습니다"에 당황했습니다. (먼 마추픽추)
  • glasmoon 2019/10/05 14:18 #

    그래도 중요한 2/3 정도는 봤으니까..ㅠㅠ
  • 좀좀이 2019/10/06 08:45 # 삭제 답글

    저기서 축구 즐기면 폐활량 엄청 좋아지겠어요 ㅋㅋ 사진으로 보니 저걸 대체 어떻게 지었는지 참 신기하네요.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 거 같아요.
  • glasmoon 2019/10/07 08:53 #

    나고 자란 환경은 훈련 따위론 어떻게 안되는 걸로..^^;;
    직접 가서 보니 산 자체가 채석장이었다 치면 못지을건 아닌것 같은데, 왜 여기에 도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종교적인 이유나 기념할만한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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