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 위의 성당들

남미 여행과 성당 여행의 콜라보(...) 시리즈, 쿠스코 편에 이어 리마 편입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태평양 연안에 리마를 만들기로 결정한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당시로서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성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인티 신전과 쿠스코 왕자의 궁전 터에 1535년 착공하여 1538년 소박한 성당이 완공되었지만
도시의 성장 및 팽창과 함께 금새 부족해져 1551년 두 번째 성당을 거쳐 대대적인 공사 끝에
1649년 현재의 세 번째 성당(Basílica Catedral Metropolitana de Lima)이 세워졌습니다.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위에 바로크나 신고전주의 등이 섞여있는 모양새인데
외관상 가장 뚜렷한 특징이 되는 것은 석조 건물 밖으로 돌출된 목조 테라스입니다.
엄밀히 보면 성당 본관이 아닌 주교 관저의 일부지만서도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죠.
일반적으로 섬세한 목제 장식이 옥외의 환경에 노출되면 비나 눈에 젖어 곧 썩어버리나
연중 비가 거의 오지않는 리마이기에 가능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성당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사도들의 상과 함께, 중앙 상단에 예수 성심상이 보입니다.
유독 예수상만이 색깔이 짙은 이유는... 글쎄요, 석재의 차이인지 노출된 환경의 차이인지?

대성당은 식민지를 대표하는 얼굴 답게 본국 스페인 못지않도록 화려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애초에 세비야 대성당을 본뜬 알론소 벨트란(Alonso Beltrán)의 설계는 더 크고 화려했으나
무지막지한 비용이 예상되어 금새 중단되었고, 프란시스코 베세라(Francisco Becerra)가
크기와 규모를 줄여 설계를 바꾼 뒤에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고.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산출하던 식민지에서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나 봅니다.
근데 이보다 더 크고 화려한걸 만들려 했다면 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성모 공양이 지극한 남미답게 회랑 좌우의 예배당들 중에서 역시 이곳이 가장 돋보이네요.
지하 무덤 유적도 일부 공개되어 있구요.

하지만 이 성당에서 가장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입구 오른편의 이 곳입니다.
바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유해가 놓여있는 곳이죠.

잉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측의 2인자 디에고 데 알마그로(Diego de Almagro)는
황제 아타우알파의 생포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재산 배분을 받지 못하여 불만이 많았고
결국 쿠스코에서 반란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끝에 1538년 참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불씨는 꺼지지 않아, 식민지 페루와 신도시 리마의 건설에 열중하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41년 살아남은 알마그로 일파의 습격을 받고 살해되었습니다.
과연 남미 최대의 제국을 무너뜨린 사나이다운 말로였달까.
알마그로의 저주(?)는 피사로를 죽이고도 끝나지 않았으니, 그 일파 중 몇몇은 살아남아
빌카밤바의 잉카 망명정부로 도주했다가 황제 망코 잉카마저 암살하게 되었으니 이건 뭐;;

리마 대성당이 있는 마요르 광장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가면 상아색 종탑이 우뚝 솟은
산 프란시스코 성당 수도원(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de Lima)을 만납니다.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을 두고 오른편의 높은 건물이 성당, 왼편의 낮은 건물이 수도원인데
볼리비아 라파스의 무리요 광장처럼 여기도 비둘기가 엄청나게 많아요. 많아도 너무 많아;;

전면부는 아예 비둘기 집이 되어버렸고, 벽이 하필 밝은 색에다 적당한 주름까지 있다보니
줄지어 앉은 새들이 마치 어딘가의 벌레처럼 보이기도? -ㅁ-

1674년 완성된 이 성당의 내부는 밝은 색 기반에 크고 화려한 무늬가 드러나있다는데서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 양식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왼편 맨 앞에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 성 프란치스코의 예배당.
라파스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도 그렇고, 빈자들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남미에서 특히 더욱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종종 보는 것처럼 성상에 옷을 입히고 화려한 장식과
조명을 비추는 게 남미 성당들의 특징입니다. 쿠스코에서는 촬영 금지여서 이제사..^^;;

2층 성가대석에서 내려다본 성당 내부 전경.

가이드를 동반한 수도원 투어를 신청하면 이 성가대석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이 수도원에 유명한 볼거리가 있다는 뜻이겠죠?
그 중 첫 번째는 약 2만 5천 권의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도서관입니다.
소장 목록에는 최초의 스페인어 사전, 1571년판 성경 인쇄본 등등이 있다고.

두 번째는 대규모의 지하 묘지(Catacumbas)입니다. 묘지라기보다 납골당에 가까운데
크고작은 수많은 방들에 약 2만 5천 명의 유골이 '예술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의 장서 수와 비슷한 것은 그저 우연이겠죠^^;?

세 번째는 수도원의 안뜰, 중정입니다.
성당 내부의 인테리어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이 정원은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정원을 둘러싼 회랑을 1620년대 세비야에서 만들어진 타일이 덮고 있거든요.
이런 대규모 타일은 스페인의 톨레도나 그라나다에서도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듯??
이 타일의 하나하나가 물론 아름답지만 왼쪽 기둥에서처럼 위치가 어긋난 것들도 보이는데
400년의 세월동안 여러 차례의 지진과 풍파를 겪으면서 손상이 있었고 그 복구 과정에서
급한대로? 무성의하게? 아무 곳에나 붙여넣은 것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그마저 이 성당 역사의 일부가 되었지만요.
다음은 드디어 남미 여행기 최종편! 이 성당들을 포함하고 있는 리마 디스트릭트입니다.
꽃의 거리

