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봉우리

곡절을 조금 겪긴 했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 중 하나인 마추 픽추를 클리어했으니
다음날은 쿠스코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야! 이번엔 더 험한 곳이야!!

세간에 무지개 산으로 알려진 비니쿤카(Vinicunca)를 오르기 위해 마추 픽추와는 반대 방향,
즉 남동쪽으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쪽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것이 비교적 최근인데다
거리는 상당하고 도로 사정은 좋지 않으므로 사실상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동 시간에 자면 되겠다 했건만 비포장 도로의 진동에다 창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흙먼지에
조는둥 마는둥~ 새벽에 출발하여 2시간 정도를 달려가 아침을 먹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 입구 게이트 같은걸 지나는군요.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 여기 무슨 벤츠 스프린터 동호회 정모인가요??
차로 가는건 여기까지, 이제부턴 걸어야 하는데.. 설마 뒤에 보이는 살벌한 산은 아니겠죠??

비니쿤카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어서 동쪽에서 오르는 피투마르카(Pitumarca) 트레일과
서쪽에서 오르는 쿠시파타(Cusipata) 트레일 중 하나를 이용하게 됩니다.
웹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보니 피투마르카 트레일 쪽이 먼저 개발되고 알려진 루트로 보이는데
쿠시파타 트레일 쪽이 도보 구간의 거리나 높이 부담이 덜해 요즘은 이쪽을 주로 통하는 듯?

차에서 내려 장대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박한 산소 농도!
트레일 출발점이 이미 해발 4,600 미터! 3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목적지는 해발 5,000 미터!!

그래도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흙길이어서 호흡이 가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 갈 만합니다.

길을 가다보면 말을 끄는 현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이 계시므로...

힘들겠다 싶으면 말을 타고 올라도 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걸어야지 말은 무슨~
하는 생각에 가격은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땐 그랬지;;;

사람을 태웠든 말았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상관없이 거의 날아다니는 현지인의 위력!

저 멀리서 풀을 뜯는 알파카 무리도 보이고...

양떼는 바로 근처를 지나가네요. 그리고 이제 녹지 않은 눈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춥다고 껴입었던 옷들을 벗기 위해 잠시 멈춰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산세가 장관이군요.
하늘 위에서 보면 알록달록 사탕 한 알에 몰려든 개미 행렬 같을라나~?

경사가 점점 급해지기 시작하면서 쉬는 주기는 점점 짧아집니다.
머리는 어질어질, 다리는 후들후들, 걸음을 100보는 커녕 50보 옮기는 것도 힘에 부치니...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위해 쿠스코에서 가져온 비장의 아이템, 산소 캔을 꺼냈습니다.
이름 그대로 산소를 채워넣은 캔으로 산소 농도 저하에 따른 호흡 곤란을 완화시켜줍니다.
...라는 건 그저 잠깐의 순간 뿐. 금방 도루묵이라 응급용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걸로. -_-

드디어 저 위에 목적지가 보이거나 말거나, 머릿 속엔 운동 부족에 대한 후회 뿐.
주위엔 포기하고 주저앉은 사람, 심지어 고통이 심한지 우는 사람도 있더란..;;

마지막 구간은 정말 오기로 올랐던 것 같습니다. 코스 오른쪽의 줄은 잡고 오르라는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현지인들에겐 신성한 구역이라는 듯.

땅과 발만 보며 악으로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다 왔군요. 무지개의 산 비니쿤카.

험악한 산들 사이에 끼어서 그저 예쁘장한 언덕으로 보이지만 자체로 해발 5,200 미터인 산.
특유의 색상은 다양한 광물 성분 때문인데, 광물을 다량 함유한 지층이 수직으로 세워져
지표까지 드러나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네요.

