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수상 후 며칠이 지나도록 "기생충"의 후폭풍은 가실 줄은 모르네요.
어젯밤에는 넷플릭스를 켰더니 추천 목록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주루룩 떠있길래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더"를 다시 보면서 또다시 전율했었습니다마는
이번에 "기생충"에 밀려 고배를 마신 영화들 중에 이것도 있었죠. 바로 토드 필립스의 "조커".

작품상에서는 밀렸어도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여하며
'조커 배우 = 오스카'라는 영광의 전통을 이어가게된 (아 지못미 자레드 레토) 이 작품에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 장면의 뒷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블루레이에 수록되었더군요.
화자인 감독 토드 필립스에 따르면 애초의 각본으로는 아서 플렉이 '그 범죄'를 저지른 뒤
한참을 달려 공중화장실로 도망치고서 흉기인 권총을 버리고 광대 분장을 지우는 거였다고.

그러나 다소 뻔한 이 장면에 대해 토드 필립스도 호아킨 피닉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관건은 조커로 변이? 흑화? 하기 시작한 아서 플렉이 과연 범행 흉기나 증거 따위에
연연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죠.

토드 필립스와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아서 플렉의 캐릭터를 구축해가던 호아킨 피닉스도
캐릭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 장면의 각본이 스스로 불만스러웠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서 궁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돌파구는 음악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첼리스트이자 작곡가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의
작업물을 받은 필립스는 매우 흡족하여 밤새 들었고, 그것을 피닉스에게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피닉스는 그 음악을 들으며 즉흥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마치 쓰레기통을 기어다니던 볼품없는 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달까.
제가 작년에 본 백여 편의 영화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ㅠㅠ
호아킨 피닉스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그나저나 함께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조커의 사운드트랙은 왜 정발되지 않는 것이냐!
물리 매체를 선호하는 구시대 아재는 해외 주문을 하란 말이냐!?
덧글
총 숨기고 세수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정말 ㅜㅜ
그녀에서는 특유의 약간 어설픈 느낌이 마냥 귀엽게만 보였는데 조커에 이르러선 그 어설픔이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소름이 끼쳤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