남미 여행과 성당 여행의 콜라보(...) 시리즈, 쿠스코 편에 이어 리마 편입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태평양 연안에 리마를 만들기로 결정한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당시로서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성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인티 신전과 쿠스코 왕자의 궁전 터에 1535년 착공하여 1538년 소박한 성당이 완공되었지만
도시의 성장 및 팽창과 함께 금새 부족해져 1551년 두 번째 성당을 거쳐 대대적인 공사 끝에
1649년 현재의 세 번째 성당(Basílica Catedral Metropolitana de Lima)이 세워졌습니다.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위에 바로크나 신고전주의 등이 섞여있는 모양새인데
외관상 가장 뚜렷한 특징이 되는 것은 석조 건물 밖으로 돌출된 목조 테라스입니다.
엄밀히 보면 성당 본관이 아닌 주교 관저의 일부지만서도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죠.
일반적으로 섬세한 목제 장식이 옥외의 환경에 노출되면 비나 눈에 젖어 곧 썩어버리나
연중 비가 거의 오지않는 리마이기에 가능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성당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사도들의 상과 함께, 중앙 상단에 예수 성심상이 보입니다.
유독 예수상만이 색깔이 짙은 이유는... 글쎄요, 석재의 차이인지 노출된 환경의 차이인지?

대성당은 식민지를 대표하는 얼굴 답게 본국 스페인 못지않도록 화려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애초에 세비야 대성당을 본뜬 알론소 벨트란(Alonso Beltrán)의 설계는 더 크고 화려했으나
무지막지한 비용이 예상되어 금새 중단되었고, 프란시스코 베세라(Francisco Becerra)가
크기와 규모를 줄여 설계를 바꾼 뒤에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고.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산출하던 식민지에서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나 봅니다.
근데 이보다 더 크고 화려한걸 만들려 했다면 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성모 공양이 지극한 남미답게 회랑 좌우의 예배당들 중에서 역시 이곳이 가장 돋보이네요.
지하 무덤 유적도 일부 공개되어 있구요.

하지만 이 성당에서 가장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입구 오른편의 이 곳입니다.
바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유해가 놓여있는 곳이죠.

잉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측의 2인자 디에고 데 알마그로(Diego de Almagro)는
황제 아타우알파의 생포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재산 배분을 받지 못하여 불만이 많았고
결국 쿠스코에서 반란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끝에 1538년 참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불씨는 꺼지지 않아, 식민지 페루와 신도시 리마의 건설에 열중하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41년 살아남은 알마그로 일파의 습격을 받고 살해되었습니다.
과연 남미 최대의 제국을 무너뜨린 사나이다운 말로였달까.
알마그로의 저주(?)는 피사로를 죽이고도 끝나지 않았으니, 그 일파 중 몇몇은 살아남아
빌카밤바의 잉카 망명정부로 도주했다가 황제 망코 잉카마저 암살하게 되었으니 이건 뭐;;

리마 대성당이 있는 마요르 광장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올라가면 상아색 종탑이 우뚝 솟은
산 프란시스코 성당 수도원(Basílica y convento de San Francisco de Lima)을 만납니다.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을 두고 오른편의 높은 건물이 성당, 왼편의 낮은 건물이 수도원인데
볼리비아 라파스의 무리요 광장처럼 여기도 비둘기가 엄청나게 많아요. 많아도 너무 많아;;

전면부는 아예 비둘기 집이 되어버렸고, 벽이 하필 밝은 색에다 적당한 주름까지 있다보니
줄지어 앉은 새들이 마치 어딘가의 벌레처럼 보이기도? -ㅁ-

1674년 완성된 이 성당의 내부는 밝은 색 기반에 크고 화려한 무늬가 드러나있다는데서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 양식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왼편 맨 앞에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 성 프란치스코의 예배당.
라파스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도 그렇고, 빈자들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남미에서 특히 더욱 사랑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종종 보는 것처럼 성상에 옷을 입히고 화려한 장식과
조명을 비추는 게 남미 성당들의 특징입니다. 쿠스코에서는 촬영 금지여서 이제사..^^;;

2층 성가대석에서 내려다본 성당 내부 전경.

가이드를 동반한 수도원 투어를 신청하면 이 성가대석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이 수도원에 유명한 볼거리가 있다는 뜻이겠죠?
그 중 첫 번째는 약 2만 5천 권의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도서관입니다.
소장 목록에는 최초의 스페인어 사전, 1571년판 성경 인쇄본 등등이 있다고.

두 번째는 대규모의 지하 묘지(Catacumbas)입니다. 묘지라기보다 납골당에 가까운데
크고작은 수많은 방들에 약 2만 5천 명의 유골이 '예술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의 장서 수와 비슷한 것은 그저 우연이겠죠^^;?

세 번째는 수도원의 안뜰, 중정입니다.
성당 내부의 인테리어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이 정원은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정원을 둘러싼 회랑을 1620년대 세비야에서 만들어진 타일이 덮고 있거든요.
이런 대규모 타일은 스페인의 톨레도나 그라나다에서도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듯??
이 타일의 하나하나가 물론 아름답지만 왼쪽 기둥에서처럼 위치가 어긋난 것들도 보이는데
400년의 세월동안 여러 차례의 지진과 풍파를 겪으면서 손상이 있었고 그 복구 과정에서
급한대로? 무성의하게? 아무 곳에나 붙여넣은 것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그마저 이 성당 역사의 일부가 되었지만요.
다음은 드디어 남미 여행기 최종편! 이 성당들을 포함하고 있는 리마 디스트릭트입니다.
꽃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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