이를테면 흰색은 석영, 붉은색은 철, 녹색은 마그네슘, 노란색은 황, 기타등등... 같은 거죠.
산 위에는 콘도르 무리가 앉아있었는데 날아오르거나 내려앉는걸 찍고 싶어도 손가락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무리무리. 능선 위라서 그런지 바람과 추위가 어마어마~

일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뽀샵질이나 후보정 꽤나 한 걸로 생각했구만
정말 이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니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올라온 보람이 있어! ㅠㅠ
알고 맞춰서 온 건 아닌데 선명한 색상을 보려면 겨울에 건기인 8월이 가장 좋다네요.
그 와중에도 얼은 손가락을 가지고 패닝 한 바퀴!

좀 쉬면서 숨을 고르고 나자 이제야 주위가 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올라온 반대편 등성이의 오솔길은 아마도 피투마르카 트레일이겠죠?

그 뒤로 멀리 또 높이 보이는 순백의 봉우리는 해발 6,385 미터의 아우산가테(Ausangate).
5천 미터도 숨이 깔딱깔딱 하구만, 거기가 대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야??
코스코 부근 일대의 최고봉으로 잉카 신화에도 등장한다 캅니다.

줄을 따라 저 멀리 산을 타고넘는 트레일 코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저에겐 무리무리.

분명 올라온 길이구만 전혀 다르게 보이네요. 내가 이런 곳을, 이런 산을 올랐단 말이냐~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제가 해발 5천 미터를 찍을 일은 다시 없겠죠.

아시아의 관광객이 그러거나 말거나 풀 뜯기에 여념이 없는 알파카들.

눈 쌓인 높은 벽을 배경으로 자연 그대로의 초지에서 말을 끄는 현지인이라니,
마치 무슨 오지 탐사 프로그램의 카메라맨이라도 된 기분이네요.
잠깐(?)의 산행을 위해 귀중한 하루를 보람있게 쓰고, 다음은 정말(!) 쿠스코입니다.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곡절을 조금 겪긴 했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 중 하나인 마추 픽추를 클리어했으니
다음날은 쿠스코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야! 이번엔 더 험한 곳이야!!

세간에 무지개 산으로 알려진 비니쿤카(Vinicunca)를 오르기 위해 마추 픽추와는 반대 방향,
즉 남동쪽으로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이쪽은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것이 비교적 최근인데다
거리는 상당하고 도로 사정은 좋지 않으므로 사실상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동 시간에 자면 되겠다 했건만 비포장 도로의 진동에다 창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흙먼지에
조는둥 마는둥~ 새벽에 출발하여 2시간 정도를 달려가 아침을 먹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더 올라가니 입구 게이트 같은걸 지나는군요.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 여기 무슨 벤츠 스프린터 동호회 정모인가요??
차로 가는건 여기까지, 이제부턴 걸어야 하는데.. 설마 뒤에 보이는 살벌한 산은 아니겠죠??

비니쿤카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가 있어서 동쪽에서 오르는 피투마르카(Pitumarca) 트레일과
서쪽에서 오르는 쿠시파타(Cusipata) 트레일 중 하나를 이용하게 됩니다.
웹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보니 피투마르카 트레일 쪽이 먼저 개발되고 알려진 루트로 보이는데
쿠시파타 트레일 쪽이 도보 구간의 거리나 높이 부담이 덜해 요즘은 이쪽을 주로 통하는 듯?

차에서 내려 장대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서는 순간 온몸으로 느껴지는 희박한 산소 농도!
트레일 출발점이 이미 해발 4,600 미터! 3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목적지는 해발 5,000 미터!!

그래도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흙길이어서 호흡이 가쁘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면 갈 만합니다.

길을 가다보면 말을 끄는 현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이 계시므로...

힘들겠다 싶으면 말을 타고 올라도 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걸어야지 말은 무슨~
하는 생각에 가격은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땐 그랬지;;;

사람을 태웠든 말았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상관없이 거의 날아다니는 현지인의 위력!

저 멀리서 풀을 뜯는 알파카 무리도 보이고...

