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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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위의 성당들 by glasmoon

황금의 거리

남미 여행에서도 계속되는 성당 여행과의 콜라보(...), 잉카의 고도 쿠스코의 성당들입니다.



피사로를 비롯한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이 쿠스코를 점령하고 잉카 제국을 무너뜨린 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스페인의 지배 도시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가톨릭 원리주의에 입각한 그들에게 잉카의 고유 신앙은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잉카의 창조신 위라코차(Huiracocha)를 모시는 키스와르칸차(Kiswarkancha)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대성당을 다시 세우는 것은 단순한 선교 및 포교와는 다른 매우 중요한 일이었죠.



쿠스코의 성모 승천 대성당(Catedral Basílica de la Virgen de la Asunción), 일반적으로
쿠스코 대성당(Catedral del Cuzco)으로 통칭되는 이 성당은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쿠스코 점령 후 4반세기가 지난 1559년에 시작해서 1654년 완성되었으니 95년이 걸렸네요.
스페인의 오래된 대성당들에 비하면 비교적 젊기 때문에 스페인식 고딕에다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고 바로크 양식의 영향까지 살짝 받은데다 남미 고유의 특질까지 섞인 독특한 모습이죠.
건축을 위한 석재는 대부분 북쪽 요새 삭사이와망(Sacsayhuamán)에서 가져왔습니다.



성당의 주심부에서는 은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주 제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국내의 여행기들에는 저기에 은 300톤이 들었니 식민지를 쥐어짠 증거니 하는 얘기가 많은데
물론 식민지 착취야 당연히 이루어졌겠지만 300톤이라는 정신나간 양은 당연히 아니거니와
원래는 목재였던 것을 19세기 초 기부받은 은으로 덮은 거라고 하는군요.



여기서 다시금 잉카와 스페인과 쿠스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1532년 피사로의 원정대 일행이 얘기치않은 타이밍에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스페인 국왕의 명에 의한 요구문(Requerimiento)을 읽어줘야만 했습니다.
명목이야 원주민의 권리를 위한다지만 내용인즉 원주민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 교황과
스페인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상 종교를 이용해 정복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죠.
이때 이걸 읽은 사람이 천주교 수사였던 비센테 데 발베르데(Vicente de Valverde)였는데
적(?)의 본진에서 그것도 황제 앞에서 이런걸 읽어야 한다는 공포와 압박에 눌린 상태에서
아타우알파가 난생 처음 보는 책(기도서)을 내동댕이치자 신을 모독했다 소리지르며 도망쳤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역시나 공포 속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스페인 군인들은 정줄을 놓고 닥돌,
학살 끝에 아타우알파를 사로잡는 특대급 해프닝으로, 종국에는 잉카의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발베르데 수사는 이후 일행에게 몇 번이나 닥쳤던 위기를 잘 넘기고
살아남아 이 쿠스코 교구의 초대 주교이자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최초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생의 대부분을 쿠스코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지냈지만 1541년 피사로의 암살에 휘말려
도망하던 중 지금의 에콰도르 푸나 섬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당했으니 끝은 좋지 못했군요.



모국 스페인의 성당들처럼 크고작은 그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성당의 벽과 기둥들 중에
가장 알려진 그림은 이것 "Pintura Senor de los Temblores" 라는군요. 1650년 대지진 당시의
공포와 피해를 묘사한 그림으로 쿠스코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고.



성당의 그림 대부분은 스페인 화가들로부터 서양 미술을 배운 잉카 원주민들이 그렸으며
이를 쿠스코 학파(Cusco School)라 칭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완성된 작품에 서명을 하지도,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지만 이 "최후의 만찬"을 그린 마르코스 사파타(Marcos Zapata)는
소수의 예외에 속합니다. 테이블 중앙에 양 대신 남미가 원산인 기니피그(혹은 친칠라)가 있고
오른쪽 아래에서 전면을 보고있는 유다를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닮게 그렸다 카더라가 있는데
글쎄요 아무리 원주민 출신이라고는 해도 그럴 정황은 그닥;; 그저 호사가들의 억측이 아닐지?



