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glasmoon.egloos.com

포토로그



우주원숭이는 살인을 꿈꾸는가 by glasmoon



작년에 개봉한 주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취향을 크게 탄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일 겝니다.
제임스 그레이의 SF 대작(?) "애드 아스트라". 저야 사실적인 SF라면 껌뻑 죽는데다 작가적
성향의 작품도 좋아하므로 열광하며 보았지만 일반 관객들의 감상은 극과 극으로 갈렸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적인 SF'라기엔 과학적인 오류가 꽤 많았죠.
생명체를 탐지하러 외우주로 나간다면서 오십보 백보(...)인 해왕성 궤도에 머물러 있다던가,
달 기지 내부가 충분한 설명 없이 지구 표면과 같은 1G의 중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던가,
일반 우주선에 별도의 처리나 장치 없이 핵폭발을 추진력으로 삼아 귀환한다던가 등등.



이렇게 지적되는 부분들에 대해, 영화 자체가 그다지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이 아니다보니
미처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던가 이야기 전개를 위해 편집했다는 식으로
적당히 이해해야 하는 형편입니다만 그 와중에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건 이 장면이었습니다.
달을 떠나 화성으로 향하던 세피우스 우주선이 조난 구조를 위해 멈춰서는 바로 이것.

우주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지구 상공에서 귀엽게 깨작대는 정도를 벗어나
다른 천체로 옮겨가려면 철저하게 궤도 이동이 주가 되며 또 막대한 속도를 필요로 합니다.
현재의 과학 기술로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데 최소한 (지근거리) 6개월 이상이 걸리지만
영화상에서는 보름 정도로 언급되었으니 아주 획기적인 고성능 엔진이 개발되었나 보군요.
하지만 소요 시간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속도가 빠르다는 것일텐데, 막대한 연료 소모와
달 궤도 스윙바이를 통해 얻은 속도를 (아무리 인도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다 까먹어버린다?
그럼 그 뒤 재가속은 어떻게 하려고?? 일반적인 우주과학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얘기죠.
빵형.. 아니 맥브라이드 소령, 임무 속행을 주장한 당신이 옳았다니까???



이 골치아픈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조난 당한 그 문제의 우주 정거장부터 일단 살펴봅시다.
화면상으로는 망망대해의 조각배처럼 그려졌지만 무의미한 곳에 정거장이 있을 리는 없고,
작중 세피우스호 태너 선장의 말로는 노르웨이 국적의 베스타 9 이며 소행성 토로를 돌면서
생의학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라고 합니다. 역시 이것도 소행성의 궤도 위에 있었던 거죠.
음, 그런데 소행성이라고? 소행성들은 대부분 화성과 목성 사이에 모여있는데?
세피우스는 이제 막 달을 출발해서 목성은 커녕 화성을 향해 가던 참이었는데??



제가 이까지 들여다보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단서가 없으니 혹시나 싶어 각본을 팠습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영화 각본이 다 공개되어 있고 클릭 몇 번이면 바로 볼 수 있으니 좋네요.
문제의 장면 전후로 훑다보니 베스타 정거장에 대해 지문으로 설명된 짧은 문장 속에서
영화 속 대사나 일반적인 추측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던 중요한 단서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소행성 토로를 '지구의 두 번째 달'로 칭한 것! 토로가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는 뜻이죠.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는 알 수 없어도 소행성(또는 혜성)이 지구 중력에 잡혀있단 얘긴데
뭐야, 호칭부터 그냥 우주세기의 루나 2잖아!?

이걸 토대로 이야기 속에 말이 되도록 끼워넣자면, 토로 또한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므로
달에서는 상대적으로 가까우며, 세피우스는 거의 출발하자마자 조난 신호를 받은게 됩니다.
아직 화성까지 갈만큼 본격적으로 가속하기 전일 수도 있고, 토로의 크기와 무게에 따라서는
스윙바이를 할 수도 있겠.. 엄 그건 무리려나. 물론 토로의 궤도에 정거장이나 유인 우주선이
또 없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써지'의 효과로 대부분 가동 불능.. 인 건지도. 음음.



