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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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1987이란 by glasmoon


이것도 벌써 3년이나 됐나요. 지난주 방구석 영화관 상영작은 당연히(?) "1987" 이었습니다.
극장에서 볼 때는 혹시라도 안팎의 기대에 못미치면 어쩌나 싶어 끝날 때까지 긴장했었지만
이젠 그런 걱정이 없어서 그런가 술을 홀짝이며 봐서 그런가 그새 더 아저씨가 되어 그런가
계속 눈가를 훔치고 코도 팽팽 풀어가며... 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건 아니구요.


영화 개봉 당시 30년, 지금으로부터는 33년 전이라는게 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죠.
마저 본 부가 영상 중에 '지금 우리에게 1987이란' 의 제목이 붙여진 짧은 클립이 있었습니다.
주요 출연진들이 저마다 1987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회하는 꼭지였는데...
아쉽게도 저와 비슷한 연배는 없네요? 이희준 배우가 저와 나이 차가 좀 났었나?? ㅠㅠ

1987년은 서울 중랑구(당시는 분구 전이니 동대문구)에서 쭉 나고 자란 제가 어쩌다보니
종로구로 이사 온 그 해였습니다. 동쪽 끄트머리에 살다 졸지에 사대문 안으로 들어온 셈인데
집 바로 근처에 대학교(와 대학가), 이른바 '민족 성대'가 있다는 것도 큰 차이였죠.
하라는 공부는 안하는지 낮에는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다니다 밤에는 술마시고 토악질하는
대학생 형아 누나들도, 심심하면 벌어지는 투석전과 최루탄 발포도 당연스레 여겨지던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성균관 대학교 정문 앞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던 그 해 봄의 언젠가,
그날따라 때마침 시위는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 빙 도는 뒷길로 우회하지 않고 정문을
돌파(...)할 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역주민답게 빠삭한 작은 골목과 간판들로
은폐 엄폐하며 정문으로 접근, 눈치를 보다 이때다 싶어 뛰쳐나와 달려가려는 찰나 2~3미터
앞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고,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랄탄이 왜 지랄탄인지를~
몇 달간 살며 최루탄 냄새 좀 맡아봤네 했지만 코앞에서 뒤집어쓰는건 차원이 다르더라구요.
눈물 콧물을 리터 단위로 쏟아내며 뒷길 골목으로 돌아가기 위해 손으로 길바닥을 더듬는데
부드러운 손이 제 팔을 잡아 이끌었습니다. 골목에 이르러 옷을 털어주고 손수건을 내어주며
이런 말을 했던것 같네요. 어쩌자고 여길 왔니, 손대지 말고 집에 가서 물로 씻으렴, 등등...
눈이 퉁퉁 부어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예쁜 누나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닷!

그리곤 몇 달 뒤 노태우 씨가 무슨 중대 발표를 했고, 이후 대학가의 시위는 잦아들었습니다.
덕질(이라는 단어는 물론 없었지만) 하는 친구들은 감질나는 해적 서적을 벗어나 명동에 진출,
값비싼 수입 서적과 복제 영상물을 통해 드디어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구요.
그리고 다시 몇 해 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른바 '시대 정신'과 '학생 운동'에 매몰되지 않고
음악이나 영화, 모형같은 취미를 남길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80년대의 선배들 덕분이었겠죠.
물론 사이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산발적인 시위는 이어졌고, 좋든싫든 몇 번 얽히기도 했는데,
국내 학생운동에 종지부를 찍은 1996년 연세대 사태가 하필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때와 겹쳐
착잡한 감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는게... 아, 지방에 있어서 직접 연대에 투입되진 않았어요.
사태가 장기화되며 수도권 전의경만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제가 있던 부대도 올라갈 뻔했지만
천만다행(?)으로 동원을 며칠 앞두고 상황 종료. 덕분에 말년은 열외 없이 매일 진압 훈련--;;

세대 구분하길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제 전후를 일컬어,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혜택을 누리며
개인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사실상 첫 세대, 이른바 X 세대라고 칭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듣기좋은 말은 아니지만, 또 인생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80년대의 저런 치열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영화보고 여행다니며 또 모형질하는
이토록 대책없이 한량스러운 블로그가 과연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은 드는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1987" 블루레이는 초회판을 놓치는 바람에 일반판으로 보았다는 거.
에이, 블루레이로 넘어오며 더이상 패키징에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으니 알맹이가 좋으면 됐죠.