쿠스코 대성당의 왼편에서 광장을 마주보고있는 성당은 쿠스코 예수회 성당,
Iglesia de la Compañía de Jesús 입니다. 이 자리는 아타우알파의 선황 우아이나 카팍의
왕궁(아타우알파는 황제가 되자마자 스페인과 엮여버려서 궁전을 만들 틈이 없었죠)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어졌습니다. 도시 중심에 신전과 왕궁을 허물고 큰 성당 둘이라니, 좋은 센스죠?



쿠스코 대성당보다 17년 늦은 157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위에 그림에서도 본 것처럼
1650년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어 작지않은 변경 끝에 1668년 완공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바로크에 매우 충실한 모습이 되었죠.



매우 화려한 성당이지만 건축의 규모로나 소장한 미술품으로나 쿠스코 대성당에는 밀리다보니,
게다가 대성당과 달리 입장료를 받다보니 구태여 찾아들어오는 관광객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일부러 들어오는 사람의 상당수는 이 그림 때문일 겁니다.



쿠스코에서의 어느 결혼식을 묘사한 그림으로 가운데 왼쪽 부분에 그려진 이날의 주인공 중
신랑은 이 성당이 속한 예수회의 창립자이자 성인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cio de Loyola)의
조카 마르틴 가르시아 데 로욜라(Martín García Oñas de Loyola)이고, 신부는 잉카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Túpac Amaru)의 조카 클라라 베아트리스 코야(Clara Beatriz Qoya)입니다.
앞서 피사로가 아타우알파의 여동생과 결혼한 바 있지만 피사로는 원래 미천한 신분이었기에
양가가 모두 고귀한 핏줄인 걸로는 이 결혼이 사실상 처음이었고, 이 둘의 후손들은 본국과
식민지 양쪽에 영지를 가진 집안이 되었죠.



마지막으로 앞선 포스트에서 둘러보았던 코리칸차(Coricancha)의 토대 위에 세워진
산토 도밍고 수도원(Convento de Santo Domingo)에 대해서도 짤막히.



1633년에 봉헌되었으나 1650년 지진으로 대파되어 30년에 걸쳐 다시 재건했더니
1950년 지진으로 다시 대파... 그 와중에도 기반이 된 코리칸차는 굳건히 유지되면서
잉카 축조술의 대단함을 부각시키는데 들러리가 되어버린(...) 불행한 운명의 성당입니다.
그래도 앞서 두 성당처럼 규모가 크진 않았던데다 코리칸차의 대부분을 정원과 뜰로 품으면서
지금까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시켰다는데 아주 중요한 의의가 있겠네요.

후~ 여기까지 쿠스코에서 들어가보았던 세 성당이었습니다.
남미(페루)의 성당들의 보편적인 특질에 대해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라나요?


황금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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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알트아이젠 2019/10/14 22:03 # 답글

    이야 멋진 모습이군요.
  • glasmoon 2019/10/15 16:29 #

    굉장히 화려한데 유럽과는 또 다른 독특한 멋이 있습니다. ^^
  • 두드리자 2019/10/14 23:08 # 삭제 답글

    페루 사람들은 저 성당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네요.
  • glasmoon 2019/10/15 16:30 #

    저도 정말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정작 페루 사람들의 종교 또한 대부분 가톨릭이니까요.
    일단 피사로는 악마(...) 취급이라고 합니다마는.
  • 노이에건담 2019/10/15 11:54 # 답글

    정작 지진이 일어났을때 유럽 정복자들이 지은 성당은 무너졌지만 잉카 원주민들의 건물은 끄떡없었죠.

  • glasmoon 2019/10/15 16:32 #

    직접 보니 납득을 하게 됩니다. 저렇게 다 맞물리게 쌓아놨으니 꿈쩍할 리가~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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