물론 위의 가설은 최대한 느슨한 기준에서 비과학적 상상을 더해 제가 멋대로 붙인 것이고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엄격한 계산과 통제 아래에서 실행되며 오차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우주 여행을 감안하면 하드 SF라기엔 '조금 많은' 영화적 허용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조난 구조와 살인마 원숭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장면을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 감독 제임스 그레이 왈 그 뜬금없음이 목적이었다고. -ㅁ-

뭐 제임스 그레이가 공돌이 출신도 아니거니와 과학적 고증에 얽매일 양반도 아니니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의도가 맞는 거겠죠? 많은 사람들은 물론 감독 본인이 언급하듯
아버지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는 "애드 아스트라"의 기본적인 얼개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따온게 맞고, 그 지난한 여정은 주인공 로이를 몰아세우며 고립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타이밍상 스릴러/호러 파트로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이야기를 참고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전체적으로 정적이다 못해 졸리다는 평도 많은 만큼 환기를 겸해 긴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달 기지에서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긴 영화에서 정말 몇 안되는
액션 장면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사람을
잃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그로 인해 로이의 고립이 강화된다는 것도 마찬가지.
심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월면 해적과 우주 원숭이가 과연 필요했냐'고 지적받는 것까지. ^^;



"그래비티"나 "마션"처럼 장면 장면의 묘사가 현실 고증에 착착 맞아들어가는 것을 기대한
분들은 적잖이 실망하셨겠지만, 이런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꽤 멋진 SF 영화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우주는 거들 뿐 우주만큼 깊은 마음 속 심연을 파들어간다는 점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만든 "솔라리스"의 먼 후예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이런 감독이 이런 배우들을 데리고 이런 규모의 예산으로 이런 SF 영화를 만든다니,
지금의 SF 팬들은 정말 다시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는 건지도~

덧글

  • 자유로운 2020/05/27 18:03 # 답글

    뭐 하드 SF가 아니면 재밌는게 더 좋은거니까요. ㅇㅇ
  • glasmoon 2020/05/28 13:38 #

    근데 과학기술이 훨씬 진보한 세상에 저런 구식 월면차는 아무리 노렸다 해도 좀 너무했죠. 크~
  • lawdoodle 2020/05/27 18:36 # 답글

    Ksp가 많은 sf영화를 망쳐놓았습니다. ㅋㅋㅋ

    궤도 계산하고 dv를 힘겹게 계산하며 이동하는데 말씀대로 갑자기 목표를 다른대로 돌리면 굉장히 어려워지지요.

    그런데 이 기준이면 인터스텔라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비티는 물론이고요. 기본 궤도역학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마션이 가장 하드 sf일수도 있는것 같습니다.
  • glasmoon 2020/05/28 13:49 #

    KSP가 뭔가 했더니 세상에나, 왜 내가 어릴땐 저런 게임이 없었단 말이냐~~!! ㅠㅠ
    사실 이런거 다 따지면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는 점에서 영화나 이야기의 소재로는 부적합하죠. 마션은 우주선을 메인이 아닌 서브 플롯에 두어서 그나마 가능했다 보구요. 인터스텔라의 경우 허풍(...)의 정도로는 애드 아스트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포장(?)을 잘 한 편이겠죠. 애드 아스트라 스태프에 우주과학 덕후 한명 붙여서 비슷한 시늉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
  • 두드리자 2020/05/27 23:10 # 삭제 답글

    아무리 고성능 엔진이 달렸다고 해도 아무데서나 멈추는 건 안 좋죠.
    '진홍색의 불협화음'에 나오는 비글호, 웨이랜드 유타니의 지시 때문에 멈춘 노스트로모호, 같은 회사 소속의 커버넌트호 등... 아무데서나 멈추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군요.
  • glasmoon 2020/05/28 13:56 #

    우주에서 제 명대로 살고 싶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할 짓이로군요. =ㅁ=
  • ㅅㆍㅅ 2020/05/27 23:27 # 삭제 답글

    글 제목 넘 웃겨요ㅋㅋ
  • glasmoon 2020/05/28 13:57 #

    필립 K 딕의 걸작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합니다!?
  • 워드나 2020/05/29 09:57 # 답글

    개인적인 한줄 감상평: 고요의 바다에도 해적이 있을 줄이야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