양떼는 바로 근처를 지나가네요. 그리고 이제 녹지 않은 눈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춥다고 껴입었던 옷들을 벗기 위해 잠시 멈춰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산세가 장관이군요.
하늘 위에서 보면 알록달록 사탕 한 알에 몰려든 개미 행렬 같을라나~?

경사가 점점 급해지기 시작하면서 쉬는 주기는 점점 짧아집니다.
머리는 어질어질, 다리는 후들후들, 걸음을 100보는 커녕 50보 옮기는 것도 힘에 부치니...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위해 쿠스코에서 가져온 비장의 아이템, 산소 캔을 꺼냈습니다.
이름 그대로 산소를 채워넣은 캔으로 산소 농도 저하에 따른 호흡 곤란을 완화시켜줍니다.
...라는 건 그저 잠깐의 순간 뿐. 금방 도루묵이라 응급용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는 걸로. -_-

드디어 저 위에 목적지가 보이거나 말거나, 머릿 속엔 운동 부족에 대한 후회 뿐.
주위엔 포기하고 주저앉은 사람, 심지어 고통이 심한지 우는 사람도 있더란..;;

마지막 구간은 정말 오기로 올랐던 것 같습니다. 코스 오른쪽의 줄은 잡고 오르라는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현지인들에겐 신성한 구역이라는 듯.

땅과 발만 보며 악으로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다 왔군요. 무지개의 산 비니쿤카.

험악한 산들 사이에 끼어서 그저 예쁘장한 언덕으로 보이지만 자체로 해발 5,200 미터인 산.
특유의 색상은 다양한 광물 성분 때문인데, 광물을 다량 함유한 지층이 수직으로 세워져
지표까지 드러나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네요.

이를테면 흰색은 석영, 붉은색은 철, 녹색은 마그네슘, 노란색은 황, 기타등등... 같은 거죠.
산 위에는 콘도르 무리가 앉아있었는데 날아오르거나 내려앉는걸 찍고 싶어도 손가락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무리무리. 능선 위라서 그런지 바람과 추위가 어마어마~

일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뽀샵질이나 후보정 꽤나 한 걸로 생각했구만
정말 이 광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니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올라온 보람이 있어! ㅠㅠ
알고 맞춰서 온 건 아닌데 선명한 색상을 보려면 겨울에 건기인 8월이 가장 좋다네요.
그 와중에도 얼은 손가락을 가지고 패닝 한 바퀴!

좀 쉬면서 숨을 고르고 나자 이제야 주위가 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올라온 반대편 등성이의 오솔길은 아마도 피투마르카 트레일이겠죠?

그 뒤로 멀리 또 높이 보이는 순백의 봉우리는 해발 6,385 미터의 아우산가테(Ausangate).
5천 미터도 숨이 깔딱깔딱 하구만, 거기가 대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야??
코스코 부근 일대의 최고봉으로 잉카 신화에도 등장한다 캅니다.

줄을 따라 저 멀리 산을 타고넘는 트레일 코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저에겐 무리무리.

분명 올라온 길이구만 전혀 다르게 보이네요. 내가 이런 곳을, 이런 산을 올랐단 말이냐~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제가 해발 5천 미터를 찍을 일은 다시 없겠죠.

아시아의 관광객이 그러거나 말거나 풀 뜯기에 여념이 없는 알파카들.

눈 쌓인 높은 벽을 배경으로 자연 그대로의 초지에서 말을 끄는 현지인이라니,
마치 무슨 오지 탐사 프로그램의 카메라맨이라도 된 기분이네요.
잠깐(?)의 산행을 위해 귀중한 하루를 보람있게 쓰고, 다음은 정말(!) 쿠스코입니다.
저 많은 낙서는 누가 그렸을까
사막에서 모래 장난을
세상 끝의 지배자
공중 도시를 찾아서
늙은 봉우리
덧글
언젠가 페루 가시게 되면 꼭 가보세요.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거든요.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10월 21일 줌(http://zum.com) 메인의 [여행]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여행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