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자동차 모형을, 그것도 포드 v 페라리를 만들겠다고 요란 피운것 치고는 잠잠했죠?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저에게도 닥치는 바람에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져서..ㅠㅠ
대신이라긴 뭣하지만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페라리 330 P가 갖는 역사와 위치를 알아봅시다.

페라리에게 르망 24 레이스에서 첫 우승의 영광을 안긴 것은 1954년의 375 Plus 였습니다.
그 전해에 활약했던 375 MM(MM은 밀레 밀리아 레이스를 의미)을 발전 개량한 것으로
르망, 밀레 밀리아, 뉘르부르크링, 몬차, 스파, 데이토나 등 전세계 유명 레이스를 묶어
1953년에 시작된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페라리가 타이틀을 방어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었죠. 이 375 Plus를 가지고 페라리는 1954년 챔피언십도 따냅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5년의 챔피언십은 메르세데스 벤츠 300 SLR이 그야말로 평정한 해였고,
그와는 별도로 르망 레이스의 왕좌는 55년부터 57년까지 재규어 D 타입의 차지였습니다.
그리고 1958년부터 유명한 250 TR, 테스타로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59년은 애스턴 마틴에게 내줬지만 60년과 61년, 62년의 개량형 330 TRI까지 줄줄이~

1963년 FIA가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프로토타입 클래스(현재 르망의 LMP)를 새로이
만들면서 페라리 또한 이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레이스카, 즉 P 시리즈를 제작합니다.
그 첫 번째가 페라리 최초의 미드십 레이스카, 250 P 였죠.
이 또한 승승장구하며 레이스를 석권했는데 이 시기가 르망에서 페라리의 전성기였으니...

1964년부터 페라리는 250 P의 후속 모델을 275 P와 330 P 두 가지로 개발합니다.
둘 모두 250 P의 섀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275 P는 테스타로사 때부터 이어지는
3.3리터 엔진을 계속 손봐서 사용한 반면 330 P는 4리터 콜롬보 엔진을 쓰는 차이가 있었죠.
즉 출력이 낮지만 가볍고 민첩한 275 P와 무겁지만 출력에 여유있는 330 P가 서로 경쟁한 셈.
이는 효과를 거두어 1964년 1위(275 P)와 2, 3위(330 P)를 모두 페라리가 휩쓸게 되었지만
1965년의 개량형, 275 P2와 330 P2는 내구성에 문제를 드러내어 모두 완주에 실패하면서
우승은 구형(...) 시판차인 250 LM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리고 드디어 1966년, 영화를 통해 다들 잘 아시는 포드 GT40이 우승을 거머쥔 해이죠.
GT40과 경쟁한 330 P3는 역시나 사고와 트러블을 통해 리타이어하여 완주에 실패하면서
이대로 흑역사가 된 것 같지만 이듬해 330 P4가 거둔 설욕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엔초 페라리가 절치부심한 330 P4는 1967년 데이토나에서 전 해의 포드와 똑같이 1-2-3위로
같이 들어오며 똑같은 모양으로 복수했죠. 그러나 르망에서만큼은 계속 콩라인..ㅠㅠ

FIA의 룰 변경을 문제삼아 1968년 레이스를 보이콧한 페라리는 1969년 312 P로 돌아왔으나
썩 신통치 않았고, 1970년에는 완전히 일신한 512 S를 가지고 레이스에 임합니다.
그런데 포드가 물러나고 GT40이 구식화되며 다시금 페라리의 세상이 되나 했더니만
이번에는 917K를 앞세운 포르쉐의 침공이!

포르쉐의 917K에 패배한 페라리는 512의 추가 개발을 포기하고, F1 차량인 312 B의 엔진을
기반으로 한 312 PB를 1971년 챔피언십에 투입합니다. 312 PB는 레이스들을 석권하며
페라리에게 다시금 챔피언십 우승을 안겼지만 엔진의 내구성이 의심되어 르망에는 아예
출전을 하지 않았죠. 마트라의 추격에 떠밀려 나간 72년 레이스에서는 위태위태 속 2위.
그리고 1973년이 끝날 무렵 페라리는 F1에 집중하기 위해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철수를
선언하고, 이후 르망에서 페라리의 모습은 양산차 기반의 GT 클래스에서만 보이게 됩니다.
현재 내노라 하는 굴지의 대기업들도 F1 혹은 르망 양쪽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보다 규모가 작은 페라리 입장에서 선택과 집중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74년부터 F1에 올인하면서, 또 니키 라우다를 영입하면서 75년부터 77년까지 3년 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구요. 근래 수시로 바뀌는 F1의 규정에 불만이 생길 때면
F1을 떠나 르망 24시로 갈 수 있다는 엄포를 놓고는 하는데, 뭐 그것도 한두번이지 이제와서
페라리가 정말 F1에서 철수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언젠가 르망으로 돌아온다면 그 또한 기념비적이면서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긴 합니다.
...여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의 페라리의 역사였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땜빵 포스팅 말고 제작기를 올려야 할텐데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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