모처럼 영화 본편은 물론 메이킹 필름, 각종 인터뷰, 삭제 장면과 예고편까지 탈탈 털어본 뒤
괜히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 떠올려본 어느 아저씨의 낯간지러운 회상이었습니다.
자, 당신의 1987년은 어떠했나요?

덧글

  • 뚱뚜둥 2020/06/18 09:14 # 답글

    1987년에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중학교가 연희동에 있어서 바람방향이 좋으면 교실에서 최루탄의 향기를 즐길수 있는 멋진 학교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한게 대학생들 데보하는것을 욕하는 선생님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데모질한다고 욕하던 어른들도 많았는데요.
    그리고 동네가 동네다보니 전두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이야기로는 전두환에 대한 동네사람들의 평은 좋은편이었습니다. 가끔 집에 왔다가 가는데 괜찮게 사람들 대했다고 합니다.
    노태우 집도 같은 연희동에 있었지만 별로 들리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96년 연세대사태도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밤에 연대근처를 지나가는데 전경들이 겁먹지 말자면서 걸어가더군요. 전경들도 겁먹는 다는게 굉장히 신기했고, 전경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는걸 느겼습니다.
  • glasmoon 2020/06/18 15:42 #

    '전땡뉴스'가 만연한 시절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건만, 대통령이 바뀐 뒤 주위 어른들이 전두환을 욕하는걸 처음 듣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군대 간다고 입대했더니 제가 전경으로 차출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ㅁ-
  • 레드진생 2020/06/18 10:51 # 답글

    당시 지방이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조금이라도 정부나 정책 문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건 우리끼리 얘긴데... 어디 가서 얘기하면 선생님 잡혀간다? 절대 말하지 마?" 라는 이야기가 붙었었죠.
    서울 할머니댁 올 때마다 서울역에서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풍겼고...

    보통은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해 줄 만한 이야기인데, 이런 걸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빠른 민주화를 이룩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 glasmoon 2020/06/18 15:45 #

    좀 더 나중에 만났던 선생님이 기억나네요. 3당 합당이 일어나자 YS를 그렇게 성토하면서 87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시더라구요.
    그 선생님은 당시 현장에 계셨던 셈인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합니다.
  • 이요 2020/06/18 11:40 # 답글

    맞네요. 저도 X세대 블로거. 박종철 사건 났을 때 집에서 받아본 조선일보 읽고 학교 가서 애들한테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glasmoon 2020/06/18 15:48 #

    전 그때 어린이 신문인지 청소년 신문인지를 따로 보았던지라 정치 쪽은 전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어쩌다 흘리신 이야기를 듣는게 다였고, 실상을 안 건 대학 진학 후였죠. -,.-
  • galant 2020/06/19 00:45 # 답글

    1987년이면 유치원도 다니기 전이라 엄마 손잡고 별똥왕자 보러 극장에 간 기억 정도 ㅎㅎ
    그나저나 90년대 전경이셨으면 군생활 정말 빡세게 하셨겠네요
  • glasmoon 2020/06/19 13:06 #

    지방 소도시에 있어서 빡셀건 없었어요. 다만 뺑뺑이 돌려 전경 나왔을 때는 기분 정말 더럽긴 하더란... 크흐
  • 노타입 2020/06/24 11:27 # 답글

    아마 저도 비슷한 연배같네요. 저는 중학생이었지만 부산에 살아서 직접적 경험은 없습니다. 다만 많은 분들의 피땀의 혜택을 누렸다는 것은 부인할수가 없네요.
  • glasmoon 2020/06/24 16:05 #

    저도 이때보다 조금 앞에, 83~84년 무렵에는 잠시 부산에 살았더랬습니다. LA 올림픽을 중계하면서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홍보하던 기억이~
  • 노타입 2020/06/24 16:34 #

    헛 오다가다 마주쳤을수도 있었겠군요. 저는 사하구쪽에 살고 학교는 서구쪽으로 다녔습니다. 84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형주 선수의 그 뻘줌하고 순박한 화상통화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
  • glasmoon 2020/06/24 18:53 #

    아하하 하형주~ 정말 잊을 수 없는 얼굴~~
    전 중구에 살았는데 여름이면 송도 해변에서 노는게 일과이다시피했던 터라 해서 한두 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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