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언젠가, 아직 학교를 다닐 무렵에, 선후배들간의 모임에서 그의 이름이 나온 적이 있다.
내심 논리적인 비판을 기대했건만, 진지한 토론이 아니라 가벼운 대화였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현학적이다못해 교조적이라는 소리도 왕왕 듣는 음악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례적이라 할만큼
그에 대해서는 찬양과 칭송의 발언이 대다수였다. 부정적인 의견은 나를 포함하여 극소수일 뿐.
그가 감정이 풍부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가슴에 와닿는 선율을 만들어낸다는걸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화가 어디까지나 시각 매체이고 음악은 그를 보완하는 역할을 갖는다는 관점에서 볼 때
(물론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영혼없는 선율과 효과로 채워진 흔하디 흔한 음악을 말하는건 아니다)
그의 음악은 유명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나 "시네마 천국"의 테마에서 보듯 한 곡으로
완성된 형태인데다 선율이 독보적인 나머지 스크린을 뚫고 나와 스스로 존재감을 극력 어필한다.
이 영상과 음악 간의 사소한(?) 위화감은 극중 인물이 직접 악기를 연주할 경우 더욱 배가되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의 찰스 브론슨이 부는 하모니카나 "미션"의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주하는 오보에의 경우 훌륭하지만 느낌 내기 쉽지 않은 선율에 전문가의 연주가 입혀진 결과
화면에서 보여지는 거친 환경과 아마추어 기색이 역력한 배우들의 연기와 괴리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그의 음악 스타일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아예 화면이 음악에 한 발 양보하는 게 아닐까
느껴지기까지 하는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일련의 작품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스타일의 고색적이고
낭만적인 영화들이다. 하지만 위에 예를 든 것과 같이 다소 과잉으로 흐를 소지가 있는 것에 반해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사선에서"나 "베스트 오퍼"처럼 긴장감을 드러내는 영화들, 그리고 그
외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영화들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함에도 어쩌랴. 명필이 붓을 가리지는 않았을지언정 특히 잘 쓰는 서체가 있었음에야.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언급한 위의 경우들도 그의 선율이 '너무' 뛰어났기에 나타난 부작용일 뿐
영상에 어울리는 선율을 만들어내고 또 풀어내는 능력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보기에,
오히려 조금만 일찍 태어나 후기 낭만 시대에 작곡가로 활동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상상하게 된다.
물론 음악가로서의 명성이라면야 현생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쌓았겠지만서도.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존 윌리엄스와 함께 고전 영화 음악 시대의 마지막 거장.
1928년 11월 10일 태어나 500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고 2020년 7월 6일 사망하다.
그와 같은 영화 음악가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덧글
듣는 것만으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선율을 남기고 가신 모리코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합이 맞았을때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은 정말이지 대단하죠.